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과 건강한 관계를 맺고 건강한 마음을 가지기 위해선 자신을 아는 것이 너무 중요하다.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에 대한 분별이 있어야 인간관계와 삶에 대한 방향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그 삶의 가치와 방향성에 따라 선택과 결정이 달라지고 개인의 개별성과 유니크함이 개인을 매력적으로 만들고 건강한 자존감의 기초가 된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모두가 같은 모습으로 보여야 할 것 같고 같은 방향으로만 살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나의 부모님도 그랬다.
전쟁의 트라우마인지 아니면 어린 시절 지긋지긋한 가난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부모님은 정말 성실하게 돈을 버시고 모으셨다. 그것이 유일한 생명줄 인양... 그래서 아버지는 돈이 낭비되는 것이나 돈이 되지 않을 것 같은 모든 직업과 행위들을 경멸하셨다. 그래서 다른 부모님들이 그러셨던 것처럼 오빠는 대기업 회사원이나 비즈니스 계통의 일을 하기 원하셨고 나는 그 당시 여자로서 가장 안정적인 약사나 간호사가 되길 바라셨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빠나 나는 그런 쪽으론 관심도 재능도 없었다. 오빠는 어릴 적부터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고 나는 그림을 그리고 만들기를 좋아했다. 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부터 나는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사촌동생들이 오면 항상 그림을 그리고 놀았고 크리스마스가 되면 학급반 전체 아이들에게 줄 카드를 잠도 자지 않고 손수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 당시 그런 나의 열정이나 관심을 누구도 진지하게 바라보는 사람은 없었다.
지금 돌이켜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보면 나는 무척 예민한 아이였다. 그래서 부모님의 눈빛, 행동, 얼굴 표정에도 부모님의 기분이 어떤지 눈치챌 수 있었다. 그런 예민함 때문에 부모님의 싸움이나 폭언이 유난히 나에게 깊은 상처로 남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부모님이 안된다고 할만한 행동은 아예 시도도 하지 않은 적이 많았다. 그림도 그중에 하나였다. 막연하게 미술학원이란 곳을 가보고 싶기도 했지만 사실 학원에 보내달라고 말을 꺼내기도 무서웠다. 분명 안된다고 할 것을 알았기에 시도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학년이 올라가고 중학교를 갔지만 내 안의 열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공부를 그다지 잘하지도 못한 것도 있었지만 그림을 꼭 배우고 싶은 열망은 지속되었다. 그리고 반에 한두 명씩 예고로 진학 준비하는 아이들이 너무 부러웠다. 한 번도 배워보지 않은 상태에서 예고로 진학하는 것은 무리였지만 그 당시 공예고등학교라는 것도 있었다. 만화나 도자기, 공예작품을 만드는 것을 중점으로 하는 학교였다. 그래서 혼자 심각하게 진로에 대해 고민한 후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다. 나는 미술공부를 하고 싶다고. 그래서 공예고등학교를 가고 싶으니 미술학원을 보내줬으면 좋겠다고..
나의 그 말에 아버지는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 네까짓게 그림을 그리면 얼마냐 잘 그리냐? 미술은 공부머리가 없는 애들이나 하는 것이다. 나는 그런 곳에 돈을 쓸 수 없다"라며 일언지하에 거절하셨다. 사실 부모님께서 단번에 허락해 주시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그럼 네가 그림 그린 거 있으면 한번 가져와 봐라"라고 정도는 해주실 줄 알았다. 내가 그린 그림들을 보면 부모님을 설득할 수 있을 줄 알았으므로..
생전 떼를 쓰지 않던 딸이 진지하게 부탁을 하면, 한 번은 내 입장에서 들어주실 줄 알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러지 않으셨다. 결혼한 지 십 년이 넘었었도 생활비를 맘대로 쓰지 못하시는 어머니는 사실 이 사건에 대해 발언권도 없으셨다. 그리고 나는 이 사건을 계기로 아버지에 대한 마음의 문을 완전히 닫아버렸다. 그전까지는 어머니랑 그렇게 싸워도, 고부갈등에 무기력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도. 다 아버지 나름의 이유가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이 사건을 계기로 알았다. "그래.. 아버지는 딸보다 아니 세상 그 무엇보다 그 누구보다 돈이 더 중요하구나. 내 마음 같은 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는 전혀 안중에도 없구나. 이제 다시는 아버지에게 이런 부탁 같은 것은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리고 나는 두 번 다시 미술공부에 대한 이야기를 아버지에게 하지 않았고, 미술 외에 그 어떤 깊은 대화도 아버지와 하지 않았다. 자식보다 돈이 더 중요한 아버지에게 그렇게 복수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내가 아버지에게 상처를 받은 것은 미술공부를 시켜주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그때 나에게 관심을 보이고 내 이야기를 들어보고 아버지의 의견을 이야기했더라면, 설사 미술학원에 가지 못했더라도 이렇게 뼈아픈 상처로 남아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화가 나고 슬펐던 것은 나에게 아예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중학교 3학년이 되어 미술학원에 보내 달라고 말하지 않았어도, 부모님에 나에게 조금의 관심만 있었어도 내가 미술에 관심이 있는 아이라는 것을 아셨을 것이다. 그러나 두 분은 전혀 모르셨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으셨다. 그것이 마음속에 비수로 박혀버렸다.
후에 엄마가 되고 자식을 낳아보니 기질과 성향은 아주 어릴 적부터 나타났다. 사람을 좋아하는 아이, 낯선 곳을 두려워하는 아이, 조용히 책을 읽거나 그림 그리는 것을 즐기는 아이, 동물이나 자동차를 좋아하는 아이.. 부모가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면 내 아이의 성향이 너무나도 잘 보였고 그 성향은 성장하면서 모양새는 달라지지만 크게 바뀌지 않았다.
많은 부모들이 아무리 많은 육아서적과 강의를 들어도 자녀교육이 힘든 것은 아이에 대한 객관적 분석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자녀 교육책이나 강의는 보편적 아이에 대한 보편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의 육아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것이다. 아이들의 기질이 모두 다 다르고 또 부모의 기질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 특수성과 개별성을 무시한 획일화된 양육을 무조건 따라 하다 보면 당연히 효과는 없게 된다.
부모는 그 누구보다 자녀를 파악하는데 능숙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아이의 기질과 특별함, 강점과 약점을 고려한 양육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때론 아이마다 부모가 대하는 태도는 1:1의 맞춤 양육이 되어야 한다. 나 또한 세 아이를 키우면서 모두 똑같이 키우지는 않았다. 큰 틀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양육에 대한 철학은 같았지만 아이를 대하는 방식은 아이마다 조금씩 틀렸다. 그것은 세 아이의 기질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경쟁을 즐기는 아이와 경쟁을 두려워하는 아이를 똑같이 대할 수 없다. 사람을 좋아하는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의 성향을 무시하는 건 위험한 양육이 된다. 이렇듯 어떤 면에서 보면 양육은 농사와 비슷하다. 각기 식물에 따라 재배법이 틀리듯 아이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부모는 어떤 교육을 시킬 건지 보다 우리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를 먼저 관찰하고 알고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한 양육의 시작이다.
그러나 부모님은 나에 대해 전혀 모르셨다. 그 당시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고민을 하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그 무관심이 나를 아프게 했고 내 삶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지금은 오히려 나 같은 어린 시절을 경험한 부모가 많아서 그런지, 많은 부모들이 자식들이 바라는 모든 욕구를 채워주는 것이 사랑이라 착각한다. 좋은 장난감, 좋은 옷, 최신형 게임기나 스마트폰, 좋은 학원.. 이런 차고 넘치는 사랑이 또 아이를 병들게 할 때가 많다. 아이들도 절제를 배워야 할 때가 있고 부모도 아이들의 욕구를 모두 다 채워줄 수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아이의 진짜 진심이 무엇인지는 분명 알아야 하고 부모가 거절하는 이유를 적절히 설명해줄 필요가 있다. 그것이 아이를 존중하며 키우는 것이고 이렇게 존중받은 아이들이 부모님께 사랑받았다 느낀다.
이 사건을 계기로 순하고 착한 딸은 더 이상 순하지도 않고 착하지도 않게 되었다. 나는 내가 부모님의 말을 잘 듣고 착하게 지내면 언젠가 나의 마음에 관심을 가져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그 기대가 박살이 나자 나는 더 이상 착한 딸이 되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