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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별반짝 Apr 05. 2021

당신을 통해 세상을 본다는 기쁨

우리가 오늘 하루도 행복하고 충만하게 살아내야 할 한 가지 이유

"내가 신기한 곳 데려가 줄까?"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내게 물었다.

"학교에 신기한 별세계 같은 곳이 있어!"

나는 그녀의 꼬임에 홀랑 넘어가 그녀의 전기 오토바이 뒤에 흔쾌히 올라탔다. 얼마간 학교 캠퍼스 깊숙한 곳을 향해 달리더니, 그녀는 진지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들어봐! 지금 여기는 차 소리도 들리고 사람들 오가는 소리도 들려서 엄청 소란스럽잖아?"

"응 그러네"

"여기는 홍진(紅塵)의 세계야. 요란한 붉은 먼지의 세상!

자, 근데 여기서 1미터만 들어가면... 이렇게 된다구...!"


학교 안에 있는 정원 밍허웬(鸣鹤园)의 호수와 정자. copyright 2021. 딩마. All right reserved


가느다란 오솔길 끝에서 모퉁이를 돌자 갑자기 숨겨져 있던 자그만 호수가 나타났다. 마치 굉장한 비밀을 알려주는 것처럼 그녀가 흥분한 목소리로 내게 속삭이기를, 어떤 원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오솔길 모퉁이를 돌아 이 호숫가에 들어서기만 하면 소란스러운 바깥세상 소리가 일순간 멎어 든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말은 틀림이 없었다. 과연 이 호수 정원에 들어서는 순간 방금 전까지 들려오던 차 소리며 사람들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고, 오로지 고요한 자연의 소리만이 우리 곁에 남아있었다.


밍허웬(鸣鹤园) 정자에 서서 바라본 해질녘 호수. copyright 2021. 딩마. All right reserved


이 조그만 정원에서 나는 마치 우리가 신선 세계에 들어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해질 무렵의 오렌지색 햇빛, 산산한 바람, 물 위에 떠 다니는 토실토실한 오리들, 화려한 색깔을 입고 바람을 맞으며 서 있는 조그만 정자, 흔들리는 물에 비친 이 모든 것들의 그림자.


밍허웬(鸣鹤园) 호수 위를 헤엄치는 오리. copyright 2021. 딩마. All right reserved


그녀는 이 밍허웬이 천원지방(天圆地方: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이라는, 동아시아 사람들의 옛 우주관을 담은 공간이라고 했다. 옛날 사람들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고 생각했는데, 이 곳의 연못은 둥그렇고 정자는 네모난 것이 바로 그러한 생각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람이 머무는 정자는 땅과 같이 네모나고,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연못은 하늘과 같이 둥근 것이라고 했다.


아름다운 밍허웬(鸣鹤园)의 정자. copyright 2021. 딩마. All right reserved


그녀는 바람과 물과 햇볕을 사랑하고, 숲을 닮은 짙은 녹색과 물기를 머금은 연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학교 안에서 누구도 가보지 않았을 곳을 찾아낸다. 누구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을 법한 대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어느 날 그녀의 방에 놀러 갔을 때 벽에 붙은 사진을 구경한 적이 있었다. 그중에 돌사자상 사진이 있었다. 나도 학교를 오가며 종종 본 적이 있는 돌사자상이었다. 이걸 왜 붙여놨냐고 물었더니 그녀가 설명하기를, 이 돌사자상은 봄이면 옆에 봄꽃이 피고, 여름이면 초록빛 잎에 둘러싸이며, 가을이면 낙엽이 머물고, 겨울이면 흰 눈을 맞는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갈 때마다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돌사자상이 자기는 너무 좋다고 했다.


나의 시선은 그 돌사자상을 길가에 있는 무생물로 취급했지만, 그녀의 시선 속에서 그 돌사자상은 사계절 다른 모습을 하고 그녀를 기다리는 생명체가 되어 있었다.


이처럼 그녀와 함께 보내는 많은 시간들이 내게는 그전에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고, 알지 못했던 것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그녀를 통해 세상을 보는 것이 어느샌가 나의 기쁨이 되어 있었다.



당신을 통해 세상을 본다는 기쁨에 관하여


비단 그녀 하나뿐만이 아니다. 참 신기하게도 우리 사람들은 모두 다른 생각을 하며 이 세상을 살아간다. 우리 모두는 세상을 바라보는 각기 다른 렌즈를 지니고 있다. 서로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을 향해 모두 다른 색깔의 감정을 품고 있다. 나는 이것이 너무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와 다른 시선을 가진 당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당신을 통해 "당신이 살아가는 세상"을 엿보는 것이 즐겁다. 당신이 앞으로도 나에게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것들, 재미있는 것들을 많이 알려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당신 또한 나를 떠올릴 때 "당신을 통해 세상을 본다는 기쁨"이라는 말을 떠올려 주었으면 좋겠다. 나 또한 당신에게, 당신이 그동안 어디서도 보지 못한 것들을 보여주고, 알려주고, 느끼게 해 주는 사람이 되어주고 싶다. 마치 내가 당신을 통해 새로운 세상과 연결되는 기쁨을 느끼듯, 당신도 나를 통해 새로운 세상과 연결되는 기쁨을 느꼈으면 좋겠다.


이것이 요즘 나의 내면을 다지는 데에 큰 동기가 되어준다. 당신에게 지저분한 시선으로 얼룩지고, 왜곡된 생각으로 뒤틀린 세상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서. 당신이 나와의 시간을 기쁨이자 행운으로 여기도록 해 주기 위해서. 당신에게 즐겁고 재미난 이야기를 더 많이 들려주기 위해서. 이 세상을 흠뻑 겪고, 느끼고, 기억하고, 생각하고,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오늘 이 글을 통해 우리 모두가 곁의 누군가에게 "우리를 통해 세상을 본다는 기쁨"을 선물해 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우리 각자의 감각과 사고 하나하나가 그토록 의미 있는 것이라고. 그러니까 오늘 하루도 예쁘게 행복하게 충만하게 살아가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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