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환대의 밤

도무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여름의 풍요에 대해

by 반작

술을 마시는 사람은 두 부류로 나뉜다. 안주를 정하고 술을 떠올리는 사람과 주종을 정한 후 곁들일 음식을 정하는 사람. 미식가가 전자, 애주가가 후자에 속한다. 미식가이자 애주가인 나는 양쪽 모두에 발을 걸치고 있다. 스스로를 미식가, 혹은 애주가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사실 왠지 쑥스럽지만 뭐 미식가가 별건가. 맛과 술을 즐기면 그걸로 된 거지.


하지만 박애주의자일 것만 같은 ‘모두 좋아 파’에게도 분명한 선호는 있다. 좋아하는 사람과 대화가 가득한 와인바도, 음악을 앞다투어 추가하며 온갖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홈파티도, 홍대 작은 공연장에서 모르는 사람과 부대끼며 부딪히는 플라스틱 맥주도 좋지만 가장 즉각적인 행복을 주는 건 집에서 혼자 마시는 술이다. 때문에 '술을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에 짐짓 '술자리를 좋아해요'라고 대답하지만 사실 대답에는 '나와의'라는 어절이 괄호 안에 숨겨져 있다. 술자리를 싫어하는가 하면 그건 절대 아니다. 다만 스스로 요리를 만들어 적절한 술을 곁들일 때 그 첫입의 행복감은 온전히 내 모든 감각에 집중할 수 있는 집에서의 '혼(홈)술' 이라 생각할 뿐이다.


혼술 릴레이는 맛있는 식사에서 시작한다. 어느 여름날 콜드파스타를 만든다. 준비된 화이트 와인이 없다는 건 우리 집에서는 일종의 불법이다. 파스타 냄비에 물을 올려두고 미리 칠링해둔 와인을 챙겨 피크닉 가방에 테이블매트, 포크와 스푼을 챙겨 옥상으로 올라간다. 블루투스 스피커도 빼놓을 수 없다. 화이트 와인을 잔에 따른다. 식사 때 느낄 감동을 위해 시음은 절대 금지. 적당한 노래를 고른다. 플레이팅한 메인 디시를 조심스레 들고 야외테이블에 놓으면 점심 식사는 시작된다. 나로부터 나에게로 준비된 식탁.

남산을 바라보며 허겁지겁 포크에 면을 감고 입에 넣는다. 전부 씹어 삼키기 전에 급히 와인잔을 든다. 술과 음식의 어우러짐이란 모름지기 놀라운 시너지에 있으니까. 이탈리아 사람이 보면 기겁할 콜드파스타 레시피, 뉴질랜드의 어느 농장에서 공장식으로 만들어진 값싼 소비뇽블랑. 그러나 이 둘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용산2가동 한 여성의 집 옥상에서 만나 축제를 벌인다. 말 그대로 뇌의 한 부분에서 폭죽이 터지듯 환희가 모든 감각에 퍼진다. 절로 만족을 담은 감탄이 튀어나온다. '음~' 노래에 가까운 리듬을 타며 작은 어깨춤을 추며 두 번째 모금을 마신다. 첫입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훌륭하다.


누군가와 함께 식사할 때는 맛있는 음식과 술을 마시며 "오 이거 맛있다."라는 말로 시작하여 몇 문장을 덧붙인다. 무엇이 들어간 것 같다거나, 맛이 어떤 방식으로 깊다거나 하는. 음식과 술에 온전히 몰두한다기보다는 소통이 주목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한 요리를 먹을 때에는 이러한 과정이 모두 불필요하다. 스스로 이 음식이 어떤 재료로부터 왔고 어떠한 조리 과정을 거쳤는지 이미 알고 있기에 그저 감각과 감상의 순간만이 남을 뿐이다. 음식과 술,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파티의 게스트이자 호스트이다.


첫 라운드*가 끝나면 본격적인 음주가 시작된다. 냉장고에 있는 무엇이든 안주로 탈바꿈되는 순간이다. 슬라이스 체더치즈를 정방형으로 조각내어 전자레인지에 1분 돌린 치즈 과자를 다음 스낵으로 고른다. 생각 없이 집어 먹다 보면 두어 잔 만에 그릇이 텅 빈다. 다음 안주 타깃은 양배추. 오랫동안 마시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최대한 배가 부르지 않은 재료를 고른다. 한입 크기로 자른 뒤 소금과 후추, 참기름만 뿌려도 이자카야 맛이 제법 난다. 이쯤 되면 주종은 중요하지 않다. 다만 내일의 나를 위해 한 가지 종류의 술을 마시는 게 좋겠다, 와 같은 이성이 그나마 남아있는 상태. 비엔나소시지를 에어프라이어에 돌리고, 들기름 계란 프라이를 만들고, 참기름을 두른 팬에 명란을 굽고, 오이를 썰어내 샐러드를 만들며 술은 어느새 바닥나기 시작한다.


밤은 길고 안주에 대한 아이디어가 무한한 한 나 자신과 함께하는 주취자의 밤 또한 끝없이 이어진다. 초대한 이도, 초대받은 이도 모두 나라는 애주가. 잘 아는 손님이기에 자신 있게 대접하고 또 정성스럽게 접시를 낸다. 안주마다 쓰임에 맞는 접시를 찾는다. 설거지는 쌓여가지만 그건 오늘의 고객이 아닌 내일 현실의 누군가의 일이다.


대학교 3학년 때 20여 년간 살던 동네를 아빠의 사업 실패로 도망치듯 떠났다. 가족 모두 이름 조차 들어보지 못한 곳으로 이사했다. 나는 갑자기 나머지 학부 학기와 대학원까지 편도 2시간을 통학하며 학교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다지 미래 계획에 눈이 밝은 편은 아니었기에 비교적 긴 시간동안 경기도에서 서울로 매일같이 여행하는 시간은 이어졌다. 학사는 14학기, 석사는 8학기에 걸쳐 왕복 4시간의 시간은 지독하게 지연되는 경춘선만큼이나 길게 이어졌다. 실연으로 찾아온 실존의 위기를 극복하고 드디어 학위 취득을 앞둔 어느날, 덜컥 투룸을 계약했으니 함께 살자는 친구의 제안으로 갑작스레 독립을 하게 됐다..


친구와는 생활 패턴이 맞지 않아 금방 헤어졌다.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혼자 살게 되자 엄마는 "엄마 안 보고 싶어? 외롭지 않아?"라고 꽤 긴 기간 끈질기게 물어봤지만 언제나 내 대답은 같았다. "엄마 서운해 말고 들어봐… 하나도 안 외로워"

도시괴담처럼 전해 내려온 '혼자 사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적어도 내겐 실체가 없었다. 1인 가구로 산다는 건 언제나 행복뿐이었다. 그리고 그 행복은 내가 매 순간을 통제할 수 있다는 데서 왔다. 지금 나의 세상에는 시간표보다 10분 15분씩 지연되는 열차도, 야식을 먹는다고 잔소리하는 동생도, 냉장고에 넣어둔 안주를 먹어버리는 아빠도 없다. 대신 그 중심에 오직 나만을 위한 요리와 안주, 그리고 술이 있다.


낮부터 시작해 정오를 넘겨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음주는 다음 날 아침 침대에서 눈을 뜨며 끝이 난다. 객관적으로 폭음(暴飮)에 해당하는 양을 마셨으나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냈기에 숙취마저도 즐겁다. 종종 눈치 없이 전두엽이 비집고 들어와 ‘과했던 거 아닌가?’ 하는 죄책이 올라오지만 내가 즐거움에 가장 먼저 반응하는 사람인 것 또한 바꾸어 놓을 수는 없으니. 그 때문에 내가 요리와 술을 즐기는 한 환대는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지속 가능한 축제를 위하여 그다지 자주 열리지는 않겠지만.



*영어 문화권에서는 술 한 잔씩을 어떤 그룹과 함께 마실 때 'round'라는 표현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최근에 알았다. 술과 겨룬다는 걸까, 일종의 루틴이라는 걸까. 어쨌든 술잔도 둥글고 지구도 둥글고 술의 한 방울 한 방울도 둥그니까 뭐 어쨌든 마음에 드는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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