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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롱박 Mar 16. 2020

<최선을 다한 담담함>

아주 짧은 희곡 - 담에 대한

1. 등장인물

담담    누군가를 잃은 사람. 

먹먹    담담을 아끼는 사람.



2. 장소

깊은 산 속. 언덕 위에 위치한 납골당 앞 정원



3. 때

담담이 잃은 사람의 유골을 안치한 후

이른 오전



4. 이야기 


납골당 앞. 정원처럼 꾸며진 마당. 멀리 산이 보이고. 그 배경 앞으로 벤치가 몇개 놓여 있다. 

검은 옷을 차려입은 먹먹과 담담 벤치에 앉아있다. 한 동안 말이 없다. 산 새 소리가 들린다. 


담담    (웃으며) 나는 괜찮아. 

먹먹    거짓말 좀 하지마. 너 지금 하나도 안 괜찮아. 

담담    (웃으며) 네가 어떻게 알아?

먹먹    네 얼굴에 쓰여 있어. 

담담    바보네. 나 정말 괜찮은데. 


먹먹은 벤치에서 일어난다. 화가 난 듯하다. 


먹먹    왜 그러는거야 도대체?

담담    뭐가?

먹먹    왜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척 하는건데. 아무렇지 않은 척 좀 하지 말라고! 너 힘들고 괴로운거 아니까 아닌척 좀 하지 말라고! 

담담    그래서 네가 힘들어?

먹먹    뭐?

담담    내가 아무렇지 않아 하는게 너한테 괴로운 일이야?

먹먹    그야 당연하지. 누구나 이런 상황이면,

담담    (말을 끊으며) 이런 상황이면?

먹먹    말 꼬리 잡지 말고. 

담담    이런 상황이 어떤 상황인데?

먹먹    아니,

담담    누가 봐도 절망해야 하는 상황? 아니면 너한테 동정을 받아야 마땅한 내가 그러지 못하는 상황? 그래서 반작용으로 오히려 너를 화나게 만들고 있는 상황?

먹먹    아니, 말 꼬지 말고. 

담담    (웃으며) 나는 정말 괜찮아. 그게 어려워?


잠시, 두 사람 말이 없다. 


먹먹    나는 이해가 안 돼. 

담담    그럴 수 있어. 

먹먹    나는 차라리 네가 울고 불고, 바닥을 뒹굴며 소리질렀으면 좋겠어. 나한테 왜 이러냐고 신을 원망하며 온 몸에 힘이 빠질 때 까지 화를 냈으면 좋겠어!

담담    그래. 그런 방법으로?

먹먹    네가 최선을 다 해서 슬퍼했으면 좋겠다고. 그래야 병이 안 된다고. 나는 니가 걱정돼서 그래. 그러다가, 미처 내어 놓지 못한 니 감정들이 곪아서 병이 될까봐 그래. 나는 너를 위하는 사람이야. 너를 신경쓰고 있다고. 내가 너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너는 분명 지금 힘들고 아픈데 그런 애가 왜 이렇게 견디고 있는건지 난 그게 너무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다고. 왜 그러는거야. 좀 솔직해져도 괜찮아 내 앞에선. 그러니까,

담담    도마뱀 알지?

먹먹    도마뱀?

담담    응 도마뱀. 도마뱀은 위험을 느끼면 꼬리를 자르고 도망가잖아. 여전히 움직이는 꼬리를 떼어 놓고 전력을 다 해서 도망치잖아. 남아 있는 꼬리가 꼬물거리는 동안 다리가 달린 몸통은 최선을 다해서 도망치잖아. 그렇게 꼬리가 시간을 벌어주잖아. 

먹먹    그게 지금 무슨 소리야,

담담    누가 그랬어. 최선이란 그런것이라고. 

먹먹    ...

담담    (웃으며) 나는 지금 최선을 다 하고 있는거야. 꼬리를 자르고 전력을 다해서 도망치고 있는거야. 그래야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먹먹    ...

담담    미안하지만, 나는 지금 너까지 챙길 겨를이 없어. 나는 나를 살려야 해. 울고 화내고 절망하는 내가 보고 싶겠지만 나는 그럴 틈이 없어. 

먹먹    나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담담    알아. 그게 너의 방법인가봐. 그런데 나는 다른 것 같아. 

먹먹    ...

담담    난 먼저 살아야 할 것 같아. 꼬리는 또 자라겠지. 나는 최선을 다 하는 중이야. 

먹먹    ... 그래도,

담담    나 잖아. 너가 아니라. 이게 내 최선이야.(웃는다) 


담담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선다. 멀리 산을 바라보며 크게 숨 쉰다. 

멀리 산새 소리가 들려온다.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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