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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별반짝 May 19. 2019

한눈에 보는 한중일 전기차 배터리 산업 경쟁력 (2)

중국, 일본은 있고 한국은 없는 것, '가치 사슬'이 문제다


지난 글에서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 어떤 경쟁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지 살펴봤습니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급속도로 팽창하고 있는 시장이며, 한중일 3국 기업이 주도하고 있고, 그중에서 아직 누구도 승기를 잡지 못한 팽팽한 경쟁 상태에 있는 상황에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따라서 전, 후방 산업의 경쟁력이 배터리셀 제조 산업의 경쟁력을 가르는 중요한 요소가 될 텐데요. 우선 전기차 배터리 산업 전, 후방에 어떤 산업들이 있는지, 그 가치 사슬은 다음과 같습니다.


출처: 직접 작성


위의 표 한 장에 사실 오늘 해야 할 이야기가 다 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한국, 중국, 일본의 배터리 산업 경쟁력을 비교한 결과 10점 만점에 중국 8.36, 일본 8.04, 한국 7.45점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과연 전후방 산업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후방 산업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 원재료

전기차 배터리 원재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리튬, 코발트, 흑연입니다. 특히 리튬과 코발트는 배터리 셀 업체의 원가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원료입니다. 


전기차 배터리에 소요되는 리튬 양은 배터리 종류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 일반적으로 Kwh당 0.67~0.8kg 수준으로 봅니다. 


리튬과 코발트는 현재로서 대체 불가능한 원료입니다. 동시에 주 생산지(리튬은 남미, 코발트는 콩고민주공화국)의 정치 경제 불안정으로 수급이 불안정한 편입니다. 그래서 안정적인 가격으로 물량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리튬 생산지 중 하나인 칠레의 염호. 사진 출처 칠레 생산 진흥청


현재 가장 적극적으로 원재료를 확보하는 것이 어느 나라냐고 하면 단연 중국입니다. 중국 국영기업들은 든든한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최근 몇 년 동안 글로벌 원재료 확보 경쟁에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중국 최대 리튬 생산업체 티엔치(Tianqi) 그룹은 중국 국내 리튬광산을 보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2014년 세계 최대 규모의 리튬광산 호주 탈리슨의 지분 51%를 인수해 경영권을 확보했습니다. 이 곳에선 연간 9만 5000톤 규모의 리튬이 생산되죠. 그 결과 티엔치 그룹은 리튬 시장 내 세계 2위 기업이 되었습니다.


코발트는 어떨까요? 중국의 차이나 몰리브덴(China Molybdenum)과 화유코발트(Huayou Cobalt)는 해외 광산을 인수하며 급격히 성장해 왔습니다. 이들은 세계 최대 광산업체인 글렌코어(Glencore)에 이어 코발트 생산량 2, 3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그런데 2018년 3월 15일, 세계 1위 기업 글렌코어와 중국 업체 거린메이(格林美, GEM)가 코발트 공급 계약을 맺었습니다. 거린메이는 글렌코어와 3년 계약을 맺고 2020년까지 코발트 5만 톤 이상을 공급받기로 했는데, 이는 글렌코어가 3년 간 생산하는 코발트의 3분의 1을 사들이는 계약입니다. 거린메이는 CATL의 최대 납품 업체입니다. 한 마디로 세계 코발트 생산량 1, 2, 3위 기업이 모두 중국의 영향력 하에 있는 겁니다.


CATL이 배터리 판매 가격을 2014년 Wh당 2.89위안에서 2017년 Wh당 1.41위안으로 절반까지 낮춘 배경에는 배터리의 원재료인 리튬과 코발트의 안정적인 확보가 있습니다.


광산에 쌓여있는 코발트 가루. 사진 출처 KOTRA


중국이 1990년대 이후 정부가 전면적으로 주도하여 공격적인 자원 개발을 하고 있다면, 일본 정부는 좀 더 배후에서 기업을 지원하는 느낌이 강합니다. 일본 정부는 2009년 '희소금속 확보를 위한 4대 전략'을 수립하고 석유천연가스·금속광물자원기구(JOGMEC)를 설립했습니다. 정부가 자원개발 지원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미쓰비시, 스미토모, 이토추 등 종합상사들이 해외 광산개발에 나서고 있죠. 


게다가 원재료 기업과 배터리셀 기업 간의 공급 체인도 굉장히 끈끈한데, 예를 들어 스미모토금속광산과 파나소닉의 공급체인은 이미 15년간 유지되어 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은 고가 광물 자급률이 1.2%에 불과하고 세계에서 다섯 번째 광물 수입국임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일본에 비해 해외자원개발 규모가 현저히 적습니다. 2016년 중국이 해외자원개발에 투자한 규모는 800억 달러, 일본은 1000억 달러가 넘는 반면, 한국은 이들의 2~3% 수준인 27억 달러에 그쳤죠. 


포스코, SK그룹이 직접 해외 자원 개발에 나서고 있지만 중국, 일본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합니다.




후방 산업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 배터리셀 4대 소재

배터리셀은 양극재, 음극재, 분리막, 전해질 네 가지 소재로 이루어집니다. 중국은 배터리셀 제조 경쟁력 확보를 위해 일찌감치 4대 소재 기업을 함께 육성해 왔습니다. 


앞서 원재료까지 꼼꼼히 확보한 덕분에 거침없이 성장하여 지금은 다음 그래프와 같이 세계 시장에서 상당한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중국(그래프에서 초록색)과 일본 기업(그래프에서 파란색)입니다.


2017년 배터리셀 4대 소재 시장점유율. 그래프 출처 박형근(2018) <배터리 밸류체인 완성기 ... 전기차 왕국 꿈꾸는 대륙>


반면 한국 배터리셀 제조 기업(LG화학, 삼성SDI, SK 이노베이션)은 배터리셀 소재를 일본으로부터 수입해서 쓴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원재료 수급과 배터리셀 소재 가격을 통제할 수 없으니 한국 배터리의 가격 경쟁력에는 한계가 생깁니다. 


그래도 희망이 있다면 포스코가 자원 확보에 직접 나서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수한 제련 및 가공 능력을 바탕으로 배터리셀 소재 제조에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는 사실입니다.




전방 산업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 전기자동차와 ICT

2018년 4월 24일, 중국의 모바일 앱 기반 차량 공유 서비스 업체인 디디추싱(滴滴出行, Didi Chuxing)은 '홍류연맹(洪流聯盟•D-Alliance)'이라는 기술협력 연맹을 출범시켰습니다.


홍류연맹


이 홍류연맹은 베이징자동차(北汽), 광저우자동차(廣汽), 비야디(比亚迪, BYD), CATL(宁德时代) 등 31개의 자동차 제조/부품 제조/신에너지/지도 데이터/무인자동차 등 산업의 기업이 모여 만든 연맹입니다. 


우리로 치면 카카오 택시가 현대-기아차, 르노삼성, LG화학, 삼성SDI, SK텔레콤 등의 기업을 불러 모아 연맹을 구성한 겁니다.


디디추싱은 홍류연맹을 통해 본격적인 전기차 개발 방안 모색, 신에너지 공유차 설계, 산업 기준 제정 논의, 스마트 주행 기술 연구개발, 전기 충전소 건설 등에서 광범위한 협력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한국은 어떨까요? 한국에서는 2016년 삼성전자가 카오디어 기업으로 유명한 하만(HARMAN) 인수를 공식화하고 2017년 자동차 전장부문 사업에 진출하자, 오랜 시간 하만 제품을 써 오던 현대자동차가 갑자기 보스(BOSS)로부터 오디오를 공급받기 시작했죠. 이를 두고 현대차가 언젠가 전기차 등으로 경쟁자가 될 삼성을 견제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있었습니다. 이 글을 시작하면서 언급한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싸움은 말할 것도 없고요.


한국은 배터리면 배터리, 자동차면 자동차, 통신이면 통신, 부품이면 부품, 각 분야마다 내로라하는 기업이 있기에, 중국처럼 연합을 구성하고 힘을 합치면 분명 세계를 제패할 시너지 효과가 나올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꼭 집안에서 밥그릇 싸움을 하느라 바쁜 것처럼 보입니다.




가치 사슬이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만들지 못하는 환경이 문제다.

다시 한번 처음에 보여드린 가치 사슬 표를 보면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산업의 처음부터 끝에 이르는 가치 사슬. 중국에도 있고 일본에도 있는 이 가치 사슬을 한국이 아직 가지지 못한 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광물 원재료의 확보 같은 문제는 정부의 지원이 필요한 부분이죠. 자원 문제는 세계적으로 정부와 기업이 긴밀하게 신호를 주고받으며 움직이는 영역입니다. 또한 반도체와 IT가 한국의 주력 산업이라면 그에 필요한 원재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겠죠.


또한 가치 사슬을 고려한 산업 육성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일본 가치사슬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시간의 힘', 중국 가치사슬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정부 정책의 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 이 중 그 무엇도 아니죠. 가치 사슬은 개별 기업이 노력한다고 해서 쉽게 완성되는 것도 아니고요. 개별 산업이 아니라 가치사슬의 흐름을 따라 산업을 육성하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문제는, 하나하나의 개체는 강한데, 그 개체들끼리 손을 잡지 않는다는 겁니다. 연대를 통한 시너지 효과가 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전기차 배터리에 관한 기사를 볼 때마다 언급되는 것이 있습니다. 2020년에 중국 정부의 보조금이 폐지될 예정이라는 겁니다.


중국 친환경 차량 정책 기조 변화. 출처 삼성증권


맞습니다. 2020년 무렵이면 중국 정부의 보조금 지급 리스트에 한국 기업이 포함되는지 아닌지로 희비가 엇갈릴 일은 없겠지요. 중국은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전기자동차의 최대 시장일 겁니다. 그런 시장에서 지금 모두가 2020년만 바라보며 공장을 짓고 기를 모으고 있습니다.


Photo by Braden Collum on Unsplash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듭니다. 지금 이 팽팽한 경쟁이 얼마나 더 갈 수 있을까? 든든한 가치 사슬의 뒷받침 없이 기업 단위의 힘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중국과 일본은 정부가 받쳐주고, 기업끼리 손을 붙잡고 버티는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2020년이 된다고 대단한 반전이 일어날까요? 아니요. 그런 반전 없을 겁니다. 중국 기업이 이미 경쟁력을 갖추었기 때문에 보조금을 폐지하는 것일 테고요.


연대와 협력 없이 홀로 걸어가기. Photo by Daniel Cheung on Unsplash


전기차 배터리는 현재의 액체 매질이 갖는 불안정성으로 인해 점차 반고체, 전고체 전지로 넘어가는 추세입니다. 일본은 2011년부터 도요타가 도쿄공업대와 기술 개발을 추진해 왔고, 중국은 칭다오 에너지가 세계 최초로 전고체 생산라인을 구축해 2021년부터 양산에 나설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전고체 전지 상용화를 2025년으로 계획하고 있습니다. 시장 주도권을 빼앗길 우려가 큽니다.


없는 가치 사슬은 만들면 되죠. 지금 당장 없어도 힘을 합치면 곧 완성할 수 있다는 것을 중국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각자도생 하는 분위기, 협력보다 견제를 하는 분위기가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초 보고서를 쓰면서 예상치 못한 한국 기업의 문제점들 때문에 많이 당황했었습니다. 게다가 이러한 문제는 비단 자동차 배터리 산업에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닐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중국에서 공부하면서 피부로 와 닿는 중국 경제의 굴기와 겹쳐져 큰 위기감이 느껴졌습니다. 이런 상황에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싸움을 보니 참 속이 상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새로운 정보를 얻어 가셨으면 하고, 혹시 다른 의견이나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으신 분은 댓글이나 메일을 통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사이의 갈등에 대한 기사를 덧붙이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한국경제, <반박…재반박…불 붙은 LG - SK '배터리 전쟁'>, 2019.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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