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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별반짝 Aug 03. 2020

'야반도주'로 막 내린 ofo(오포) 5년의 이야기

공유자전거 업계 세계 1위였던 오포의 결말을 어떻게 봐야 할까?

증발했다


사무실이 아무도 모르게 비워졌다. 책임자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중국 공유경제 열풍의 신호탄을 쏘았던 공유자전거 업체 오포(ofo)의 이야기다.


오포는 북경대학교 출신의 다이웨이(戴威)가 창업해, 2017년 무렵에는 미국, 영국 등 전 세계로 사업을 확장하기도 했다. 중국 1위, 세계 1위 공유자전거 업체라는 타이틀을 달기도 했다. 마치 신화와도 같았던 오포의 이야기는 그의 여섯 살 생일을 앞두고 '야반도주'라는 결말로 끝나 버렸다.


우리는 오포의 이러한 결말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이 글에서는 오포의 '야반도주'에 관한 사실을 정리하고, 이와 관련하여 생각해볼 만한 점을 다루어 볼 것이다. 분명한 점은 오포 사건이 단순한 가십거리는 아니라는 점이다. 오포의 비상과 추락은 중국 공유경제 산업에 남아 반면교사의 역할을 할 것이다. 우리 또한 이 사건을 통해 다양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도심에 놓여 있는 오포 자전거. 사진 출처: 시각중국(视觉中国)




오포의 증발

7월 28일 "베이징 하이뎬구에 있는 오포 사무실을 찾아가보니 텅 빈 상태였다"라는 중국 매체들의 보도가 나왔다. 2018년 말 이후로 오포는 계속해서 사무실 공간을 조용히 옮겨 다녔다. '오포가 곧 파산한다'라는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오포 사무실로 몰려들어 보증금 반환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아무리 조용히 사무실을 옮겼어도 곧 사람들에 의해 다시 발견되곤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시간이 꽤 지나도록 그 누구도 이들을 다시 찾지 못하고 있다. 아주 철저히 몸을 숨긴 것이다.


앞서 5월 9일에는 베이징 창핑구 인민법원의 집행재정서(裁定书)에서 '피집행인을 찾지 못했고, 집행 가능한 피집행인의 재산 또한 발견하지 못했다'라는 문구가 발견되었다. 이는 즉 오포가 진 거액의 채무에 대해 책임질 사람도, 채무를 갚기 위해 강제집행할 재산도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중국 주요 언론들은 "법원도 찾지 못했다"라는 헤드라인으로 이 사실을 보도했다. 인터넷에서는 일대 소란이 일어났다.


오포의 앱은 여전히 사용할 수 있다. 중국 국민 메신저 위챗의 오포 공식 계정과 그 포스트도 여전히 남아 있다. 길거리에는 여전히 오포의 노랑 자전거가 놓여 있다. 채무 소송과 보증금 환불을 기다리는 천만 명 이상의 대기열도 그대로다. 사람만이, 오포의 빚을 책임질 사람만이 이처럼 감쪽같이 증발해 버렸다.


텅 빈 오포 사무실 (사진 출처: 테크웹)


오포가 남긴 채무는 얼마인가? 확인된 것만 총 20억 위안, 한화로 약 3,400억 원 정도이다. 사용자들이 오포의 공유 자전거 서비스 이용을 신청할 때 낸 보증금이 1인당 99위안에서 199위안 정도(한화 약 17,000원에서 34,000원)이다. 1인당 99위안으로 작게 잡아도 1582만 명이면 미환불 보증금이 15억 위안이다. 경영난을 겪으며 정리한 직원들의 퇴직금, 경영난 이후에도 계속 근무한 직원들의 급여도 밀려 있다. 다만 구체적인 금액은 알려지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거래처, 주로 자전거 공급상들에 밀린 대금도 5억 위안 이상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렇게 해서 알려진 것만 총 20억 위안이다.


오포가 남긴 주요 채무. 내용 출처 텐센트 뉴스(腾讯新闻), 한국어 번역은 필자.




오포의 몰락을 바라보는 중국 내 여론

이번 '오포의 증발'에 관한 여론을 '동심원'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마치 '오포 사태'를 중심으로 하는 동심원과 같이 (1)오포의 증발에 밀접한 영향을 받는 이해관계자의 시각 (2)거기서 한 발 떨어져 오포의 '이야기'에 주목하는 관찰자의 시각 (3)그리고 오포 사태와 공유경제 산업 사이의 관련성을 찾으려는 분석가의 시각이 공존하고 있다.


글, 그림: 필자 작성


이해관계자란 보증금 반환을 기다리던 사용자, 오포가 파산 위기 무렵 시도한 가상화폐 서비스에 투자한 소수의 사용자, 대금 지불을 기다리는 공급상, 그리고 기존 직원들을 가리킨다.


오포 관련 뉴스를 보면 댓글 중에서 정말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내 보증금은 결국 떼먹힌 거냐"라는 성토 댓글이다. 또 오포는 자금난 이후 사업 다각화를 위해 가상화폐 서비스를 시도했다. 여기에 투자한 사람들도 소수 있다. 당시 미래가 밝지 않던 오포에 투자할 때부터 이미 각오(?)했겠지만 투자금은 아마 회수하지 못할 것이다. 이들은 여기에 대해 아쉬움을 내비친다.


공급상들은 이제 예전과 같이 격렬한 반응을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오포가 살아남아 천천히라도 돈을 갚아 주기를 바라는 모양이다. 한 공급상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포의 빚이 자본을 넘어선 것은 이미 오래된 일입니다. 오포가 계속 살아있는 한 천천히 갚을 수 있어요. 오포가 진짜 없어져 버리면 저희로서는 그것이야말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죠".


기존 직원들은 오포 내부의 자금 사정을 이해하고 있다. 아마 퇴직금과 밀린 임금을 받는 것은 이미 단념한 듯하다. 한 기존 직원은 신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회사 사람들과 함께 있는 단톡방이 여섯 개 정도 있는데 이제는 모두 회사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아요".


도심에 놓여 있는 오포 자전거. 사진 출처: 시각중국(视觉中国)


오포의 스토리에 주목하는 관찰자들도 있다. 오포가 신화적으로 성장하는 동안 무수히 많은 이들이 오포를 애용했다. 그 중에서 오포를 특별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샛노랑 오포 자전거를 "노란 꼬마 자전거(小黄车)"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오포는 꿈과 아이디어, 열정만으로 전 세계를 샛노랑 자전거로 물들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꿈과 아이디어, 열정만 가지고는 그것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또한 보여주었다. 그들은 바로 이 점을 아쉬워하고 안타깝게 여긴다.




오포의 몰락이 중국 공유경제 산업에 미칠 영향

오포는 한 때 전 세계 1위 공유자전거 업체였다. 만약 오포가 계속 남아있었다면 곧 여섯 살 생일을 맞았을 것이다. 이처럼 짧은 시간에 오포가 전 세계를 향해 공격적인 확장을 시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만큼 대량의 투자 자금이 오포에게 유입되었기 때문이다.


오포는 명확한 수익 창출 모델이 없었다(참고: 중국 공유 자전거의 제왕 오포는 왜 몰락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량의 투자 자금이 오포에게 유입된 이유는 무엇인가? 이것은 신생 산업에 낀 거품, 투자자들의 잉여 자금, 중국 정부의 용인이 만들어 낸 합작품이다.


우선 '공유 경제'라는 새로운 등장 인물이 주는 신선함, 이에 대한 막연한 기대, 새로운 시장을 서둘러 점령해야 한다는 조급함 등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거품이 있었다. 그리고 중국 정부의 투자 제한과 중국 경제의 성장 속도 둔화로 인해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맴돌던 잉여 자금이 있었다. 성장 속도 둔화를 조금이나마 늦추기 위해 '핫한 산업'이 필요했던 중국 정부는 수익 모델 없는 벤처 기업에 대한 급속한 자금 유입을 용인했다.


Photo by Daniele Levis Pelusi on Unsplash


일각에서는 "오포의 증발은 중국 인터넷 거품이 꺼지는 것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예시다"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동의한다. 그리고 나는 바로 여기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거품이 꺼지는 것과 산업이 몰락하는 것은 다르다


오포의 증발은 투자자(특히 벤처 캐피탈 기업), 중국의 정책 입안자, 그리고 중국의 창업가들에게 작지 않은 교훈을 남길 것이다. 이제 이들은 검증되지 않은 투자, 과도한 자금 유입, 불확실한 경영이 가져올 수 있는 최악의 결말 중 한 가지를 똑똑히 확인했다. 투자자들의 투자 방식은 더욱 신중해질 것이다. 또한 기업 검증 과정 및 자금 운용 감시 체계가 정비될 것이다. 중국 정부 역시 투자자금 유입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갈 것이다.


중국인들은 갓 대학을 졸업한 청년이 만들어낸 거대한 결과물과 그것의 몰락 과정을 지켜보았다. 이들은 이제 무슨 생각을 할까? '역시 사업은 위험해'라는 생각을 할까? 아니다. '무엇을 보완했다면 더 오래 살아남았을까?'라는 생각을 할 것이다. 새롭게 창업에 뛰어드는 젊은이들의 경영 방식은 더욱 전문화될 것이며 수익 모델 또한 더욱 정교해질 것이다.


거품이 꺼지고 나면 그 자리에는 '진짜배기'만 남게 된다. 이제 이들은 거품을 걷어낸 단단한 땅에서 내실을 다지며 성장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다이웨이는 돌아올 것이다

마지막으로 필자 개인의 생각을 덧붙이며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오포의 창업자 다이웨이는 현재 오포 사무실과 함께 증발해 버렸다. 아직까지 그의 행방을 찾을 수 없는 상태다. 그러나 나는 다이웨이가 이대로 잠적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는 돌아올 것이다. 두 가지 점을 고려할 때 그렇다.


1. 오포를 살리려던 그의 노력은 끈질겼다.
2. 다이웨이의 아버지가 여전히 중국 국영기업 당 위원회 비서 겸 대표이사로 일하고 있다.


오포는 2018년 말 위기를 맞기 전에 이미 사업을 다각화하려는 노력을 시작했다. 그러나 '오포 파산' 소문이 온 중국을 휩쓴 이후에는 사업 다각화를 위한 자금을 도저히 마련할 수 없었다. 새롭게 진출할 금융 산업에서도 나름대로 수익을 거두던 단계였지만 시장의 신뢰를 잃어 더 이어나갈 수 없었다.


다이웨이는 보증금 환불을 요구하며 몰려든 군중들을 피해 수 차례 사무실을 옮겨야 했다. 그러면서도 오포를 포기하지 않았다. 외국으로 도망쳐 버리지도 않았다. 오포의 직원들은 임금을 반으로 줄이고, 그마저도 받을 수 없을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다이웨이의 곁에 남았다. 2019년 봄, 다이웨이가 퇴사한 직원을 포함하여 모든 직원에게 <노병(老兵) 플랜>이라는 제목의 메일을 보냈다. 전 오포 직원은 인터뷰에서 이 메일을 이렇게 회고했다. "겉모양만 번지르르한 빈말은 전혀 없었다. 전부 간절하고 가슴을 울리는 말들이었다. 퇴사 예정이던 직원과 이미 퇴사한 직원들이 다시 돌아왔다". 다이웨이에게는 계속해서 직원들을 붙잡아 둘 수 있는 간절함이 있었던 것이다. 바로 모든 중국인이 '실패했다'라고 생각하는 회사에 말이다.


오포의 창업자 다이웨이(戴维)


보다 현실적인 이유로는 다이웨이의 아버지가 여전히 중국 국영기업인 중국화학공정집단유한공사(中国化学工程集团有限公司)의 당 위원회 비서 겸 대표이사로 일하고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아버지가 건재한 이상 다이웨이는 다시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 중국을 뒤로 하고 완전히 도망칠 수도 없을 것이다.


다이웨이의 아버지 다이허건(戴和根)


다이웨이가 다시 창업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다. 아직 방향이 구체적이지는 않으나 유럽 시장을 겨냥한 사업 모델이라는 소문이다. 아마 그가 다시 돌아온다면 이번에는 오포보다 발전된 사업 모델을 들고 올 것이다. 또 오포보다 발전된 경영 방식을 보여줄 것이다. 오포는 아직 마침표를 찍지 않았다. 그저 쉼표를 찍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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