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사랑, 셀프 러브에 대한 글을 쓰면서도 어떤 분들에겐 매우 막연한 이야기 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의 이야기를 통해 자기 사랑을 어떻게 삶에 적용해야 하는지 알리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기질적으로도 매우 불안이 높고 그래서 걱정도 많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어릴 땐 눈치도 많이 보고 항상 주눅이 들어있던 아이였다. 내가 나를 돌보고 사랑하는 법을 깨우치지 못했다면 나는 우울증, 공황장애, 불안장애 약을 달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누구보다 나를 다스리는데 능한 사람이 되었고 그로 인해 매우 만족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런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자기 사랑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를 사랑한 방법들>
1. 나를 이해하기
전에 글에도 언급했듯이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 자기 사랑과 자기 돌봄의 기본이다. 왜냐하면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자신을 다룬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기질, 성격, 꿈, 장점과 연약한 점을 모두 인지하고 있는 것이 너무 필요하다. 그래서 자신을 잘 알려면 자신의 어린 시절과 자신의 깊숙한 내면을 들여다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것을 정리해 주는 데는 일기나 글쓰기가 매우 효과적이다.
특별히 자신의 기질이나 장점을 이해하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도움이 된다. 왜냐하면 기질과 재능은 사실 선천적인 것이 많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드러나기 마련이다. 자신의 어릴 때 어떤 아이였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했는지 어떨 때 행복하고 어떨 때 두려웠는지를 돌아보면 자신의 기질이나 재능을 발견하기가 쉽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무척 내향적이고 소심한 아이였다. 그래서 낯선 환경, 낯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거기다 남들보다 에너지도 떨어지는 아이라 동네를 휩쓸고 다니거나 산으로 들로 뛰어다닌 아이도 못되었다. 오히려 집에서 친한 아이들과 조용히 그림 그리거나 인형놀이를 하는 것을 즐겼다. 불안이 높다 보니 어린 시절부터 타인의 감정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대응하는 아이였다. 그래서 한마디로 눈치가 백 단이였다.
이런 어린 시절의 기질과 성향은 많이 바뀌지 않는다. 다만 자라면서 교육과 훈련에 따라 필요한 것은 발달시킬 수 있다. 지금 내향적인 성격을 고치려 하기보다는 나의 장점을 극대화시키고 약점은 보안하면서 살고 있다. 그것이 나답게 사는 길이니까. 성인이 된 지금도 사실 새로운 것을 도전하거나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는 것을 즐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필요에 의해 해야 하는 일들은 훈련으로 적응해 갔다. 그래서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내가 내성적이거나 불안이 높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어린 시절 불안이 높고 예민한 기질은 타인의 감정에 예민하고 관찰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되어 미술을 공부하거나 치료사라는 직업을 가지는데 너무 적절한 성향이 되었다.
2. 에너지 충전/자기 돌봄
나에 대한 이해가 높으면 높을수록 자신에게 어떻게 에너지를 다시 회복하는지에 대해 알 수 있다. 사람마다 에너지를 충전하고 다시 기력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다. 보통 내향적인 사람들은 혼자 있을 때 에너지를 충전하고 외향적인 사람들은 타인이나 외부활동에서 에너지를 얻는다. 그러니 내향적인 사람이 외향을 따라 하면 에너지는 금방 방전이 될 것이고 외향적인 사람이 내향인을 따라 하면 너무 답답하고 지루한 삶이 된다. 그러니 자신의 데이터에 따라서 자신의 에너지를 충전시키고 방전되지 않도록 도와줘야 한다.
나는 지극히 내향적인 사람에다가 에너지 레벨이 매우 낮다. 그래서 잠시 밖에 나갔다 오는 것만으로도 소위 말하는 기가 빨리는 사람이다. 그러니 아무리 부러워도 나 같은 사람은 김미경 강사님 같은 삶은 죽었다 깨어나도 살 수가 없다. 그러나 그분에겐 그렇게 대내외적으로 사람들과 연결되고 자신의 것을 나누는 것이 그분의 에너지 충전 방식인 것이다. 따라서 각자가 어떻게 에너지를 충전할지 반드시 알고 있어야 번아웃을 막을 수 있다.
나의 경우엔 반드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고 충분한 수면이 가장 중요하다. 이것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나는 금방 짜증이 나고 신경질적이 된다. 그래서 아무리 바쁘더라고 혼자서 책을 보거나 사색하는 시간을 만들어야 하고 수면시간은 어떠한 경우에도 확보하려고 한다. 그리고 내가 방전될 때까지 무리하지 않는다. 이런 시간은 이기적인 시간이 아니라 내가 충분히 활기 있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시간이기에 꼭 필요하다.
현대의 많은 사람들이 조급하고 쉽게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는 이유는 어쩌면 그들의 성격이 모나거나 인격이 부족해서가 아닐 수도 있다. 자신을 너무 돌보지 못해 심신이 지치고 피곤해서 그런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자신을 위해 떼어놓는 시간은 자기 사랑의 기본이라 할 수 있다.
3. 삶의 우선순위 그리고 선택과 집중
위와 같이 나에 대한 객관적인 데이터가 있어야 무엇인가를 선택하고 결정할 때 중요한 가이드라인이 되어준다. 삶은 시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나는 그 무엇보다 시간을 소중히 여긴다. 시간당 내 몸값이 비싸서가 아니라 시간을 어디에 시간을 쓰는지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을 어디에 가장 많이 투자할 것인지를 결정하고 선택하는 것이 어찌 보면 인생의 전부였다.
자녀를 키우는 것이 어렵고 힘든 것은 이런 시간적 투자가 무궁무진하게 필요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내 삶을 완전히 내어주는 일이기에 힘든 것이다. 그런 것처럼 나에게 주어진 24시간이란 시간을 어디에 쓰고 어디에 쓰지 않을지를 정해놓지 않으면 내 시간은 내 것이 되지 않을 때가 많다. 어영부영 남들이 다 가져다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자신에 인생에 대한 우선순위와 방향이 없으면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내 인생의 소중한 시간을 타인에게 송두리째 빼앗겨버리는 불상사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면 한 번뿐인 소중한 내 인생을 나답게 살 수 없다. 그렇게 자신답게 살지 못하면 병들거나 화가 난다. 따라서 자신의 데이터에 따라 선택하고 집중해야 할 것과 과감히 버려야 할 것을 반드시 스스로 정해야 한다. 이것은 그 어떤 누구도 해줄 수 없는 자신이 찾아야 하는 답이다.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러면 나의 시간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가? 어떤 일에 흥미와 의미를 느끼는가? 그 일을 이루기 위해 나는 무엇을 선택하고 버려야 하는가?
위의 질문들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물론 세월이 가고 환경이 달라지면 바뀔 수 있지만 그래도 자신 안에 중요한 우선순위가 정해 있어야 흔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우선순위대로 살고 있어야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이나 불치병이 다가와도 당황하지 않는다. 어쨌든 자신은 자신이 원한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 많은 사람들이 환경에 이끌린 삶 그리고 타인에 의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느닷없는 죽음이나 불행이 닥쳤을 때 억울해하고 분해한다. 자신의 삶을 보류하며 살아았기 때문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삶이 현재에 실천하며 사는 삶이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는 당연히 가족이었다. 그냥 행복한 가정이 아니라 나의 가족들이 모두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고 나를 포함하며 개인들이 그들답게 성장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다음이 나와 타인의 성장과 성숙이다. 내가 정말 어떤 사람이 되고픈지 대한 고민을 오랫동안 했고 나는 타인의 회복과 성장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것을 도와주는 데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치료사라는 직업을 선택했고 앞으로도 그 일을 위해 남은 여생을 살고 싶다.
이렇게 내 삶의 방향을 정하다 보니 나의 시간은 자녀와 남편을 사랑하고 돌보는데 쓰는 시간과 나를 성장시키고 타인을 돕는데 쓰는 시간이 항상 먼저이다. 그다음이 내가 심리적으로 방전되지 않도록 나를 충전시키는 시간들이 내가 주로 쓰는 시간이다. 그러니 나에겐 자주 시장을 보거나, 쇼핑을 하거나, 집안을 깨끗이 청소를 하거나, 동네 엄마들과 만나 수다를 떨거나 친목을 위해 모이는 모임이나 술을 마시고 유희를 즐기는 시간이 별로 없다. 그래서 나의 하루는 아주 심플하다. 가족을 위해 내어 주는 시간과 나의 성장을 위해 공부라고 내가 가진 지식을 나누는 시간뿐이다. 그렇게 내 삶을 아주 단순하게 만들었기에 아이들 셋을 키우면서도 두 개의 대학원을 졸업할 수 있었다. 때문에 매우 제한적인 인간관계를 가지고 있고 여전히 살림에도 능숙하진 못하지만 그래도 나는 오히려 내가 선택하고 만들어간 삶에 후회는 없다.
4. 비교하지 않기
비교는 인간의 본능이다. 그래서 누가 예쁜지 누가 좋은 차와 집을 가지고 있는지 누가 더 성공했는지 단번에 알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나 답게 살기로 하고 비교를 멈추었다. 사실 처음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질투가 나기도 하고 내 모습이 초라해 슬퍼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 그 감정에 함몰되지 않고 나를 다독여 내가 나만의 삶을 살고 있음은 상기시켜주었다. 그렇게 나를 꾸준히 다독이며 살다 보니 비교는 점점 사르러 들었다. 왜냐하면 어차피 각자의 인생이라는 것이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인생이라는 것이 각자 서로 다른 불행과 행복이 얽혀있는 삶이었다. 그러니 부러워할 것도 자랑할 것도 없었다.
5. 나의 감정을 인정하기
나를 가꾸고 사랑하기 위해선 그 무엇보다 나의 감정에 예민한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리고 감정을 부정하고 억누르는 것만이 미덕인 사회에선 자란 나에게 그 어떤 훈련보다 힘들었다. 왜냐하면 감정이란 자체를 제대로 배워본 적도 다루어 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감정적이지 않은 꽤나 무더한 사람이라고 착각한 나는 결혼을 하고 육아를 하면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상황과 환경을 맞닥뜨리면서 생전 느껴보진 감정들과 쌓여있던 감정들이 몰아쳐서 당황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리고 내 안에서 일어나는 분노, 질투, 억울함, 불안, 걱정, 서운함, 섭섭한 감정들이 들 때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나 나의 감정을 제대로 읽고 건강하게 표현하는 것이 어떤 면에서 나를 가장 사랑하는 방법이었다. 왜냐하면 그 과정을 통해서 나는 평안을 찾았기 때문이다. 내 안에 부글부글 끓고 있는 감정의 용광로를 비우고 나니 그렇게 홀가분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감정의 용광로를 비울 수 있었던 것은 감정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를 상담대학원을 가서 배웠기 때문이다. 감정과 행동은 다른 것이고 억눌린 감정은 여러 정신질환의 원인만 될 뿐 아무 이득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감정을 건강하게 표현하는 방법도 배우고 일상생활에서 실천하며 살고 있다.
일단 나에게 일어나는 진짜 감정을 찾아내었다. 그 전엔 마음속에 불편한 감정이 들면 그냥 무작정 화를 내거나 아니면 울기에 바빴다. 그로 인해 가까운 관계에서 상처를 주기도 하고 오해를 사기도 했다. 지금은 그렇게 본능적으로 반응하기 전에, 그 불편한 감정의 실체를 찾아내고 그것을 인정하고 흘려보내는 연습을 수도 없이 반복했다. 사실 이 과정이 절대로 쉽지 않았다. 때로는 수십 년 전의 묵은 감정일 때도 있었고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과거를 기억해야 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나를 비난하지 않고 받아주는 남편에게 털어놓을 때고 있고 깜깜한 예배딩에서 목놓아 울부짖기도 했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쓰면서 내 속에서 일어나는 세밀한 감정들을 읽어가고 인정해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면서 그제야 내 안의 주 감정의 실체는 불안과 두려움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를 불안하게 하거나 두렵게 하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방어하거나 회피하고 살았다는 것도 알았다. 그랬기 때문에 내가 추구하고 원하는 감정은 " 안정감 와 편안함" 이였다. 그것을 알고 보니 내가 무의적으로 선택했던 모든 선택의 기준들이 나에게 안정감을 가져다 주느야 아니냐가 많았다. 사람을 만날 때도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도 무엇을 하든지 나는 안정감이 너무 중요한 사람이었다. 나에겐 안정이 중요 욕구였지만 누군가에겐 인정일 수도 있고 존중이나 성취일 수도 있다. 이렇게 각자의 중심 욕구를 파악하는 것이 자신의 행동을 이해하는데 너무 중요하다.
그런 나를 이해하고 그렇게 감정을 표현하자 많은 것이 달라졌다. 일단 이유 없이 나던 짜증이나 갑작스러운 버럭도 사라졌다. 그리고 내가 유난히 불안이 많고 걱정이 많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렇게 나는 나의 불안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이들과 남편과의 관계도 좋아졌다. 서로의 감정을 건강하게 표현하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는 훨씬 깊어졌다. 내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거나 도전을 두려워하는 것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던 남편도 내 안의 주요 감정 욕구가 안정감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 나를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졌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모든 것이 편해졌다.
5. 성장과 성숙
나를 제대로 사랑하지 못했다면 나는 현실에 무척 안주하며 살았을 것이다. 아마도 절대로 미국에 올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에 왔더라도 엄마 역할 아내 역할에만 만족하고 안주했을 것이다. 그것이 나에게 너무 편하고 안정된 길이니까. 하지만 이런 고립과 회피는 나를 성장하게 하거나 성숙하게 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엄마와 아내의 역할에 만족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주부라는 역할도 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창의적이고 성장할 수 있는 장소이다. 하지만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은 그런 게 아니었다. 나는 나와 타인의 회복과 성장에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랬기에 내가 원하는 꿈과 소명에 합당하게 살도록 성장해야 했다. 그래서 공부를 하게 되었고 공부를 하면서 자신감과 성취감을 회복하면서 나의 자존감 또한 쑥쑥 자랐다. 그것이 나에겐 정말 나를 사랑한 방법이 되었다.
6. 마음을 나누는 소통
아무리 스스가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한다고 해도 살다 보면 나에게 실망할 때가 많다. 또한 때로는 내가 감당하지 못할 어려움, 슬픔, 힘든 일을 만나곤 한다. 그래서 그때 나를 지탱해줄 누군가가 꼭 필요하다. 이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소통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래도 사람은 무너지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관계는 너무 중요한 것이다. 부자 되거나 성공하기 위한 인맥을 쌓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무너질 때 나를 잡아줄 진짜 내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인간관계가 넓지는 않지만 나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믿어주고 마음으로 소통이 되는 아주 소수의 사람들이 있다. 아주 가깝게는 남편과 아이들이 있고 신앙 안에서 만난 친구, 교우들이 있다. 두루두루 여러 사람을 만나거나 핸드폰에 수백 명의 지인 전화번호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이 소수의 사람들은 내가 무슨 일을 만나도 언제나 내편이 되어주고 나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나에겐 무척 소중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 소중한 관계를 이어가는데 나 또한 시간과 정성을 아끼지 않는다. 이들을 위해 시간을 내고 물질을 쓰고 마음을 내어주는 것은 내 삶에 튼튼하고 안전한 쉼터를 짓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만의 정서적 안전지대를 만들어 갔다.
자기 사랑에 대해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단순히 좋은 집에 살면서 명품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화려한 생활을 사는 것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을 정말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이고, 그래서 부족하고 연약한 나를 다독이고 격려하고 이끌어 가며 사는 것이다. 한마디로 세상에서 가장 자신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삶을 자신답게 충만하게 살 수 있도록 이끌고 가는 것이다. 그것이 사랑이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그렇게 자신을 아끼고 사랑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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