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와 함께 춤을

붉고 물렁한 여름의 맛

by 반작

입 속에 열매를 넣는다. 얇은 껍질은 순간에 으스러지며 과즙이 사방으로 튄다. 형태를 유지하려는 힘은 연약한데 비해 껍질은 질기다. 과육을 부수고 물렁한 씨앗을 가만히 씹는다. 이 모든 질감의 어우러짐을 즐긴다. 얼핏 풀 냄새가 코를 스친다. 그리고 이어지는 붉은 맛. 토마토의 이야기다.


이토록 범용성이 높은 야채가 또 있을까? 무슨 요리를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배고픈 오후. 우선 토마토를 꺼낸다. 동그란 모양을 살려 썰어 샌드위치를 만들지, 토막 내 샐러드를 할지, 껍질을 벗겨 소스를 만들지 정해야 할 시점이다. 나는 토마토를 반으로 자르고 냉동실에 넣어둔 빵을 꺼낸다. 오늘 점심은 간단히 토스트를 먹기로 한다. 바게트를 오븐에 데우는 사이 토마토를 쥔 손에 한껏 힘을 줘 과육을 쏟아내 빵에 문지른다. 그 위에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를 듬뿍 뿌리고 입자가 굵은 토판염을 뿌린다. 오늘과 같은 게으른 점심 식사를 위해 마련해 둔 커피메이커에 잎차의 무게를 재어 올려둔다. 시나몬과 바닐라가 가향된 홍차의 냄새가 집 안 가득 퍼진다.


토마토는 동양보다는 지중해나 중남미와 같은 서양 요리에서 많이 사용되는 재료지만, 밥과도 잘 어울린다. 나는 그 사실을 올여름에야 알게 되어 토마토에게 서운할 지경이다. 이번 여름 유독 즐긴 토마토 레시피는 이름하여 토마토밥. 토마토를 조각내 자른 후 소금을 뿌리고 생강가루에 5분여 재워둔 후 따뜻한 밥, 김 가루와 함께 비벼 먹는 게 레시피의 전부다. 운이 좋게 고수가 냉장고에 있다면 고수를 더해도 좋다. 삼투압 현상 때문에 물기가 흥건해진 토마토에 더해진 생강 향이 놀라운 감칠맛을 만들어 낸다. 여름의 태양을 한껏 품은 제철 토마토 본연의 맛이 한 그릇에 담긴다. 불을 사용하기 꺼려지는 더위 속 5분 안에 준비가 끝나는 이토록 완벽한 음식이라니. 게다가 밥알 하나하나 코팅된 짭짤한 토마토의 감칠맛은 상상 가능한 맛을 훨씬 상회한다. 내가 그토록 오래 좋아해 왔는데 왜 이제야 내게 온 거니….


토마토는 언제나 성공적인 한 끼를 보장한다. 뿐만 아니라 멋진 안주가 되기도 하다. 모차렐라와 함께할 때는 발사믹을, 혹은 그냥 저며서 소금과 올리브만 뿌려도 근사한 모양새다. 살면서 먹을 수 있는 식사가 한정되었다고 믿는 이른바 ‘맛있는 식사 집착자’에게는 이만한 안전지대도 없다. 어떤 변덕에도 리듬을 맞추어 멋진 춤을 이끄는 완벽한 파트너다. 우리가 함께 추는 춤은 시작부터 절정, 마무리까지 열정이 가득한 탱고에 가깝다.


사계절 언제든 마트에서 만나볼 수 있다. 가격은 겨울이 여름보다 두 배 정도 비싸다. 물론 토마토가 가장 맛있는 건 당연히도 여름이다. 때문에 여름의 토마토는 본연의 신선함을 즐기고 겨울의 토마토는 푹푹 끓인다. 토마토 마리네이드, 토마토 살사를 만들며 여름을 시작하고, 토마토 스튜, 토마토 카레를 끓이며 겨울이 왔음을 실감한다. 어느 쪽이든 첫 입에 감동을 주는 음식이라는 점에선 같다.


매일 다른 음식을 먹고 싶다는 나의 변덕스러움에 발맞추어 감히 모든 메뉴에 잘 어울리는 미덕을 갖춘 재료는 토마토뿐이다. 아직 요리의 세계에 발을 들인 지 몇 해 되지 않는 나와 달리 수만 년간 내공을 쌓아온 선배에게 든든함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무엇을 기대하든 그 이상의 맛을 선보이는 모든 계절의 에이스랄까. 오늘은 어떤 춤을 함께 출까요, 또마토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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