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으로 똘똘 뭉친 착한 딸

나의 어린 시절

by 원정미

어린아이에겐 가정은 세상의 작은 샘플이다. 그래서 따뜻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세상과 타인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무서운 가정에서 자란 아이에게 세상과 타인은 무섭고 두려운 존재가 된다. 태어나면서 바라본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사실 세상의 전부 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모와 가족환경에 따라 세상에 대한 이미지와 타인에 대한 신뢰감 혹은 불신이 형성되어 간다.


이 이론을 증명한 심리학자들은 무수히 많다. 에릭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단계 이론도 매슬로우의 욕구 이론, 존 볼비의 애착이 이론 모두, 전제는 인간에겐 신뢰와 안정의 욕구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양육에 있어서 부모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신뢰와 안정은 혼자서 획득할 수 있는 욕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양육자와의 신뢰와 애착을 제대로 형성하지 못한 경우 평생을 두고 타인과의 관계에도 큰 어려움을 준다. 왜냐하면 불신과 불안으로는 누구와도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에게 세상은 너무나 무서운 곳이었다. 나를 낳아주고 키워주는 부모님도 이렇게 냉정하고 무서운데 밖의 세상은 얼마나 무서울까? 싶은 생각에 그 누구도 믿지 못했다. 쉽게 상대방에게 마음을 열지도 못했고 믿을 수도 없었다. 이런 사람에 대한 불신의 병은 후에 어른이 되어서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어서도 나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되어 나를 괴롭혔다. 세상이 무섭고 불안한 곳이었기에 나는 혼자서 살아남기 위해 아등바등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나에겐 나의 능력으로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 오빠가 있었다. 아버지를 유독 사랑했던 남아선호 사상이 지독히 강했던 할머니는 사랑하는 둘째 아들의 아들을 또 끔찍이 사랑하셨다. 오빠 말고도 손자 손녀가 넘쳐 나는 할머니였지만 그중에 최고는 오빠였고 덕분에 나는 당연히 차별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오빠와의 차별, 그 냉혹한 비난 가운데 내가 잘못해서 받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여자로 태어난 것도 아버지를 닮은 것도 내가 원한 것이 아니었다. 딸로 태어난 것도 밉상인데 그 손녀가 유난히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닮은 것도 싫어하셨다. 그러나 더 속상한 것은 그런 할머니의 차별과 냉대를 집에서 그 누구 하나 말려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70살 넘게 먹은 할머니의 말도 안 되는 차별을 고작 열 살도 되지 않는 내가 이해하고 넘어가야 하는 집이었다.


거기다 오빠는 어려서부터 얼굴도 예쁘장하고 하나를 가르쳐주면 열을 깨우치는 똘똘한 아이였다. 그런 오빠 덕분에 열을 가르치면 하나만 기억하는 나 같은 딸은 정말 바보 취급받기 일수였다. 그렇게 나에겐 절대로 넘지 못할 벽이 있었고 공부면 공부, 외모면 외모, 재능이면 재능 어느 하나 뛰어난 것이 없었던 나는 "착한 딸"이라는 방패를 절대 내려놓을 수 없었다. 그렇게 그 방패에 몸을 숨겼고 나의 열등감은 점점 커져만 갔다. 그 열등감을 다스리는데 한참의 세월이 흘렀다.


비교와 차별은 누구 하나 건강하지 못하게 만든다. 비교당하는 사람에겐 열등감을 가져다주고 찬사를 받는 사람 또한 교만해 지거나 불안하게 만든다. 세상엔 나보다 잘난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어느 누구도 행복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 비교이고 차별이다. 그러나 한국사회엔 비교가 너무 만연한 사회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밤낮없이 열심히 살지만 대부분 낮은 자존감에 고민하고, 여전히 높은 자살률을 보이는 것이 아닐까 싶다.


딸로 태어난 것도 첫째로 태어나는 것도 예쁘게 태어나는 것도 못생기게 태어나는 것도 재능이 많은 것도 없는 것도 어느 것 하나 아이들이 선택한 것은 없다. 그러니 비교하고 차별하는 것만큼 아이들에게 억울하고 화나는 어디 있을까? 나의 지독한 차별과 비교의 아픔 때문에 세아이를 키우면서 비교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그리고 혹여 아이들이 차별을 당한다고 느끼지 않을까 늘 아이들의 마음을 살폈다. 그런 식으로 나는 나의 과거를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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