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규칙한 대도시에 소울이 있다면
한국에 24시간 국밥집이 있다면, 전 세계 모든 나라엔 24시간 케밥집이 존재한다. 처음 케밥을 주문한 건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던 어느 날 밤이었다. 이태원역 4번 출구를 나오면 흘러나오는 커민, 터메릭 같은 이름조차 몰랐던 낯선 향. 낙타나 모스크, 아랍어 등이 번쩍이는 간판. 나는 그 거리를 지날 때마다 나는 언젠가 한 번은 먹어보고 말리라 생각을 하곤 했다. 새로운 음식으로의 도전은 나의 세계를 넓혀줄 수 있다는 걸 알았기에. 그날따라 지하철 계단을 오르다 별안간 훅 끼치는 냄새가 내 허기에 용기를 불어넣었다.
주문대 앞에 늘어선 줄이 줄어드는 것이 반갑기보다 초조했던 것은 영어를 써야 할지 한국말을 써야 할지 난감한 종업원의 외양, 그리고 가게를 가득 채운 다양한 인종 때문이었다. 내 차례가 다가올수록 종업원이 사용하는 언어는 잘 들렸지만 그게 어느 나라 말인지는 알 수 없었다. 써야 할 말들을 머릿속으로 점검하다가 마침내 나의 차례가 돌아왔다. 나는 망설이다 더듬거리는 영어로 주문했다. 되도록 실패가 적은 쪽으로, 메뉴 이름이 아닌 그 옆에 붙은 숫자 이름을 부르며.
처음 주문한 메뉴는 토르티야에 싸인 랩, 그 다음에 방문했을 땐 밥과 샐러드가 함께 나오는 정식, 그 이후엔 박스, 그 다음도 박스, 또 그 다음도 박스.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 쓰는 주문이 익숙해짐에 따라 취향도 뚜렷해졌다. 박스 케밥은 아메리칸차이니스 테이크아웃 박스와 동일한 직사각형 박스에 차례로 쌀밥, 감자튀김, 고기와 소스가 담기는 메뉴다. 말하자면 수직의 미학이 담긴 일종의 덮밥이다. 포크와 수저를 겸하는 도구를 들고 가볍게 퍼먹을 수 있는 간결한 맛은 금세 나를 사로잡았다. 고기는 램으로, 맵기는 가능한 한 강하게, 밥 대신 감자튀김 많이.
그 후로 케밥에 대한 나의 사랑은 이태원 밖에서도 끈질기게 이어졌다. 파리의 호스텔 앞에 언제나 사람으로 붐비던 케밥집에서 램 케밥을 포장해 와 6인 도미토리 침대에서 먹었고, 클럽에 가기 전 모인 힙스터와 땅콩 소스가 뿌려진 케밥 정식을 길에서 아무렇게나 앉아서 먹었다. 야간 버스를 타고 도착한 베를린, 친구가 아직 오지 않은 친구의 집 앞에서 Wie geht's(오늘 기분 어때)? 란 질문에 웃으며 대답하다 홀린듯 맥주와 함께 샌드위치 케밥을 포장해 왔다. 다양한 나라에서 맛본, 그러나 가보지 못한 나라의 음식에 추억이 깃드는 건 이상한 걸까?
전 세계 어느 곳에서든 동일한 맛을 선사합니다. 어디에나 존재하는 케밥집이 선사하는 유니버설함은 스타벅스나 맥도날드와 같은 프렌차이즈가 주장하는 바와는 다른 결을 가졌다. 상냥한 무스타파 씨가 얇게 썬 양고기, 눈인사를 건네는 아사프씨가 특별히 더 넣어준 향신료. 토마토는 대부분 들어가지만, 양상추는 취향에 따라 갈린다. 박스에 밥을 넣는 곳도, 넣지 않는 곳도 있다. 양파를 넣어 식감을 살리기도 한다. 도시마다, 요리사에 따라 맛이 조금씩 달라진다. 조금씩, 이라는 이 미묘한 사랑스러움.
나는 언제나 '가장'이라는 부사 앞에 망설이다 무너지곤 한다. (가정과는 관계없다) 그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단어 조합은 '가장'과 '좋아하는'이다. 나는 좋아하는 것이 너무 많다. 언젠가 하나를 반드시 꼽아야 하는 순간이 오면 어느 한쪽도 서운하게 할 수 없다며 대답을 최대한 뒤로 미뤄둔다.
나의 고향은 대도시 한복판이다. 어린 시절의 기억도 아파트와 주차장 놀이터가 전부다. 오히려 내게 소울푸드는 어린 시절이 아닌 성인이 되어 직접 찾아 먹었던 수많은 이국적인 음식들이다. 혼잡하고 늘 바쁜 도시, 일관성 없는 거리 미관. 돌이켜보자면 나의 소울은 무규칙과 혼합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나에게 소울푸드란 원앤온리에게 사랑을 퍼붓는 방식이라기보단 정기적으로 찾는 음식의 군(群)에 가깝겠다. 질문을 바꾸어 보자. 생을 통틀어 가장 자주 포장해 먹은 음식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조금 더 쉬워진다. 생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사랑이 없는 사람이란. 사랑이 많은 사람이 죄가 많다는 건 사랑이 많은 본인에 대한 죄가 많다는 이야기인 게 분명하다. 사랑이 많아 사랑할 곳이 없는 사람의 영혼이 다국적 음식에 머문다는 것은 삶의 즐거운 아이러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유럽과 아시아 대륙 사이에 위치한 이국. 때로는 나와 접점이 없는 가장 먼 사람이 나를 가장 잘 알아준다고 느낄 때가 있다. 누구보다도 나와 많은 도시에 추억을 남긴 건 애인도 친구도 아닌 케밥이라는 존재다. 그와 함께한 다양한 도시에서 끼니를 떠올리며 케밥이라는 이름을 입 속에서 조용히 불러본다. 쿰쿰한 향이 벌써 나는 그리워진다. 내가 필요할 때면 언제나 그곳에 있는 나의 글로벌 국밥, 그 이름은 케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