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할 때 남자가 여자 집에 돈을 건네는 차이리 풍습에 관하여
최근 중국에서 한 여성의 사연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량루이민(梁瑞敏)이라는 이 여성은 아버지가 뇌출혈이 일어나 치료비로 큰돈이 필요한 상태였다. 그녀는 이미 친척들에게도 힘닿는 대로 돈을 빌린 상태였지만 돈이 부족했다.
고민 끝에 그녀는 남자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내 '결혼할 때 나에게 줄 차이리를 미리 줄 수 있겠느냐'라고 물었다. 그러나 남자 친구는 대답을 회피한 끝에 결국 메신저에서 그녀를 차단해 버렸다. 중국의 네티즌들은 남자를 지지하는 쪽과 남자를 비난하는 쪽으로 나뉘어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과연 차이리(彩礼)가 무엇이기에 여자는 남자에게 '차이리를 먼저 줄 수 있겠느냐'라고 물었던 것일까?
결혼할 때 남자가 여자에게 돈을 준다는, 언뜻 보면 매매혼과 같은 인상을 주는 이 풍습은 왜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일까?
중국에서 여자의 부모는 정말 '돈을 받고 남자에게 딸을 파는' 것일까?
차이리는 중국에서 결혼할 때 신랑 측에서 신부에게 보내는 일종의 현금 예물이다. 차이리 금액은 정해져 있지 않다. 지역에 따라, 각 가정의 경제 수준에 따라, 당사자들 간의 합의에 따라 차이가 크다. 중국 핀테크 업체 와차이((挖财)의 통계에 따르면 2018년 중국 전역 차이리의 평균은 약 13만 9100위안이었다. 한화로 약 2,400만 원 상당이다.
이 통계에 따르면 충칭(重庆)은 차이리가 아예 없다. 반면 차이리가 가장 비싼 곳은 푸젠(福建)으로 그 금액이 30만 위안, 우리 돈으로 약 5,100만 원에 이른다. 물론 이는 각 지역별로 평균적인 금액일 뿐 구체적인 금액은 사람마다 다르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네이버에 '채례, 차이리, 결혼 지참금, 彩礼' 등의 검색어를 입력해 보면 중국의 차이리에 관해 다양한 글이 나온다. 그중에서도 몇몇 언론 기사를 살펴보면 차이리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신랑이 신부 집에 주는 보상금'
'중국 남성들이 장가를 들 때 처갓집에 지불하는 일정한 사례금'
'영문으로 신부값(bride price)으로 번역되는 차이리는 신랑이 자신들의 결혼을 보장받는 조건으로 신부 가족들에게 주는 금품'
이들은 중국의 차이리에 관해 어떤 이야기를 보도했을까? 헤드라인을 몇 가지 살펴보면 이렇다.
약혼녀 가족 몰살시키고 18년 도망 다닌 中남성 "후회 없다", 머니투데이, 2020-06-03
"저도 결혼하고 싶습니다" 중국 남성들의 눈물, 차이나랩, 2019-07-17
中 "결혼 악습 끊자"…'신부값' 지참금 1천만원 제한, 연합뉴스, 2017-01-05
中 청년들 `결혼사기`와 `지참금`에 두번 운다, 이데일리, 2009-06-07
만약 이러한 언론 보도들을 통해 중국의 차이리를 접한 사람이라면 차이리를 이렇게 여길 것 같다.
중국에서 결혼할 때 남성이 여성에게 보상금을 건네는 풍습
중국 남성들을 울리고 심지어는 약혼녀 가족에 대한 살인까지 일으키는 악습
성차별적이고 구시대적인 악습
이뿐만 아니라 네이버에서 차이리의 폐해에 관한 글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러한 글들을 종합하면 대표적인 폐해는 (1)중국 남성들은 결혼에 대해 지나치게 무거운 경제적 부담을 진다 (2)아들을 둔 부모는 차이리를 감당하지 못하고 빈곤의 수렁텅이로 빠지고 만다 (3)딸을 둔 부모는 차이리를 재테크 수단으로 삼는다 (4)중국과 베트남 경계에서 인신매매가 부쩍 늘어났다 등이 있다고 한다.
이쯤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어쩌면 이 글을 보는 분들 중에서도 같은 생각을 하신 분들이 계실 것 같다.
이토록 폐해가 큰 악습이라면 대체 왜 아직까지 버젓이 유지되는 것일까?
"중국이니까 그렇지".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는 너무 두리뭉실하고 편견에 가득 찬 대답인 것 같다. 아니면 혹시 이건 어떨까? 어쩌면 차이리에 무언가 순기능이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 눈에는 매매혼으로 보이는 차이리가 유지되는 어떤 이유 말이다.
중국의 바이두 백과의 '차이리' 항목을 보면 한 전문가가 '차이리는 예절입니다. 다만 과도하지 않게 해야겠지요'라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말에 따르면 중국인에게 있어서 차이리는 철폐해야 할 악습이라기보다는 과도하지만 않다면 유지해도 좋은 풍습인 셈이다.
중국 온라인에서 차이리에 관해 검색하다 한 편의 글을 보았다. "딸아, 나중에 네가 결혼할 때가 되면 나는 차이리를 요구할 거야"라는 글이었다. 이 글을 쓴 것은 세 살 난 딸아이의 엄마로, 글쓴이 자신은 결혼할 때 차이리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글쓴이의 어머니는 평소 비교적 돈에 집착하는 편이었지만 정작 글쓴이가 결혼할 때에는 '나는 딸을 결혼시키는 것이지 딸을 파는 것이 아니다'라며 차이리를 한 푼도 요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쓴이는 자신의 세 살 난 딸이 결혼할 무렵에는 차이리를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녀가 이렇게 생각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첫째, 딸의 결혼 생활을 보호할 장치가 필요하다. 손에 쥔 돈은 물질적인 안정일뿐만 아니라 삶의 좌절에 맞서 싸울 용기가 되어 준다. 결혼 생활은 책임과 협력, 그리고 수많은 갈등의 연속이다. 딸이 수입이 없는 기간에도 남편에게 종속되지 않고 가정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으려면 어느 정도의 돈을 쥐고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또한 차이리를 통해 목돈을 아내에게 건넨 남편은 위기가 찾아와도 가정을 지켜야 할 또 하나의 이유를 갖게 된다)
둘째, 이혼과 같은 만일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많은 중국 여성들이 결혼 전에는 경제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독립된 여성의 삶을 산다. 그러나 이들은 결혼 그리고 출산의 과정을 거치며 사회적 지위, 경제적 능력의 많은 부분을 희생해야만 한다. 글쓴이의 한 친구 역시 가정에 헌신하다 이혼하고 '중년의 이혼 여성'이 되었다. 수중에 쥔 것이 없는 그 친구의 미래는 너무나도 불확실한 것이 되어버렸다. 따라서 글쓴이는 '차이리로 받은 돈이 딸을 부자로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딸의 미래를 보호할 최소한의 비상금은 되어줄 수 있다'라고 이야기한다.
셋째, 사랑은 돈으로 측정할 수 없다. 그러나 차이리를 통해 딸과 결혼하겠다고 찾아온 남자의 태도, 특히 돈과 딸에 대한 태도만큼은 확인할 수 있다. 아직 젊은 딸을 대신해 이를 시험하는 것이 어머니인 나의 역할이다라는 것이 글쓴이의 생각이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때때로 신부의 부모님이 딸의 남자 친구가 미덥지 않을 때 거액의 차이리를 요구하기도 한다)
그녀는 가정을 꾸려 본 선배로서, 그리고 딸을 가장 사랑하는 엄마로서 이러한 현실적인 이유에 입각하여 '차이리를 요구할 것이다'라고 밝힌 것이다.
차이리는 여자 쪽 집안의 재테크 수단일까? 매매혼의 일종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차이리를 받고 나면 보통 여자 쪽 집안에서는 그 돈을 고스란히 딸에게 챙겨주거나, 시댁에 다른 방식(이를테면 선물 등)으로 돌려준다. 만약 딸에게 차이리를 챙겨준다면 그 돈을 어떻게 할지는 결혼 당사자인 딸이 결정한다. 신혼 살림에 보태기도 하고, 자신의 비상금으로 관리하기도 한다. 어떤 방식을 선택하든 당사자 나름의 고민을 거쳐 결정한 것일 테다. 덧붙여서 많은 중국인들 또한 과도한 차이리를 반대한다. 차이리로 어느 정도 금액이 합리적인가 하는 논쟁도 뜨겁다.
앞서 한국의 여러 매체들이 중국의 차이리를 어떻게 보도했는지 살펴보았다. 이들이 차이리를 묘사하는 방식과 중국 내부에서 차이리를 바라보는 시각은 사뭇 다르다. 이러한 온도 차이에 대해 나는 이런 생각을 해 본다. 한 나라의 풍습에 대해 폐해만을 부각해 '중국은 미개하고 야만적인 나라'라는 이미지를 빚어내서도 안되고, '21세기에 이런 문화가 아직도 존재한다니'라며 그러한 이미지를 의심 없이 받아들여서도 안된다. 중국도 사람 사는 곳이 아닌가. 그들 나름대로 세상 사는 규칙이 있을 테다. 우리와는 다른 그들의 규칙을 살펴보며 세상을 살아가는 다양한 지혜를 쌓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