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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별반짝 Aug 12. 2019

한일 무역마찰의 핵심 열쇠, 국제 그리고 국내정치(2)

미국, 그들은 어떤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는가


싸움이란 일으키는 데에도 명분이 필요하고 멈추는 데에도 명분이 필요합니다. 사람 간에도 그러할진대 국가 간에는 말할 것도 없죠. 그래서 일본이 이 싸움을 멈추기 위해서는 명분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이러해서 싸움을 걸었는데, 내가 요구하는 것이 해결됐다, 오케이, 그럼 이제 멈추겠다. 아베 정부는 한국에게 그리고 일본 국민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아베 정부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안보'라는 프레임을 내걸고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싸움이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보복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안보는 핑계"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일본이 말하는 '안보'라는 문제제기가 핑계가 아니라 오히려 전체 상황을 대단히 함축적으로 잘 표현해주고 있는 단어인 겁니다. 왜냐하면 일본은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 때문만이 아니라 북한 문제를 논의하는 데 있어서 자신들이 완전히 배제된 국면을 두고 문제제기를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안보'라는 문제제기를 통해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죠.


"한국은 북한과 가깝게 지낸다. 반면 일본과는 대화하지 않는다. 한미일 삼각 동맹이 제대로 존재하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우리는 한국이 우방국이라는 것을 완전히 신뢰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일본이 싸움을 멈추도록 하려면 이러한 문제제기에 답을 내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일본이 안보 문제를 거론하며 싸움을 걸어왔을 때 황당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던 한국으로서는 솔직히 해 줄 말이 별로 없습니다.


또한 북한 문제에 있어서 동북아에 형성되는 구도는 북중러 vs 한미일 구도입니다. 사실 한국과 일본의 공조는 한미일 삼각 동맹이라는 큰 틀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결국 또 한 명의 당사자인 미국이 나서서 일본에게는 "야, 무슨 소리야. 그래도 한국은 우리 편이 맞지. 적당히 그만 해"라고 이야기해서 슬그머니 칼을 내려놓을 여지를 줘야 합니다. 한국에게는 "너도 좀 더 확실한 태도를 보여줘. 우리가 동맹이라는 걸 의심할 필요 없도록"이라고 이야기해서 한국이 행동할 공간을 줘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 미국은 자신의 역할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나서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왜 이들은 적극적인 중재에 나서지 않는 걸까요? 이들은 어떤 정치적 필요를 가지고 움직이는 걸까요? 오늘은 여기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시간 끌수록 유리하다... 계산기 두드리는 트럼프

가장 먼저 우리가 짚어봐야 하는 것은 지금 미국이 중재에 나서는 데 있어서 '누구의 의지가 가장 중요한가'입니다. 이 사안의 결정권자가 누구인지, 그의 정치적 이해는 어떠한지 짚어보는 것이죠. 한국과 일본 사이의 마찰을 중재하기 위해 나설 것인가 하는 중대 사안의 최종 결정권자라고 하면 당연히 미국 행정부의 수장인 트럼프입니다. 그리고 지금 그가 정치적 행보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고려해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는 내년에 있을 대통령 선거일 테고요.



트럼프는 이미 지난 6월 재출마를 선언했고, 트럼프에 대항할 민주당 후보들도 당내 경선을 위해 바삐 움직이고 있습니다. 재선을 위해서 트럼프는 국민들이 고개를 끄덕일 만한 성적표를 내밀어야 합니다. 남은 기간 동안 걸어볼 만한 것은 '미중 무역전쟁 합의 타결 · 북핵 협상 진전 · 방위비 분담금 증액'과 같은 이슈들이죠.


그러나 세 가지 모두 트럼프가 힘껏 밀어붙이고는 있지만 어떤 결과가 나올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미중 무역전쟁의 경우, 타결이 되지 않으면 트럼프의 재선이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중국이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민주당 그중에서도 친중파인 바이든 전 부통령이 당선될 경우 지금보다 훨씬 나은 조건으로 갈등을 봉합할 수 있으리라는 계산도 가능하고요. 그래서 트럼프가 "만약에 내가 재선 된 다음에 협상이 타결된다면 지금보다 훨씬 안 좋은 조건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라고 협박을 날리고 있지만, 중국은 살짝 간을 보며 분위기를 지켜보는 모양새입니다. 중국으로써는 일종의 도박이죠. 트럼프 당선에 걸 것이냐, 민주당 후보의 당선에 걸 것이냐.


북핵 협상 역시 밀어붙여보기는 하지만 트럼프가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영역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제 방위비 분담금이라도 반드시 관철시켜야 하는데, 문제는 그냥 올려 받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많이' 올려 받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고고익선(高高益善)이랄까요. 트럼프가 미국 국민들 앞에 가져가서 "내가 이렇게 역대급으로 올려 받았다!! 내 협상력 진짜 최고다!! 미국을 위해 진짜 나만한 사람이 없는 듯!!!"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요.



그래서 방위비 청구서를 들이밀어야 하는 미국 입장에서는 미국의 역할을 부각시킬 수 있는 한일 간의 싸움은 슬그머니 미소를 지을 만한 좋은 일입니다. 한국과 일본 간의 싸움이 어떻게 흘러가든 미국의 역할은 중요합니다. 싸움이 피 터지게 치열해지면 당연히 옆에서 뜯어말리는 사람이 있어야 되고요. 싸움이 느슨해지면 또 그것대로 옆에서 팔 붙잡고 말려줘야 싸우는 사람이 "내가 말리는 사람 봐서 그만하는 거야!!"라고 말하며 슬그머니 팔 내릴 수 있으니까요.


이러한 역할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미국은 한국이 중재를 요청해도 나서지 않고 한국과 일본에게 방위비 청구서를 먼저 들이민 겁니다. "자, 서로 다 아는 사람들끼리 적당히 가격 높여 부릅시다~? 안 그러면 나도 개입 안 해줍니다~?"라고 말하면서요.



그리고 또 한 가지, 미국도 이번 일을 통해 한국을 길들이고 싶어 할 수 있습니다. 뒤에서 슬쩍 일본의 등을 뚜덕뚜덕 두드려 주는 거지요.


세상이 변했고 한국의 역할도 변했습니다. 중국이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성장한 이상 한국도 언제까지나 미국 바라기 노릇만 할 수는 없습니다. 한국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미국과 중국이라는 시소에서 균형점 노릇을 해야 합니다. 또 남한의 토지와 인구를 가지고 경제성장이 한계에 달한 이상 북한과의 경제협력을 통해 재도약의 발판을 만들어야 하고요.


그런데 미국이 보기에는 이런 한국이 너무 똑똑한 겁니다. 너무 주체적이고요. 그냥 내가 시키는 거 고분고분 잘해 줬으면 좋겠는데 한국은 뒤에서 나름대로 계산기를 다 두들겨 봅니다. 앞으로 호르무즈 호위 연합체에 파병해 달라는 요구도 해야 하고, 한국에 중거리 미사일 배치도 했으면 좋겠는데 곧이곧대로 말을 듣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일본이 팔 걷어붙인 김에 한번 꾹 눌러 주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할 수 있죠.


그래서 미국은 한국과 일본의 싸움에 바로 개입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시간을 끌수록 유리하죠. 어차피 한국과 일본 둘이서 마무리하기는 어려운 싸움입니다. 일본이 싸움을 멈출 명분을 한국이 주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미국이 한 번은 나서 줘야 합니다. 방위금 분담금 문제, 파병 문제, 미사일 문제가 차근차근 쌓여 있으니, 싸움 개입을 지렛대 삼아 원하는 걸 최대한 얻어낸 다음 한 번 나서 주면 됩니다. 미국으로서는 좋은 협상 카드가 하나 더 생겼습니다. 이제 차려진 상에서 밥 다 먹고 천천히 일어나려고 하겠죠.


"한국과 일본은 줄곧 다투고 있다. 나는 그들이 서로 잘 지내지 않는 것이 걱정된다"




* 8/12 오후 3시. 내용을 추가합니다. 오늘 오후 1시경 새로 올라온 기사에 따르면 정부는 미국이 중재에 나설 경우 그에 따른 명세서를 요구할 것이라는 문제를 명확히 인지하고 있고 거기에 알맞은 대응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은 지난달 미국에 방문했을 때 한일 갈등 상황에 대한 미국의 중재를 요청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미국에 방문한 목적은 우리 입장을 객관적인 차원에서 설명하고 미국의 입장을 듣고자 한 것이다. 미국에 중재를 요청하면 청구서가 날아오고 반대급부를 요구할 것이 뻔한데, 제가 왜 중재를 요청하겠는가”(8/12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

출처 중앙일보, <김현종 “美에 중재 요청 안 했다…‘글로벌 호구’될 일 있나”>, 2019.08.12




자, 그러면 마지막으로 한국은 지금 정확히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 진단해 보며 어떤 대응 방법이 바람직할지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소미아 파기와 일본 불매운동이 정확히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관해서도 함께 짚어봅니다.




"한일 무역마찰은 경제가 아니라 정치 문제다"는 총 세 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시리즈를 함께 보기 편하시도록 링크를 걸어드려요 :)


<1편>

일본 국제정치 · 국내 정치 분석

- 왜 일본은 지금 이 시점에 이러한 조치를 취했을까?


<2편> (이번 편)

미국 국제정치 · 국내 정치 분석

- 미국은 왜 적극적인 중재에 나서지 않을까?

- 미국의 속내는 무엇일까?


<3편>

한국 국제정치 · 국내 정치 분석

- 한국은 지금 정확히 어떤 상황에 처해있을까?

- 앞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 일본 제품 불매운동과 지소미아 연장 거부는 어떤 역할을 해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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