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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별반짝 May 18. 2019

한눈에 보는 한중일 전기차 배터리 산업 경쟁력 (1)

지금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어떤 구도로 돌아가고 있을까?


최근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격한 신경전을 벌인 데 이어 결국 미국 법원에서 소송전을 벌이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LG화학 측은 SK이노베이션이 2017년부터 2년간 LG화학 전지사업본부의 전 분야에서 총 76명의 인력을 데려갔으며, 이 과정에서 핵심기술을 함께 빼 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진편집=이코노미톡뉴스)


마침 저는 올해 초에 한중일 전기차 배터리 산업 경쟁력을 분석하는 보고서를 한 편 썼었습니다. 그때 한국 기업의 경쟁력에 대해 의외의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던 터라 이번에 국내 기업 간의 싸움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가장 먼저 들었습니다. 


오늘은 우선 이 글에서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 어떤 경쟁 구도로 돌아가고 있는지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 글에서는 배터리 산업과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관계에 있는 앞, 뒤 산업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한국 기업이 가진 경쟁력이 과연 어느 정도일까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시작해 보겠습니다 :)




전 세계 시장 점유율과 주요 기업들

먼저 전기차용 배터리 출하량을 바탕으로 세계 시장에서 과연 어떤 기업들이 두각을 보이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전기차 배터리는 공급처와 생산 계약을 맺은 뒤에 수주받은 만큼 생산을 진행합니다. 그래서 출하량을 곧 판매량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018년(1월~11월) 전 세계 전기차용 배터리 출하량 (데이터 출처: SNE리서치)


전 세계 전기차용 배터리 출하량 상위 10개 기업은 모두 한국, 중국, 일본 기업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2018년 기준으로, 전체 출하량 중 중국 기업이 41.7%, 일본 기업이 29.7%, 한국 기업이 11.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5위 일본 AESC는 닛산자동차의 자회사인데, 2018년 8월 중국 에너지 기업 인비전(Envision Energy)에 매각이 결정되었습니다. 이걸 고려하면 전체 출하량에서 중국 기업이 차지하는 비율이 더 높아지겠네요.


아마 LG, 삼성, SK가 배터리 공장을 짓는다는 뉴스를 꾸준히 접해보셨을 겁니다. 메이저 배터리 회사들이 각각 연간 50GWh 이상의 생산 규모를 갖추면 후발 주자들이 쉽게 진입할 수 없는 장벽 효과가 발생합니다.


신생 회사가 배터리 시장에 진입하려면 기술력 및 시장 확보에 7~10년은 걸린다는 것이 정설이며, 스위스 투자은행 UBS는 “향후 상위 5개 업체가 배터리 시장의 80%를 장악할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도 위의 목록에 있는 한중일 3개 기업 간에 경쟁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글로벌 배터리 업체 생산능력 확장 로드맵. 단위 GWh 출처: 삼성증권


위의 표는 2017년 자료를 기준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 이후에도 공장 신설 계획이 계속 발표되었기 때문에 이 표에 있는 것보다 생산능력은 더 확장될 겁니다. 그래도 이 표를 통해 각 기업의 생산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대략적으로 감을 잡을 수 있습니다.


위의 표에 없는 SK이노베이션은 2022년에 60GWh의 전기차 배터리 생산 능력을 갖추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만들어서 어디에 팔아야 할까: 중국 시장에서의 상황

중국 업체들의 기세는 상당합니다. 첫 번째 표에서 보아도 중국 업체인 CATL이 일본 업체인 파나소닉을 턱 밑까지 추격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국 업체 성장의 배경에는 거대한 중국 내수 시장 그리고 중국 정부의 보호가 있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아시는 것처럼, 중국 정부는 2016년부터 한국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 자동차에는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이번 5월 11일에도 역시 전기차 보조금 지급 대상에 한국산 배터리를 탑재한 차량을 포함하지 않았죠.


이 보조금으로 차량 가격이 1,000만 원가량 차이가 나게 됩니다. 당연히 자동차 제조 업체에서는 한국 배터리를 장착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됩니다.


2016년 당시 중국 배터리 제조 업체들의 경쟁력은 한국 업체에 비할 바가 아니었습니다. 전기자동차 배터리의 핵심은 가격과 에너지 밀도입니다. 당시 중국 업체들은 에너지 밀도가 높은 삼원계(NCM) 배터리를 제조하지 못했습니다. 대부분 쉽게 만들 수 있는 리튬인산철(LEP) 배터리를 생산했죠. 


또한 배터리는 전체 전기차 생산원가에서 가장 큰 비중(40-50%)을 차지하기 때문에 가격이 중요합니다. 한국, 일본 기업의 배터리 생산 원가가 Wh당 1.8위안인 데 비해 중국 업체는 2위안으로 가격 경쟁력마저 낮았습니다. 품질과 가격이라는 두 마리 토끼 중에서 한 마리도 잡지 못하는 상황이었죠. 


그런데 정부 정책으로 인해 중국 자동차 기업들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자국 배터리를 사용하게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마치 어미 독수리에게 등 떠밀려 높은 곳에서 떨어져 가며 나는 법을 배우는 새끼 독수리처럼 계속 만들고, 현장에서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고, 그렇게 해서 번 돈을 투자하고,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생산력, 기술력, 경험이 모두 놀랄 만큼 빠르게 축적된 겁니다.



중국 시장은 이렇게 마치 중국 기업을 위해 존재하는 양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한국 기업은 중국이라는 핵심 시장에 발을 들여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남은 것은 중국 이외의 해외 시장이었습니다. 그곳에서는 어떤 상황이 전개되었을까요?



만들어서 어디에 팔아야 할까: 유럽, 미국 시장에서의 상황

올해 초에 전기차 배터리 산업 경쟁력을 분석하는 보고서를 쓸 때는 한국 기업이 사면초가의 상황에 놓여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 자동차 업체들은 주로 일본 기업을 배터리 공급사로 선택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 기업인 파나소닉은 시장점유율 기준 세계 전기자동차(EV) 1위 브랜드인 테슬라와 강한 협력 관계를 맺고 있었죠. 테슬라는 원통형 배터리 사용을 고집하는데 파나소닉이 이러한 기준을 맞춰 납품을 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유럽 시장도 녹록지 않았는데, 중국 기업 CATL가 안방에서 나와 유럽 시장에 발을 들여놓으며 세계 제패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CATL(宁德时代)은 어떤 기업일까요? 전세계 출하량 2위인 이 기업은 중국 제조사 중 가장 주목해야 하는 기업입니다. 애플에 배터리를 납품하던 ATL의 공동창업자인 정이쥔(曾毓群)회장이 2011년 따로 나와 차린 회사입니다.


비록 BYD(比亚迪)가 출하량 3위이기는 하지만, BYD는 전기차 제조 업체이기도 해서 자기가 만든 배터리를 자기가 직접 사용합니다. 반면 CATL은 전기차 브랜드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오직 배터리만 만듭니다. 


파나소닉을 턱 밑까지 추격하는 출하량이 전부 다른 자동차 업체에 납품하는 출하량입니다.


CATL은 중국 정부의 보호를 받는 중국 시장에서 성장한 기업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세계 수준의 기술력을 갖추고 해외 시장에서도 인정받는 기업이 되었습니다. 


2018년 3월 폭스바겐과의 계약이 시작이었습니다. 당시 폭스바겐은 LG화학, 삼성 SDI와 함께 CATL을 차세대 전기차 배터리 공급사로 선정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중국 업체가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와 맺은 첫 대규모 계약이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2016년 가격도 품질도 잡지 못하던 중국 기업들의 상황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런 중국 기업이 2018년에 유럽 시장을 뚫다니, 이 성장 속도가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리고 2018년 7월, CATL은 한국 기업에 또 한 방의 강력한 펀치를 날립니다. BMW가 차세대 전기차에 들어갈 배터리 공급사로 CATL을 선정한 겁니다. 


원래 BMW의 전기차용 배터리 공급은 중국에서 판매되는 일부 모델을 제외하고는 삼성 SDI가 도맡아 왔습니다. 무려 10년 동안요. 그런데 이때의 계약으로 삼성 SDI의 독점 체제는 사실상 깨져 버렸고, CATL은 독일에 공장까지 설립하면서 유럽 시장으로 성큼 걸어 들어왔습니다.


BMW와 CATL의 전략적 협력관계 구축


이처럼 중국 밖 시장에서도 공급처 확보를 위한 피 튀기는 경쟁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전기차 배터리는 한 번 공급 계약을 맺고 나면 협력 관계가 오래갑니다. 그래서 공급처 확보가 중요합니다.


LG화학은 메르세데스-벤츠, 폭스바겐, 포드, 볼보, GM, 르노, 현대차 등 글로벌 자동차 브랜드 가치 상위 20개 중 13개 브랜드에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CATL은 2018년에만 44개 완성차업체와 전기차 배터리 공급 계약을 맺었습니다. 반면 삼성 SDI는 LG화학, 파나소닉, CATL에 비해 공급처가 적습니다.




여기까지의 내용을 살펴보면 결론은 이렇습니다.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아직 승리의 깃발을 거머쥔 자는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 자체가 세계 전기차 증가 추세와 맞물려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시장이며, 여기서 한중일 3국 기업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그런 역동적인 상황입니다. 


각 기업들은 팽창하는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생산력을 갖추기 위해 계속해서 공장을 지어 몸집을 키우고 있습니다.


Photo by Pablo Rebolledo on Unsplash


그러면 전기차 배터리 산업은 이렇게 팽팽한 경쟁 구도가 계속되고 있는데, 배터리 산업과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앞, 뒤 산업들은 과연 어떤 상황일까요? 배터리 산업이 치열한 양상을 띠고 있는 만큼 이를 뒷받침하는 전후방 산업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겠죠.


다음 글에서 한중일 3국의 산업 가치 사슬을 살펴보며 전기차 배터리 산업의 경쟁력을 계속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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