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소소한 힐링타임에 대해서.
이발하는 것을 좋아하시는지?
이발이라고 하니까 너무 옛날 느낌이 나긴 하는데 나는 머리를 자르는 것이 정말 좋다. 아니 정말 좋다는 까진 아니지만 좋아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시도 때도 없이 머리를 자르러 가는 것은 아니다.
내 머리카락은 꽤 곱슬머리라서 고등학교 시절에는 무려 짜파게티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까지 얻기도 해서, 학생 시절 머리를 짧게 자르면 폭탄 혹은 곰팡이가 핀 것처럼 징그럽기까지 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나는 헤어스타일에 그렇게 큰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아서, 최대한 참다 참다 머리가 미관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다는 판단으로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어야지만 억지로 가는 편에 가깝다. 그렇다고 한다면 머리 자르는 시간을 좋아한다고 해야겠다.
머리를 자른다고 하니 예전에 군 시절 부산에 살던 동기 놈이 " 이놈아, 머리 자르면 죽어 머리카락을 잘라야지"라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했던 게 떠오른다. 하도 그 소리를 듣다 보니, 내 주변 사람들이 그 말을 할 때마다 그들의 머리가 뎅강뎅강 잘리는 장면이 자동으로 떠올라서, 이발한다는 말로 적절히 적어보기로 한다.
어릴 때는 아버지를 따라 이발소를 자주 다녔는데 그때는 그렇게 이발하는 게 너무도 싫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린 초등학생에게 '가만히 20분에서 30분간 아무것도 하지 말고 앉아 있어'라는 건 정말 고문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당시에 스마트폰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볼거리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읽을거리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뭐 이발소에도 TV는 있었지만 초등학생이 부모님과 이발을 하러 가는 시간에 재미있는 게 할 리가 없지 않은가. 가뜩이나 그때는 TV 채널이 다섯 개밖에 없었을 때니 말이다.
그때 당시에 많은 학생들이 그러했듯 밖에서 뛰어놀거나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거나, 재미를 찾기 위한 선택지가 많지 않았었다. 근데 그 모든 것들은 내가 움직여야지만 할 수 있는데, 재미를 느끼는 것들을 할 수 없게 내 손과 팔과 모든 것들은 이발하는 미용 가운 아래 있어야 하고 얼굴은 간지러운데 손도 못 대고 가뜩이나 눈은 나쁜데 안경을 벗고 이발을 해야 하다 보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아니 제대로 보이지 않는 흐리멍덩한 세상 속에서 혼자 방치되어 징징거리는 칼날 돌아가는 소리만 내 귀에 가까운 곳에서 들으며 불편한 자세로 이발 아저씨의 명령대로 머리를 이리 돌리고 소리 돌리고 했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 나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이발하는 게 꽤 좋아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시간 같다.
아니 더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아무것도 내가 하지 않아도,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일이 척척척 잘 진행되는,
아니 오히려 가만히 있어야지만 일이 저절로 진행되는 마법 같은 시간이라고나 할까.
보통 스마트폰을, 아니 거의 대부분 스마트폰에 시간을 할애하다 보니 무언가를 보거나 듣거나 생각할 시간이 거의 없다시피 한 게 요즘 생활인지라, 가만히 앉아있는 적을 떠올려보자면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찾기 힘들다. 화장실 갈 때도 스마트폰이 필수품이 되었으니 뭐 말 다 했지.
그런데 이발을 하는 순간,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일이 하나 완성이 된다는 것은 정말 매력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덤으로 20분에서 30분의 여유 시간과 더불어 누군가 내 머리 마사지해주는 시간까지 있고 말이다. 생각할 수 있는 30분 정도 허락된 시간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꽤나 해방감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생각 하는 시간은 평소에도 할 수 있지 않느냐라고 할 수 있는데 의외로 어렵다.
2, 30분의 시간을 가만히 있는 것 자체가 습관이 되어 있지 않다.
세상은 너무 재미있는 것들이 많아져 버렸고 볼거리도 매일매일 넘쳐나게 흘러넘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뭔가 뒤처진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하는 느낌마저 든다.
그러다 보니 이발하는 이 시간은 내게 꽤나 개인적이고 내밀 하기까지 한 특별한 시간이 되어버린 것 같다. 난 여러 가지 생각할 자유가 생기고 자의든 타의든 정보를 습득해야만 하는 세계와 잠시 단절되고 자유로운 생각할 시간이 주어졌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하기로 한 미션은 척척 남의 손에 의해 잘 진행되고 있고 뭐 그런 거다.
최근에는 미용 선생님께서 내 얼굴을 조금씩 알아보시고 말을 거셔서 약간 부담스럽긴 하고 내 자유시간이 깨진 것 같아서 거시기 하긴 한데 이건 아마 대부분의, 아니 나와 같은 취향을 가진, 아니 나와 같은 성향을 가진 남자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사항 같은 것일 것이다.
마치 옷 가게 가서 옷을 사려는데 점원이 말을 걸면 다시는 오지 않는 그런 느낌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