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내려놓자,
관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by 반짝반짝수정


전화벨이 울렸다. 남편이었다.

평소에는 문자로 소통하는 사람이기에 무슨 일인가 싶어 얼른 전화를 받았다.

“큰딸 언제 온대? 내가 데리러 갈까? 참고로 트럭이야.”


딸이 집에 온다는 소식을 들은 남편은, 버스를 타고 올 것을 예상하고 물어보는 듯했다.

서로 먼저 연락하는 일이 거의 없을 만큼 둘 사이는 다소 서먹했다.

괜히 어색해질까 싶어 “알아서 오겠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전화를 끊었다.

그래도 마음이 쓰여 딸에게 문자를 보냈다.

뜻밖에도 딸은 흔쾌히 데리러 와달라고 했다.

남편에게 다시 전하자, 거절할 줄 알았는지 이미 집으로 오던 중이었다가

“오케이!” 하며 기분 좋게 차를 돌렸다. 그렇게 30분 거리의 기숙사로 향했다.

각각의 통화를 마치고 나니 괜히 미소가 지어졌다.

감사의 기도가 절로 나왔다.


부녀 사이였지만 그동안은 내가 중간 역할을 해야 할 만큼 어색한 관계였다.

그런데 오늘은 한 사람은 표현했고, 한 사람은 그것을 받아주었다.

아빠가 딸을 데리러 가는 일이 대단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오랜 시간 바라왔던 모습이었고, 기도 제목 중 하나였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그동안 내가 남편의 자리를 너무 많이 대신해왔구나.

아빠로서 아이들에게 다가가고 싶었을 텐데,

관계가 어색하다는 이유로 내가 그 자리를 메워버렸다.

잘하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 아이들이 불편해할까 하는 마음,

그리고 내 방식이 더 낫다고 여겼던 조급함까지.

그 모든 이유들이 쌓여

결국 아빠의 자리는 늘 엄마인 내가 대신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남편은 아빠로서의 자리를 잃었고,

아이들은 아빠를 점점 멀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돌이켜보면 유아기에는 오히려 아빠와 함께한 시간이 더 많았다.


오늘에서야 남편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된다.

그 역시 좋은 아빠로, 가족 안에서 필요한 존재로 살아가고 싶었을 것이다.

오늘도 내가 가려던 일을 남편이 먼저 하겠다고 나서는 모습을 보며 더 분명해졌다.

그런데도 나는 오랫동안 혼자 해결하려고만 했다.

도움을 요청하기보다, 혼자서도 충분하다는 태도를 보였다.

그 모습이 남편에게 어떻게 전해졌을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요즘 남편은 이런 말을 들을 때 가장 기분 좋아한다.

“아빠, 데리러 와주세요. 아빠가 필요해요.”

“자기야, 자기가 해줘야 맛있어. 진짜 금손이야.”

그 말 한마디에, 기다렸다는 듯 그는 기꺼이 움직인다.

데리러 가고, 데려다주고, 김치도 담그고 요리도 한다.

이제는 조금 힘을 빼도 될 것 같다.

모든 것을 내가 다 할 필요는 없다.

조금 서툴러도 맡기고 기다리는 것,

그것이 관계를 살리는 방법이라는 것을 이제야 배운다.

ChatGPT Image 2026년 3월 18일 오후 06_08_52.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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