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장갑을 챙기기 시작했다
언제부턴가 출근길에 손장갑을 챙기기 시작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장갑은 내게 필요 없는 물건이었다.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출근하느라 늘 운전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가 대학에 가고 걸어서 출퇴근을 하게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찬바람이 부는 요즘 같은 3월 아침에는 장갑을 챙기는 일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사실 나는 장갑을 챙겨 다니는 사람이 아니었다. 간편하고 여유 있는 스타일을 좋아해 손에 꽉 끼는 답답함을 즐기지 않았고, 추위도 크게 타지 않는 편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달라졌다. 이른 아침 출근길이나 야간 러닝을 하다 보면 차가운 바람에 손이 시리고 금세 뻣뻣해진다. 예전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추위가 이제는 몸으로 먼저 느껴진다. 어쩌면 몸이 먼저 계절을 알아채는 나이가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 해가 지나면 오십이 된다. 요즘은 몸의 작은 변화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온다. 계단을 오를 때면 무릎에서 소리가 나고, 러닝을 하고 나면 예전보다 쉽게 지친다. 자연스럽게 잠자리에 드는 시간도 빨라졌다. 몸 여기저기 슬며시 올라오는 살들은 중년의 시간을 알려준다. 작은 일에도 감정이 오르내리는 모습 역시 예전과는 다른 변화다.
그렇다고 나이가 드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무엇보다 타인의 상황에 공감하게 되는 마음이다. 지나온 세월 덕분인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 예전처럼 멀리서 바라보는 느낌이 아니다. 마치 내 일처럼 귀 기울이게 된다. 그래서인지 가끔은 나와 대화를 나눈 뒤 마음이 편해졌다고 말해주는 사람들도 있다. 지식보다 삶에서 얻은 경험이 다른 이에게 도움이 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참 좋다.
또 하나 좋은 점은 작은 일에도 감동하고 감탄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그럴 틈도 없이 바쁘게 살았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더 큰 그림을 보게 되었다.
급한 상황이 생겨도 예전처럼 감정적으로 반응하기보다, 한 걸음 물러서서 문제를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어떤 선택이 더 나을지 차분히 생각하게 된다.
어느새 어른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단순히 늙어간다는 의미로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잘 익어 씨앗을 남기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좋은 어른이 되어 주변에 작은 영향력이라도 남길 수 있다면 좋겠다. 언젠가 사라지더라도 내가 남긴 마음과 영향력은 다른 이에게 전해지고 또 전해져 좋은 열매가 되면 좋겠다.
그래서 주어진 삶을 허투루 살고 싶지 않다. 누군가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은 좋은 씨앗을 남길 수 있는 귀한 시간이다.
그렇기에 나 자신도, 시간도 소중히 사용하려 한다. 가족에게,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좋아하는 마음도 더 자주 표현하려 한다.
나이가 드니 이런 생각도 하게 된다.
괜히 나쁘지 않다.
오늘은 또 무엇을 해보고 싶은지
조용히 적어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