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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별반짝 Aug 07. 2019

한일 무역마찰의 핵심 열쇠, 국제 그리고 국내정치(1)

이것은 경제 문제가 아닙니다. 정치 문제입니다.


경제학의 관점에서 보면 납득할 수 없는 일입니다. 장사하는 사람이 VIP 손님을 내쫓고 있습니다. 물건을 제일 많이 사 가고 앞으로도 계속 제일 많이 사 갈 것 같은 VVIP 손님을 말입니다.


7월 1일 일본 경제산업성은 한국에 대해 반도체, 디스플레이 관련 3개 소재의 수출 규제를 강화하는 조치를 실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전략물자 수출관리제도를 운용하는 데 있어서 한국을 화이트국가에서 배제하는 절차를 실시하겠다며 수출 규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습니다. 그리고 8월 2일, 일본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기로 확정했습니다. 이 조치는 오는 28일부터 시행됩니다.



그렇다면 일본은 왜 이렇게 해야만 했을까요? 역시 경제적인 피해가 예상되는 미국은 왜 적극적인 중재에 나서지 않을까요? 한국은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 것이고, 한국이 쓸 수 있는 카드는 무엇일까요? 이 갈등은 얼마나 오래갈까요? 일본 제품 불매운동과 지소미아 연장 거부는 얼마나 효과적인 대응 전략이 되어줄까요?


오늘은 이러한 이야기를 국제 정치와 각국 국내 정치의 관점에서 풀어봅니다. 먼저 일본의 입장에서 국제 정치 구도와 일본 국내 정치 상황을 살펴봅니다. 이를 통해 왜 일본이 '지금 시점'에 '이러한 조치'를 취한 것일까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미국의 입장을 살펴봅니다. 이를 통해 미국이 왜 적극적인 중재에 나서지 않는지, 그들의 속내는 무엇인지 짚어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입장을 살펴봅니다. 이를 통해 한국은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한국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나면 이 갈등이 얼마나 오래갈지 그리고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나 지소미아 연장 거부가 어떤 역할을 해줄지에 대한 답을 함께 얻을 수 있을 겁니다.


한일 무역마찰은 경제 문제가 아닙니다. 정치 문제입니다. 국제 정치와 국내 정치, 이 두 개의 원인이 겹쳐져 경제적인 형태로 표출된 겁니다.


자, 그럼 일본의 이야기부터 시작해 볼까요?




"재팬 패싱"... 한반도 문제에 설 자리 없는 일본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 문제에 있어서 한반도가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는 '한반도 운전자론'을 내놓았습니다. 이에 대해 "운전석은커녕 조수석에도 못 앉는 것 아니냐", "한반도 운전자론이 아니라 한반도 왕따론이다"같은 회의적인 시각이 대다수였죠. 우리 문제를 우리가 주도하여 해결해야 한다는 것은 사실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당사자인 우리 자신들조차도 이것이 실현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습니다.


2018년에 들어설 무렵부터 상황은 완전히 반전되었죠. 평창올림픽 기간에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중단하기로 미국과 합의했고, 북한과의 물밑 대화가 숨 가쁘게 전개되었으며, 이후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졌고, 6월에는 한국의 주도로 제1차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되기까지 했습니다. 2019년에도 계속해서 이러한 만남과 대화가 이어졌죠.


한정된 무대에서 누군가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 누군가는 어두컴컴한 구석에 서 있어야 하는 법. 한국, 북한, 미국이 나란히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동안 일본은 구석으로 밀려나 있었습니다. 자기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일본은 아는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었습니다.


동북아 문제에 있어서 긴밀하게 정보를 주고받고 한 몸처럼 움직이던 미국은 남북한과 직접 소통하고 있었죠. 일본을 거치지 않으면서요. 북한과 대화하는 데 열중하느라 한국도 미국도 일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일본은 발을 동동 구르다가 북한에게 "조건 없이 대화하고 싶다"며 러브콜을 보냈지만 완전히 외면당했죠. 동북아 문제에서 일본이 배제되는 ‘재팬 패싱’에 대한 우려가 일본 내에서 점차 고조되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자존심이 상한다’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보다 훨씬 심각합니다. 일본의 미래가 달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아시아 지역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던 국가입니다. 한 손에는 칼자루, 다른 손에는 방패를 쥔 기사처럼, 아시아개발은행(ADB)의 자금력 그리고 미국과의 긴밀한 동맹관계가 일본의 영향력을 뒷받침해 주었죠. 일본은 1946년 11월 3일 제정된 헌법 제9조에 의해 독자적인 군대를 보유하지 못합니다. 국가안보를 확보하고 경제를 계속 발전시키기 위해서 군사력이라는 카드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대신 외교적인 카드, 즉 국제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방법으로 접근해야만 하죠. ‘재팬 패싱’은 자존심에 대한 문제가 아닙니다. 일본으로서는 생존이 걸린 문제입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2018년은 한국이 북한과 미국 사이의 중개를 통해 놀라울 정도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시기였습니다. 동시에 일본은 '재팬 패싱'에 대한 우려로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던 시기였죠. 그 때 한국이 일본을 포용하고 '한국과 일본은 전략적 동반자'라는 프레임을 만들어 주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랬다면 비록 일본은 영향력이 축소되었을지언정 극도의 위기감은 느끼지 않았을 것이고, 미국으로 달려가 '일본인 납치 문제도 같이 얘기 좀 해 주세요'라고 미국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사정하는 상황도 없었을 겁니다. 한국은 동아시아의 훌륭한 조정자라는 이미지를 한층 공고히 할 수 있었을 테고요. 물론 한국에게 손 내밀기 싫어서 북한에게 달려가 대화하자고 요청한 일본의 선택도 썩 보기 좋지는 않았지만요.


결국 근 2년여간 일본은 북한 문제의 이해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논의의 중심에서 배제되어 있었습니다. 동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은 눈에 띄게 축소되었고, 일본의 위기감은 날로 커져갔습니다.




국제 환경은 변하는데 일본을 속박하는 제약은 그대로...  ‘보통국가론’, 목소리를 높이다

아베 총리를 필두로 한 정치세력이 주도하는 헌법 개정을 ‘일본 제국주의의 부활’, ‘전범국의 야망’이라는 단면적인 시선으로만 바라봐서는 안 됩니다. 즉 일본이 보수우경화-군사대국화-군국주의화되고 있다는 시각에 대해 저는 두 가지 부분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첫 번째, 전범국이라는 딱지를 잠깐 떼고 생각해 보는 겁니다. 일본에서 헌법 개정을 주장하는 이들은 왜 그런 주장을 하는 걸까요? 물론 일본 내에 ‘제국의 영광을 다시 되찾자!!!’, ‘아시아의 패권국으로!!!’ 같은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 이들도 있겠죠. 그런데 이런 극단적인 주장을 가지고 다수 국민들의 지지를 얻어내서 헌법을 개정한다는 건 사실상 어렵지 않을까요? 그보다 현실적인 이유, ‘우리는 진짜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라고 호소할 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보는 게 더 합리적이죠. 그렇다면 그 이유가 뭘까요? '안보'입니다. 생명의 위협이요.


이렇게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 옆 집에 이상한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자꾸 불장난을 합니다. 한 번씩 우리 집 담장 너머로 화염병도 던져요. 아직 우리 집을 맞추지는 않았는데 담장 근처 땅바닥에 콰직 하고 화염병이 넘어와 깨진 것이 벌써 한두 번이 아닙니다. 화염병이 우리 머리 위를 지나간 적도 있어요.


옆 집의 옆 집에는 또 다른 이상한 사람이 살고 있는데요. 덩치가 엄청 큰 사람이에요. 동네를 다니다가 한 번씩 마주치면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 어깨를 툭 부딪히고 지나갑니다. 요새는 집에서 키운다며 자꾸 커다란 개를 데려와요. 개가 한 번씩 컹컹 너무 사납게 짖어대요.


경찰을 불렀는데 경찰도 제대로 해결을 해 주지 않아요. 게다가 요즘 경찰의 설렁설렁한 태도를 보니 다음에 내 목숨이 위험하면 제 때 와줄 지도 의심스러워요.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서 집에 무기를 구비해 놓아야 할 것 같습니다.



위의 이야기를 통해 제가 제시하고 싶은 것은 국제정세의 변화로 현재 일본이 직면한 세 가지 위기입니다. 바로 북한의 위협, 중국의 부상, 미국의 외면이죠.


일본은 북한이 미국을 향해 쏜다는 그 미사일이 머리 위로 지나가는 위치에 있습니다. 북한이 실험을 한다고 툭툭 쏘는 미사일에 진짜로 안보 위협을 받는 겁니다.


또한 중국이라는 어마어마한 위협이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동남아와 아프리카 등의 지역에서 중국과 경제적 영향력을 두고 경쟁하고 있지만 경제가 쇠퇴하고 있는 일본의 힘은 예전 같지 않습니다. 일본의 GDP가 중국에게 역전당한 것이 이미 2010년의 일입니다. 중국의 국방비 지출도 일본을 역전한 지 오래인데 2016년에는 그 규모가 일본의 3배 이상에 달했습니다. 조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일본명 센카쿠 열도)를 두고 중국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일본으로써는 정말이지 피부에 와 닿는 위협이죠.


2차 대전에서 패한 이후 미국의 요구대로 군사력을 모두 내려놓고 살아왔는데, 요즘 미국 대통령인 트럼프는 "세계의 경찰 역할 따위 집어치워, 미국의 이익이 우선이다!!"라고 외치고 다닙니다. 일본이 정말 위기에 처했을 때, 미국의 군사력이 절실히 필요할 때, 미국은 과연 우리를 지켜줄까?라는 의심이 들 법도 하지요.


이 일촉즉발의 싸움터에서 맨손으로 더 버틸 수 없을 것 같다. 헌법을 개정하고 최소한 우리를 지킬 정도의 군사력은 스스로 갖춰야 한다. 이것이 헌법 개정을 외치는 이들의 주장입니다. 그리고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들이 이토록 간절하게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라고 호소하는 것도 납득을 못 할 일은 아닙니다.



두 번째, 헌법 개정은 반드시 일본에게 좋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일본 내에서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아직까지 개정을 못 하고 있는 겁니다.


미국은 전쟁에서 패한 일본에게 군사력을 보유하지 말 것을 강요했습니다. 따라서 일본은 강대국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군사력을 사용해야 하는 문제에 있어서 꽤나 '자유로웠죠'. 예를 들어 1991년 걸프전 때 미국은 우방국들에게 중동 지역에 군대를 파견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때 일본은 금전적인 도움만 주고 발을 뺄 수 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를 ‘수표 외교’라고 손가락질했습니다. 일본 내에도 이를 부끄럽게 여기는 이들이 있었겠죠. 그러나 내 가족, 내 형제, 내 이웃이 죽지 않고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분명 있었을 겁니다.


바로 이 부분입니다. 헌법을 개정하고 군사력을 갖추면, 그에 걸맞은 비용과 책임이 수반된다는 것이죠. 아직까지 이것을 원하지 않는 이들이 일본 국민의 다수를 차지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헌법 개정에 대한 논의가 지지부진한 거죠. 헌법 개정이 꼭 필요하다고 믿는 아베 정권은 속이 탑니다. 정권이 끝나기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강력한 한 방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따라서 일본이 ‘지금’ 한국에게 무역 전쟁을 걸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자, 한국이라는 외부 위협이 실재한다는 것을 국민들의 눈 앞에 보여준다면 어떨까요? 일본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면서 ‘안보 문제’라는 프레임을 씌웠습니다. 아마도 국민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은 거겠죠.


보세요! 한국은 우리의 완전한 우방 국가가 아니에요. 한국은 완전한 미국 편도 아니에요. 한국이 이대로 북한과 친하게 지내면 위험해요! 한국과 북한, 중국, 그리고 러시아는 언제든 손을 잡고 우리를 위협할 수 있어요!



또 한 가지, 헌법 개정을 위해서 일본은 먼저 ‘전범 국가’라는 굴레를 벗어나야 합니다. 그런데 일본 입장에서 한국은 끊임없이 그 과거를 들쑤십니다. 일본의 경제적인 영향력 하에 있는 동남아 국가들은 억울한 부분이 있어도 말이 없습니다. 중국은 과거사 문제를 덮어두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끄집어내는 편도 아닙니다. 하지만 한국은요? 특히 최근 몇 년간 한일 관계에서 가장 두드러진 화두가 바로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문제였죠. 그리고 이러한 문제, 즉 일본이 전범국가임을 강력하게 상기시키는 이러한 문제를 한국은 너무나도 당당하게, 대담하게, 그리고 전 세계가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꼬집습니다.



결국 헌법 개정을 위한 세력을 키울 국내 정치적 필요성, 그리고 동북아에서의 영향력을 지켜야 한다는 국제 정치적 필요성이 지금 일본이 한국을 향해 무역전쟁을 걸도록 만든 두 개의 동력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경제보복'이라는 표현도 사실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에 대한 보복입니까? 위안부 합의 파기와 강제징용 피해자 판결에 대한 보복일까요? 아닙니다. 국내 정치와 국제정치라는 큰 틀에서 보았을 때, 이 두 가지 문제는 흐름을 구성하는 일부 요소에 불과합니다. 즉 위안부 그리고 강제징용 문제가 이번 무역마찰의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라는 것이죠. 무역마찰은 국내 정치 그리고 국제정치적 필요에 의해 발생한 사건입니다. 자, 그러면 이 공격을 받아내는 한국 그리고 중재의 역할을 맡은 미국은 어떤 정치적 필요를 가지고 움직이게 될까요?



"한일 무역마찰은 경제가 아니라 정치 문제다"는 총 세 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시리즈를 함께 보기 편하시도록 링크를 걸어드려요 :)


<1편> (이번 편)

일본 국제정치 · 국내 정치 분석

- 왜 일본은 지금 이 시점에 이러한 조치를 취했을까?


<2편>

미국 국제정치 · 국내 정치 분석

- 미국은 왜 적극적인 중재에 나서지 않을까?

- 미국의 속내는 무엇일까?


<3편>

한국 국제정치 · 국내 정치 분석

- 한국은 지금 정확히 어떤 상황에 처해있을까?

- 앞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 일본 제품 불매운동과 지소미아 연장 거부는 어떤 역할을 해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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