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치료의 가장 큰 의의는 무엇일까?
한국에 들어왔다.
입국장에서 걸어 나오는 나를 본 엄마는 수척해진 내 얼굴을 보고 내심 놀란 모양이었다. 부스스한 머리, 하얗게 뜬 얼굴과 울 듯 말듯한 표정, 조그맣게 웅크린 어깨를 보고 나의 상태가 좋지 않음을 느낀 것 같았다.
동생과 엄마는 며칠 동안 계속 번갈아가며 나를 보살폈다. 쇼핑몰, 스타벅스, 초밥집, 절,... 내가 먹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을 캐물어가며 나를 데리고 다녔다. 하지만 한국에 왔다고 해서, 가족들과 함께라고 해서, 먹고 싶은 것을 먹는다고 해서 구겨진 종잇장 같은 마음이 저절로 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유서를 쓰고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모든 것으로부터 마음을 접고 고개를 돌렸던 그 기억이 너무 생생해서 눈 앞의 맛있는 음식이, 분위기 좋은 카페가, 새 옷과 신발이, 예쁜 동생과 혹은 엄마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전부 눈 앞의 신기루처럼 덧없이 느껴졌다.
현실과 정신의 괴리가 점점 더 벌어져 갔다. 그 위에 세워진 내 마음의 성은 갈라지는 땅 위에서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불안불안했다.
역시 병원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한 가지 망설여지는 점이 있었다.
치료가 될까? 특히, 근본적인 치료가 될까?라는 의문이었다.
나는 그때까지 나의 문제, 나의 괴로움을 정확히 뭐라고 불러야 할지 잘 몰랐다. 내가 아는 지식 범위 내에서 나는 어쨌든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이었다.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마주치곤 하는 우울한 '감정'이 아니라 내 생명을 위협하는 어떤 '병'으로서의 우울증 말이다.
그렇지만 이 형체도 없는 병을 의사가 대체 어떻게 파악하고 어떻게 치료해줄 수 있을까?
의사 선생님이 진단의 근거로 삼을 수 있는 '증상'이라고는 내가 느끼는 일련의 감정 상태와 내가 스스로 관찰한 나 자신의 행동 패턴이 전부다. 엑스레이 사진, CT 사진, 혈압계의 숫자와 같이 객관적이고 정형화된 지표는 없다. 내가 진료실에 들어가서 참으로 개인적이고 사소하고 조그맣고 뒤죽박죽인 감정의 서사를 풀어놓으면, 의사 선생님은 과연 이 형체 없는 증상을 어떻게 '처리'해 낼까?
나의 뒤죽박죽인 이야기에서 판단의 근거들을 잘 끄집어내 줄까? 만약 정말 중요한 것을 누락시켜 버리면 어떻게 하지? 그래서 내가 이상한 병, 아니면 다른 병으로 진단받으면 어떻게 하지? 그래서 혹시 영원히 낫지 못하고 고통받으면 어떻게 하지?
나에게는 정신건강의학과를 터부시 하는 시각보다 정말 진단을 받고 치료도 할 수 있을까라는 이 걱정이 더 큰 부담이었다.
하지만 점점 더 무너져가는 정신으로 버티듯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한계였기 때문에 일단 전문가를 만나라도 보자는 심정으로 병원을 찾았다.
치료를 시작한 후에 나는 알게 되었다.
정신건강의학이라는 이 학문은 내가 지레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학문이었음을. 그리고 의사 선생님의 도움을 받으면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우선 병의 진단에 있어서, 다른 어떤 분과와도 마찬가지로 정신건강의학과 역시 체계적인 진단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당연한 것이지만 나는 실제로 진료실에 들어가서 상담을 받기 전까지 이것이 가능하리라고 믿지 못했다. 상담을 받으며 내가 느낀 것은(의학적 지식이 없기 때문에 내가 받은 인상이 정확한 것은 아닐 수도 있지만), 사소하고 개인적이고 정형화된 패턴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정신적인 증상도 의사 선생님과의 상담을 통해 얼마든지 △특징적 증상 △증상의 경중 △지속 기간 △원인을 파악할 수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치료할 증상의 범위(치료 강도)와 완화할 증상(치료 타깃)을 설정하는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약물 치료 역시 상당한 도움이 되었는데 지금 내가 약물 치료를 대하는 마음가짐은 "약물 치료는 디딤돌이다"라는 것이다.
나는 처음 진료를 받고 약물치료를 시작하며 줄곧 약물의 효과, 특히 그 효과의 지속성에 매우 큰 의문을 품었다.
만약 내가 약, 예를 들어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를 복용한다면, 약을 먹는 동안 체내의 세로토닌 농도가 조금 더 높아지고 그로 인해 우울감을 덜 느낄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언젠가 약 복용을 멈춘다면 어떻게 될까? 체내 세로토닌 농도가 원래대로 돌아오고, 나는 다시 약을 먹기 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가게 되는 것일까?
약을 평생 동안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이런 나의 의문에 대해 의사 선생님은 "한번 시도해 보세요"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약을 먹기 시작하며 내가 느낀 것은 일단 이 약은 예상대로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이렇다. 증상과 원인에 따라 누군가는 또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약은 어쩌면 나에게 우울증의 근본적인 원인을 돌아볼 여력과, 해결할 시간과, 해결을 시도할 용기를 빌려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런 나의 마음가짐을 응원하듯 의사 선생님은 상담 때마다 나에게 "시도해 보세요"라는 말씀을 하신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냥 해 보세요."
"조금 과해도 괜찮아요, 그렇게 해서 적정 선을 찾으면 되죠."
"이상한 사람이라는 소리 들을 수도 있어요. 반대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어요. 해 봐야 알죠."
우울증을 겪음에 있어서 가장 위험한 상황,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 그리고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방법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구나 하는 점을 이렇게 깨달았다.
이번 일로 전문가, 주변 사람들, 그리고 약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그 덕분에 내가 어려웠던 점을 직면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어쩌면, 최악의 시기라고 생각했던 이 시기가 바로 나를 돌아보고 그동안 가장 무거웠던 마음의 짐을 덜 기회일지도 모른다.
내가 진짜 원하는 나의 모습을 고민하고 삶을 더 나은 모습으로 가꾸어나갈 시간일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 나에게는 병원 치료의 가장 큰 의의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