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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만추 Mar 13. 2020

<웃으면서 인사하기>

10분 희곡

등장인물

ㅎㅇ (27)

ㅅㅈ (27)

*등장인물의 이름은 초성에 맞는 이름 어느 것을 사용해도 무방하다.      


9급 공무원 필기시험 합격자 발표 다음 날     


도서관 휴게실

휴게실 안에는 음료수 자판기가 있다. 자판기 옆으로 창문이 있어 밖을 볼 수 있다.




        ㅎㅇ가 한 손엔 캔 음료수를 들고, 핸드폰을 귀에 대고 있다.      


ㅎㅇ : 진짜 대박이다. 축하해. 야, 진짜 잘됐다. 내가 다 기쁘다. (한숨 쉰다)존나 가식 같은데. (목소리를 가다듬고는)진짜 대박! 야, 축하해!     

 

         그때, ㅅㅈ가 휴게실 안으로 들어온다.     


ㅅㅈ : 뭐하냐?

ㅎㅇ : 깜짝이야. 기척 좀 내고 다녀라.

ㅅㅈ : 뭘 했는데 그렇게 놀래?

ㅎㅇ : 하긴 뭘 해. 그냥 코코팜 마시고 있었지.

ㅅㅈ : 수상한데.

ㅎㅇ : 그냥 코코팜 마시고 있었다니까. 방금 온 거야?

ㅅㅈ : 응.

ㅎㅇ : 일찍 일찍 좀 다녀라. 어제 또 술 마셨지?

ㅅㅈ : 마셨지.

ㅎㅇ : 인간아. 언제 정신 차릴래?

ㅅㅈ : 그럼 합격했는데 축하주 마셔야지, 안 마셔?

ㅎㅇ : …어?

ㅅㅈ : 왜?

ㅎㅇ : 붙었어?

ㅅㅈ : 응.

ㅎㅇ : 붙었다고?

ㅅㅈ : 그래! 몇 번을 물어봐.

ㅎㅇ : 오…, 붙었구나.

ㅅㅈ : 표정이 왜 그래? 나 합격한 거 싫어?

ㅎㅇ : (일부러 밝게 웃어 보이며)내 표정이 뭐?

ㅅㅈ : 너무하네. 누가 붙든 진심으로 축하해주기로 했으면서.

ㅎㅇ : 나 진심이야! 와 대박! 야, 진짜 축하해! 네가 진짜, 와 대박. 네가.

ㅅㅈ : 뻥이야.

ㅎㅇ : 왜 사냐? 왜 살어?

ㅅㅈ : 너 근데 내가 붙었다니까 약간 좀 그랬지? 막 질투 났지?

ㅎㅇ : 아니거든. 나 진심으로 기뻤거든.

ㅅㅈ : 표정이 아니던데.

ㅎㅇ : 믿기 싫음 믿지 마라.

ㅅㅈ : 그래, 내가 믿어 준다.

ㅎㅇ : 믿어 주는 게 아니라. 너 사람의 진심을 그런 식으로 매도하냐.

ㅅㅈ : 알았어, 알았어. ㅇㄱ는?

ㅎㅇ : 몰라.

ㅅㅈ : 붙었나?

ㅎㅇ : 모르지.

ㅅㅈ : 지금까지 안 오는 거 보면 붙었나 보네. 그래도 셋 중 한 명은 됐네.

ㅎㅇ : 자고 있을 수도 있고.

ㅅㅈ : (ㅎㅇ를 빤히 쳐다보며 웃는다)…

ㅎㅇ : 왜, 뭐. 아니, 걔 평소에도 자다가 세 시쯤 나오잖아.

ㅅㅈ : 누가 뭐랬나. (ㅎㅇ의 손에 든 음료수를 가져가려하며)코코팜 맛있어?

ㅎㅇ : 뽑아 마셔.

ㅅㅈ : 치사하긴.

      

         ㅅㅈ, 자판기로 가 음료수를 뽑는다.

         음료수를 마시며 창문 밖을 보다가,     


ㅅㅈ : 어? ㅇㄱ다.

ㅎㅇ : (창문으로 헐레벌떡 뛰어가며)어디? 어디?

ㅅㅈ : 아니네. (조금 전 ㅎㅇ의 행동을 따라 하며 웃는다)어디? 어디?

ㅎㅇ : 진짜 사이코패스냐? 그런 장난 왜 쳐?

ㅅㅈ : 재밌잖아. 이럴 때일수록 웃음으로 이겨내야지. 근데,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 넌 떨어지고 걘 붙었는데? 난 솔직히 좀 어이없고 화난다. 맨날 와서 술이나 마시러 가자 그러고, 핸드폰 하고, 졸고. 걔 하루에 30분은 공부했나? 왜 하필 걔가 합격해? 우리 세 명 중에서 한 명이면, 네가 해야지.

ㅎㅇ : 뭘 또.

ㅅㅈ : 맞잖아. 걔한테 인강이랑 문제집도 네가 다 추천해 줬는데. 고맙다고는 해?

ㅎㅇ : ㅇㄱ 성격 알잖아.

ㅅㅈ : 보살이다, 보살. ㅇㄱ 아니었으면 네가 붙었을 수도 있어.

ㅎㅇ : 그런가. 에이.

ㅅㅈ : 아니 진짜로. 0.1점 차이로 붙고 떨어지는데. 걔가 너랑 나 공부하는 거 방해만 안 했으면 합격하고도 남았지.

ㅎㅇ : 너는 좋다고 맨날 술 마시러 따라 나갔으면서.

ㅅㅈ : 좋기는 무슨. 넌 절대 안 간다 그러고, ㅇㄱ는 같이 안 가면 삐지니까 가준 거지 내가. 그리고 맨날 간 것도 아니다 뭐. 아무튼 열 받아. 세상 참 불공평 해. 안 그러냐?

ㅎㅇ : 솔직히 좀…

ㅅㅈ : 이거 봐, 이거 봐. 딱 걸렸어. 내가 말했지? 우리 웃으면서 인사 못 한다고.

ㅎㅇ : 야, 네 장단 맞춰주려고 일부러 그런 거 아냐.

ㅅㅈ : 좀 솔직해져라. 너 마음속에선 부글부글 끓고 있잖아.

ㅎㅇ : 아닌데. 그건 너겠지. 네가 그렇다고 남까지 그럴 거라 생각하는 건 편견이고,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야.

ㅅㅈ : 예, 예, 그러셔요.

ㅎㅇ : 아니라니까.

ㅅㅈ : 그러시겠죠.

ㅎㅇ : 사람 말 못 알아들어? 너 인강은 어떻게 듣냐? 이해는 하면서 공부하는 거지?

ㅅㅈ : 이해력은 네가 가장 딸리는 거 같은데? 늦잠 자느라 세 시에 나와서 공부하는 ㅇㄱ 는 붙고, 아침 7시부터 공부하는 너는 떨어졌잖아.

ㅎㅇ : 시험은! 운칠기삼이랬어!

ㅅㅈ : …

ㅎㅇ : 운칠기삼도 모르면서 공무원 시험 퍽이나 붙겠다.  

ㅅㅈ : 너는 공무원 시험 붙더라도 얼마 안 가 망할 거야. 공무원 시험 붙으면 뭐해 성격이 별론데. 그런 성격으로는 사회생활 빵점이야. 공부하기 전에 먼저 사람이 돼.

ㅎㅇ : 사람은 내가 아니라 네가 먼저 돼야지. 공부하겠다는 놈이 맨날 친구랑 놀러다니고. 너랑 ㅇㄱ랑 다른 거 하나 없어. 너야말로 하루에 30분은 공부하냐? 부모님께 죄송하지도 않아?

ㅅㅈ : 네가 뭔데 우리 부모님을 신경 써. 너네 부모님이나 신경 써. 그리고 나 매일 30분 넘게 공부해. 네가 뭘 알아? 맨날 지만 잘난 척. 지만 똑똑한 척. 지만 착한 척.

ㅎㅇ : 내가 언제?

ㅅㅈ : 누가 붙더라도 진심으로 축하해주자고? 다음에 만나면 웃으면서 인사하자고? 너 그거, 너는 당연히 붙고 나랑 ㅇㄱ는 떨어질 거라 생각해서 한 말이잖아. 나랑 ㅇㄱ가  열람실에서 네 가방 보고 얼마나 통쾌해했는 줄 아냐?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말하더니, 쌤통이다.

ㅎㅇ : 뭐라고? 다시 말해봐.

ㅅㅈ : 떨어져서 쌤통이다!

ㅎㅇ : 그거 말고! ㅇㄱ랑 내 가방 봤다고?

         …그러니까, ㅇㄱ도 떨어졌다는 거지?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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