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가 되면 아이들이 반항이 시작된다. 그 나이가 되면 부모와 가정 안에서의 불합리와 부조리가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어릴 땐 부모가 하늘이고 법이고 진리였지만 점점 아이가 자라나고 책을 읽고 학교를 가면서 다른 경험과 지식이 쌓이면, 내가 알던 세상이 진짜가 아니구나 하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이 알던 세상에 대한 실망감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 말은 어떤 면에서 모든 아이들이 심각한 사춘기를 겪거나 반항을 한다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가정 안에서 아이들과 건강한 소통하고 부모로서의 인간적 부족함과 연약함을 이해시키는 가정이라면 웬만해서 아이들이 이유 없이 삐뚤어지지 않는다.
한국 사회 안에서 북한보다 무섭다고 하는 중2병들의 사춘기 반항은, 어떤 면에서 부모의 욕심으로 자녀를 무리하게 공부와 경쟁으로 몰고 간 결과가 아닐까 싶다. 그것이 사랑이 아니란 것을 아이들이 그 나이가 되면 몸으로 마음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또한 가정 안에서 제대로 소통되거나 아이의 존중하지 못한 결과가 그때쯤 폭발하는 시기이다. 보통 중학교를 들어가기 시작하면 아이들은 몸도 커지고 더불어 생각도 커진다. 그러나 사건과 사고를 다양하게 바라보고 이해하는 통찰력과 표현력은 떨어지는 시기이기에 반항으로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이다.
나 또한 할머니의 어처구니없는 남아선호 사상이 세상 모든 할머니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다른 친구들은 그런 차별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알면서도 차별을 방관하는 부모님의 태도에도 화가 났다. 모든 가정이 고부갈등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모든 부모가 그렇게 우리 집처럼 자주 싸우는 것도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특히 모든 부모가 그렇게 자녀에게 냉랭하거나 무섭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나는 너무나 억울하고 화가 났다.
그래서 나의 차별의 대상인 오빠를 무작정 미워했고 한 가정의 가장이었으나 늘 고부갈등의 중심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리도 못하고 어머니를 눈물짓게 하는 아버지가 싫었다. 더 나아가 정작 자녀에겐 관심이 없으면서 자녀를 자신의 자랑이나 투자의 결과물로만 생각하는 아버지에게 분노했다. 그리고 그 분노를 더 이상 참지 않았다. 오빠의 장난이나 아버지의 손길과 관심을 혐오하고 경멸했다. 마치 남자에게 원수라도 진 사람처럼.. 그렇게 그들은 나의 방문 밖 타인이 되었다.
어릴 땐 으름장이나 엄포로 우리를 다스리던 아버지는 나의 몸이 커가고 목소리가 커가자 오히려 뒤로 물러나셨다. 마치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하며... 한마디로 아버지는 또 그렇게 나와의 관계를 해결하기보다 회피하시고 도망가셨다. 그것이 늘 아버지의 문제 해결 방식이었다. 마치 죽일 듯이 말로 우리를 협박하고 겁박을 주다가 더 이상 내가 그 말에 흔들리지 않고 더 큰 목소리로 반항하자 꼬리를 내리셨다. 그렇게 그와 나와의 심리적 거리는 점점 멀어져 갔다.
그런 나의 모습에 다들 마냥 사춘기라 그런 거라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리라 막연히 기대했지만 시간이 흘러도 그 간격은 좁혀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한 번도 남편으로 아버지로서 어머니나 자녀들을 선택한 적이 없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쭉 아버지는 늘 할머니의 착한 아들을 선택했고, 나는 그의 착한 딸 역할을 포기하고 진짜 딸로 취급해 주길 바랬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멀고 깊은 심리적 강 앞에서 팽팽하게 맞서기만 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라도 표현할 만큼 마음이 건강했는지도 모른다. 상담을 하면서 만나는 아이들 중엔 이런 반항조차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 그렇게 부모의 억압과 욕심에 굴복당한 많은 아이들은 후에 우울증 외에 다른 심각한 정신질환을 일으키거나 성인이 된 후에 다른 모습으로 부모에게 복수를 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한마디로 이 시기에 겪지 않은 사춘기는 인생의 어느 순간 느닺없이 닥치게 되어있다. 인간의 발달과정에서 성장을 위해선 어쩔 수 없이 부모와 분리되어야 하고, 그 분리와 독립은 사실 빠를수록 좋다. 그래서 어쩌면 성장하는 아이들에겐 꼭 필요한 시기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내 나름의 사춘기를 겪으면 부모와 떨어지는 연습을 했다. 그리고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