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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별반짝 Jan 13. 2022

작년 하반기, 주식으로 200여 만원을 벌고 하는 생각

대학원에서 박사생이라는 신분으로 공부를 하고 있지만 돈 버는 것을 절대 놓을 수는 없다. 학업에 해가 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 시간을 쪼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여러 기관에 보고서를 써주고, 참가비를 주는 설문조사를 하고, 학교에서 조교로 일을 하고, 중국 제품을 대리구매 해주는 스마트스토어도 열어 본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벌어온 돈을 잘 굴리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원자재, 채권, 펀드, 적금, 달러화, 미국 주식, 한국 주식, 중국 본토 주식, 홍콩 주식에 이르기까지 좋은 땅을 골라 씨앗을 심고 물을 주기를 반복한다. 그 결과 올해 하반기에는 본격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었다. 미국 주식 매매로 얻은 수익이 180여 만원, 미국 주식 배당으로 얻은 수익이 10여 만원, 한국 주식 매매로 얻은 수익이 20여 만원이었다. 도합 약 210만원. 박사생이라는 저소득 직업을 가지고 그래도 올해 이만큼은 벌었네. 계속 하다 보면 더 많이 벌 날이 오겠지. 돈이 꼭 필요할 때 그 돈이 없어서 한이 될 일은 없겠지. 그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른다. 빨간색으로 찍혀 있는 수익금을 보면 참 기쁜데 한편으로는 코끝이 찡해진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학교가 끝나고 담임 선생님이 나를 교탁 쪽으로 부르셨다. 선생님이 내 일기장 한 면을 펼쳐놓고 물으셨다. "이런 말은 어디서 배웠니?" 선생님이 가리키는 글자를 보았다. 깍두기 공책에 연필로 쓰여진 삐뚤빼뚤한 글자. '인간 쓰레기'라는 말이었다. 우리 반에는 한 남자 아이가 있었다. 당시에는 내가 바보라고 생각했던, 지금 생각해 보면 다소 발달이 느리고 성격이 좋을 뿐이었던 아이였다. 내가 일기장에 그 아이를 가리켜 '00이는 인간 쓰레기다'라고 적었던 것이다. 선생님이 나를 타이르셨다. "이런 말은 정말 나쁜 말이야. 쓰면 안 되는 말이야. 알겠지?"


그 날 집에 가서 엄마에게 이 사실을 말했다. 엄마, 인간 쓰레기라는 말은 쓰면 안 되는 거래. 엄마가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지었다. 이미 흐려진 기억이라 그 표정이 어떠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것이 너무 슬픈 표정이었는지, 너무 미안한 표정이었는지, 너무 안타까운 표정이었는지, 그 무엇도 아닌 다른 어떤 감정을 담은 표정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 날 이후로 엄마는 그 말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을 많이 한 것 같았다. 중풍에 걸려 몸을 가누지 못하는 할아버지를 씻기면서 자꾸만 외치던 그 말을 더는 하지 않았다. 나도 자라면서 그 말을 다시 입에 담지 않았다.


외할아버지는 키가 정말 크셨다. 엄마가 170 센티미터인데, 할아버지는 그보다 큰 180 센티미터 정도의 큰 키를 갖고 계셨다. 아마 그렇게 큰 키를 하고 뚜벅뚜벅 걸어다니면 정말 멋있으셨을 것 같다. 하지만 중풍에 걸려 몸을 더 이상 가누지 못하시게 되자, 그런 할아버지를 부축해 욕실로 데려가고, 그 큰 몸을 일일히 씻기고, 물기를 닦고, 다시 일으켜 방으로 옮기는 일을 혼자서 해내야 하는 엄마는 너무나 힘들어 했다. 할아버지를 씻길 때면 속이 상해서 울고 할아버지를 향해 인간 쓰레기야, 인간 쓰레기야, 하면서 울음 섞인 말을 내뱉던 엄마와 그런 날들이 기억난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이었을 때니, 엄마 나이가 기껏해야 지금 내 나이 정도였겠다. 딱 지금 내 나이 말이다. 그 때 엄마는 아이 셋을 낳고, IMF로 실직한 아버지 대신 밖으로 나가 일을 시작하고, 아버지를 닮아 키가 컸던 남동생의 하반신 마비라는 청천벽력같은 일을 겪고, 그리고 몸을 가눌 수 없는 아버지를 모셨다.


그 때 만약에 우리 집이 조금만 더 넉넉했다면, 그래서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 같은 이 200만원 하는 돈이 그 때 우리집에도 있었더라면, 그랬다면 어땠을까. 할아버지 씻기는 일을 도와줄 사람도 구하고, 기저귀 갈고 식사를 챙겨줄 사람도 구하고, 단 두세달 만이라도 엄마가 더 편하게 할아버지를 모실 수 있었지 않을까?


그리고 만약에 내가 오늘 이 200만원 하는 돈을 벌지 않는다면, 그래서 시간이 지나 우리 집에 돌봐야 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내가 넉넉한 돈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나조차도 속이 너무 상하고 세상이 원망스러워서 그 사람을 인간 쓰레기라고 부르며 흐느껴 울게 되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작년 하반기 자본가가 되어 벌어들인 이 200만원의 돈이 참 소중하게 느껴지고, 그리고 참 원망스럽게 느껴지는 그런 날이다. 왜 이제야 왔니. 너가 늦어서 우리 엄마가 너무 힘들었잖아. 이제 어디 가지 말고 여기 꼭 내 옆에 있어주라. 너가 없으면 아무래도 안될 것 같아서 그래.


작년 하반기, 주식으로 200여 만원을 벌고 나서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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