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의 수직 계열화, 포스코의 전방산업 진출 등 최근 이슈 업데이트
5월 18일, 19일에 올린 <한눈에 보는 한중일 전기차 배터리 산업 경쟁력> 1편과 2편에 많은 분들께서 관심을 가져 주셨습니다. 그로부터 두 달 여가 지났는데요, 짧은 시간 동안 전기차 배터리 산업에는 역동적인 변화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중에서도 앞선 글에서 중요하게 다루었던 전후방 산업과 관련된 변화를 몇 가지 살펴보겠습니다.
이 글을 읽으실 때 다음 글을 함께 읽으시면 더욱 풍부한 지식을 얻어가실 수 있습니다.
세계 배터리 시장이 현재 어떤 경쟁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지
한국 전기차 배터리 산업의 가장 큰 문제점, 취약한 전후방 산업
누군가 저에게 “요즘 전기차 배터리 산업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가 뭐예요?”라고 묻는다면, 저는 주저 없이 이렇게 답할 겁니다.
“전후방 산업과의 연결 고리가 생겨나고 있어요. 아주 튼튼하게!”
한국에는 삼성 SDI, LG 화학, SK 이노베이션 세 개의 전기 자동차 배터리셀 제조 기업이 있습니다. 배터리셀을 제조하기 위해서는 그에 앞서 광물 원재료 확보 및 채취, 광물 원재료 정제 및 가공, 배터리셀 소재 제조가 이루어져야 하죠. 그리고 이러한 소재를 가지고 배터리셀을 만들어 판매할 곳, 즉 전기차 제조 기업도 있어야 하고요. 이것을 각각 전방 산업, 후방 산업이라고 부릅니다.
앞선 글에서 자세히 살펴보았던 것처럼, 한국은 이 전후방 산업 부문의 경쟁력이 중국과 일본에 비해 약합니다. 중국과 일본은 강력한 정부 지원, 기업 간의 끈끈한 연계를 통해 전후방 산업을 함께 키워나가고 있었죠.
그런데 최근, 한국 기업들도 전후방 산업 경쟁력을 갖추려고 동분서주하는 모습이 눈에 띕니다. 가장 큰 행보를 보이는 것은 SK입니다.
SK의 전기차 배터리 산업 육성 정책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수직 계열화’입니다. SK는 그룹 계열사가 직접 전방 산업에 진출하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전방 산업에 속하는 기업과 협정을 맺고 그들의 물건을 사 오는 것이 아니라요.
배터리셀의 4대 핵심 소재 중 하나인 분리막은 이미 SK이노베이션이 자체적으로 조달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난 6월 13일에는 배터리셀의 필수 소재 중 하나인 동박 제조업체인 KCFT를 인수하기도 했죠. KCFT는 제가 올해 1월 한중일 자동차 배터리 산업 경쟁력 분석 보고서를 쓸 무렵부터 계속 눈에 띄었던 기업입니다. 결국은 SK가 인수한다는 뉴스가 나왔군요. KCFT는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 파나소닉 등에 2차전지용 동박을 납품하고 있습니다. 2018년 전 세계 동박 시장 점유율이 15%로 1위인 기업입니다.
또한 5월 27일 SK 성장전략 발표회에서 김준 SK 이노베이션 총괄사장이 “현재 전기차 배터리에 머물러 있는 사업 영역을 배터리와 관련한 소재 등 모든 밸류체인으로 확대하겠다”라고 밝히기도 했죠.
이러한 수직 계열화 전략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저는 10점 만점에 10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네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중국, 일본과의 경쟁은 격화되는데 시간은 없고 (2) SK는 업계의 후발주자이며 (3) 산업 특성에도 부합하고 (4) SK는 수직 계열화를 할 능력도 된다는 점입니다.
좀 더 풀어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현재 세계 배터리 산업은 한중일 3국 기업이 경쟁하고 있죠. “한 발만 헛디뎌도 끝”이라고 할 수 있을만한 치열한 경쟁입니다. 주도권을 잡기 위해 무서운 속도로 공장을 증설하고, 연구 개발에 어마어마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일본은 ‘시간의 힘’으로 전후방 산업을 키워왔습니다. 중국은 ‘정부의 힘’으로 전후방 산업을 구축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이 둘 중 무엇도 아니죠. 한국에서도 전후방 산업이 있어 손 잡고 협력을 할 수 있으면 좋겠죠. 문제는 지금 와서 전후방 산업을 따로 육성할 시간이 없다는 겁니다. 새로운 기업이 고군분투하며 기술력을 확보하고 생산력을 갖춘다? 시간이 촉박합니다. 이런 상황일진대 SK와 같이 기술력과 자금력을 갖춘 대기업이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죠.
SK는 삼성이나 LG에 비해 배터리 셀 부문에서 후발주자입니다. 이미 오랜 공급선을 구축하고 있는 삼성이나 LG와 달리, 급격한 생산 확대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기업을 새롭게 찾아야 하죠. SK의 공급 확대 속도를 따라갈 수 있는 기업이 있는지도 불확실할뿐더러,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서로 공정이나 제품을 맞춰보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게다가 전기 자동차 배터리는 일부 소재가 변경되면 처음부터 다시 테스트를 거쳐야 할 만큼 품질관리에 민감한 제품입니다. 새로운 상대를 찾고 맞춰보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쏟느니, 능력이 된다면 그냥 기업 내부에서 해결하는 편이 품질관리에는 더 용이합니다.
이러한 ‘수직 계열화 전략’은 1960-70년대에 일본이 미국의 반도체를 빠르게 따라잡기 위해 사용했던 전략이기도 합니다. 당시 미국의 반도체 산업은 소수의 대기업(TI 등)과 다수의 실리콘밸리 벤처 · 중견 기업(NS, 인텔, 마이크론 테크놀로지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미국 대기업들은 수평적 통합 방식(계열사와 동등한 위치에서 협력하여 제조)을 고수하고 있었습니다. 벤처 기업들 역시 설계만 하고 생산은 전문 생산 업체에 외주를 주는 방식으로 반도체를 제작했죠.
반면 일본 기업은 자본력을 갖춘 종합 전자기업들(NES 등)이 반도체 산업에 진입하여, 설계부터 생산, 판매까지 모두 직접 관리하는 수직 계열화 방식을 택했습니다. 그 결과는 품질과 가격 경쟁력의 차이로 나타났죠.
1980년 3월 워싱턴에서 열린 일본전자산업협회(EIAJ)의 한 회의에서 HP 데이터 시스템 사업부의 총책임자가 소개한 연구 결과가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미국과 일본 반도체 각 3사의 제품을 비교해 보았는데, 미국 최고의 회사에서 만들어진 칩들이 일본 최하위 회사에서 만들어진 칩보다 여섯 배나 많은 에러율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미국 기업은 수직적 계열화를 달성한 일본 기업의 품질관리를 따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 결과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 일본 기업이 세계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게 되었죠. 결론적으로 기업의 능력만 받쳐준다면, 반도체나 배터리 같은 첨단기술+대량생산 분야에서는 수직적 계열화도 좋은 전략이라는 겁니다.
즉 현재 SK가 전기자동차 배터리 부문에서 추진하고 있는 수직 계열화 전략은, (1)시장 경쟁 구도 (2)시장에서 SK의 포지션 (3)전기차 배터리 산업의 특성을 고려할 때 아주 적절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SK가 아무리 대기업이라고는 해도 한 번에 모든 전후방 산업을 수직 계열화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죠. 그래서 배터리셀 제조에서 가까운 부문부터 수직계열화를 실시하고, 보다 먼 부문인 광물 원재료 관련 부문은 다른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보완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올해 4월 1일에는 중국 리튬 생산 업체인 티엔치(天齐) 그룹의 자회사와 수산화리튬 장기 공급계약을 체결했죠. (SK가 포스코와 협력하여 직접 해외 원재료 개발에 나섰다는 뉴스도 접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광물 원재료 부문은 현재 중국 기업이 강세이기 때문에 중국 기업과의 협력을 배제할 수 없었을 것 같습니다)
SK와 비교할 때, LG와 삼성은 상대적으로 수직 계열화에 대한 노력이 약합니다. 이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계속하겠습니다.
<SK와 비교해서 살펴보는 LG와 삼성의 움직임>, <포스코의 ‘후방 산업 진출’>에 대해 이야기하는 다음 글은 아래 링크를 통해 바로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