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다시 태어나다.
나만의 안전지대를 만들다.
어린 시절부터 결혼생활의 어두운 면을 너무 많이 본 나는 결혼에 대해 무척 회의적이었다. 그렇게 까지 싸우면서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것도 이해되지 않았고, 똑같은 문제를 수십 년째 반복하고 수십 년째 해결하지 못하는 어른들의 무지가 한심해 보였다. 나의 부모님을 제외하고도 내 주변엔 하나같이 최악의 부부생활을 하는 사람들만 사는 것 같았다. 그런 나에게 결혼은 그야말로 미친 짓이었다.
안 그래도 남녀차별의 뼈아픈 상처까지 있는데 결혼까지 해서 남자 때문에 더 불행해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한동안 나는 독신주의였다. 그러나 신앙을 가지고 난 후에 하나님께서 최초로 만드신 관계가 부부라는 사실이 의아했다. 그리고 성경엔 분명히 부부를 축복하는 말씀이 있었다. 그럼 부부라는 관계는 원래 서로에게 복이 되는 관계라는 말이었다.
나는 딜레마에 빠졌다. 내가 아는 부부들은 다들 하나같이 행복해 보이지 않던데 어떻게 그것이 축복일까? 그럼 둘 중 하나가 틀렸다는 것이었다. 성경이 거짓이든 사람들이 잘못하고 있는 것이든. 나는 후자를 믿기로 했다. 그리고 만 23-24살이었던 미성숙했던 애송이는 하나님을 같이 믿는 믿음의 사람이라면 무조건 잘 살 것이라는 착각을 했다. 그렇게 호기롭게 함께 교회를 다니던 "교회 오빠"와 결혼을 했다.
연애 때의 다정하고 섬세하던 남편은 결혼한 후에 꼬장꼬장한 아줌마가 되었다. 원래부터 정리 정돈이니 청소에 관심도 없고 소질도 없던 나는 늘 남편의 기준에 미치지 못했고 늘 핀잔과 야단을 들어야 했다. 그런 핀잔에 나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함께 살면 살수록 성격, 취향, 심지어 신앙관까지 너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 정말 별일 아닌 일로 싸우기 일수였다.
지금 돌아보면 너무 당연한 일이다. 각자 다른 기질과 성격을 가진 어른이 함께 살아가는 과정에서 그런 부딪힘은 당연히 일어나는 결과였지만, 나는 너무 당황했고 무서웠다. 절대로 부모님처럼 살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는데 나도 별수 없는 것은 아닌가 두렵기도 했다. 내 고집대로 한 결혼이라 부모님께 하소연을 할 수도 없었고 친구 하나 없는 미국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러나 분명 결혼을 축복이라고 하신 하나님 말씀이 거짓 일리 없다며 나는 결혼 관련 서적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자라면서 보고 배운 게 없으면 책으로라도 배워야겠다며. 그렇게 결혼과 부부관계에 관한 서적들을 읽기 시작하며 알았다. 그리고 나는 정말 부부관계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일자무식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연애의 사랑과 부부간의 사랑은 차원이 다른 사랑이였다. 에릭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란 책에서 서술한 것 처럼 진짜 사랑은 의지이고 선택이고 노력이였다.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배우기 시작했고 남자와 여자가 얼마나 다른지를 알고나자 배우자의 다름을 "틀림"이 아는 나와 다른 존재로 인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안에 사랑의 언어가 동일하지 않음도 깨달았다. " 아.. 나는 내가 사랑하고 싶은데로 남편을 사랑했구나" 라고. 내가 준 사랑은 남편이 진정 원한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나는 내가 받고 싶은 사랑을 말하고 남편에겐 그가 받고 싶은 사랑을 표현했다. 상대가 내 맘같지 않을 수 있음은 인정하며 그렇게 이해하고 배려했다.
그렇게 서로에 대한 신뢰가 쌓이고 소중해지자 서로가 서로에게 일 순위가 되었다. 남편은 아이들이 태어나도 늘 내가 일 순위였고 나도 그 고마움에 남편을 지지하고 존중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마음이 따뜻한 남편은 육아를 하며 불쑥불쑥 나오는 나의 내면의 상처와 아픔을 늘 비난 없이 품어주었다. 한 번도 나를 탓하거나 비판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세상 그 누구에도 드러내지 못한 나의 민낯과 상처를 남편에게 보여주며 상처를 꿰매는 작업을 수 없이 했다. 그런 나를 여전히 믿어주고 품어준 남편 덕분에 나는 사람을 믿지 못하는 병을 고쳐가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부모님에게 받지 못한 사랑과 인내를 서로에게 보여주었다. 정말 부모가 아이를 돌보듯이 품어주고 사랑해 주었다. 이렇게 긍정적 피드백이 선순환이 되자 우리 사이의 친밀감은 세상에 어떤 사람도 대체할 수 없는 소중한 관계가 되었다. 그리고 그때 성경에서 말한 부모를 떠나 하나가 된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왜 결혼이 축복인지 알 것 같았다. 결혼은 불완전한 부모에게서 사랑받지 못한 인간에게 주는 두 번째 회복의 기회였던 것이다. 그래서 많은 심리학 연구에보여주듯이 건강한 삶과 행복한 노년의 조건에 행복한 부부관계가 빠지지 않는게 왜 그런지 알 것 같았다. 인간에겐 그 무엇보다 나를 진정 이해하고 사랑하는 단 " 한 사람"만 있으면 된다는 것을. 그 한 사람이 배우자가 될때 사람은 기적처럼 회복된다는 것을 나는 몸소 배웠다.
20년 가까이 함께 살면서 당연히 싸우기도 하고 화를 내고 며칠씩 냉전을 하는 날도 있었지만 우리는 알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임을.. 그렇게 누구라도 먼저라도 할 것 없이 화해를 청했고 서로를 용서했고 다시 사랑했다. 이렇게 함께 있어야 완전해지는 존재로 함께 성장했다.
그러나 나는 운이 너무나 좋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같이 상처 받고 꼬인 마음을 가진 사람은 사랑과 인정에 대한 갈구가 너무 커서 잘못된 결혼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상황을 회피하거나 도망가기 위해 서로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결혼을 하거나, 누군가의 뜨거운 구애가 영원할 줄 알고 결혼을 하거나, 혹은 나에게 맞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눈에 괜찮아 보이는 상대와 결혼을 하는 것 등이 보통 저지르는 실수이다. 그리고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본적도 배워본 적도 없는 그들은 악순환에서 빠져나오기 힘든 경우가 참 많다.
마치 많은 사람들이 결혼만 하면 모든 것이 준비된 안락한 리조트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결혼은 두 사람이 맨땅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 어떤 상황에서도 배우자를 배신하거나 떠나지 않겠노라는 신뢰를 쌓아야 한다. 그리고 함께 땅을 가꾸고 기둥을 세우고 벽돌을 쌓을 헌신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문제를 어떻게 대화로 잘 조율하고 협력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조율이 필요한 과정이다. 그렇게 서로 땀을 흘리고 노력해서 함께 집을 지을 때 그곳은 세상의 어떤 풍파와 고난에도 흔들리지 않는 안전한 곳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남편과 그렇게 20년을 신뢰와 이해의 기둥을 세우고 애정과 소통의 벽돌을 쌓으며 집을 지어 갔고 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곳이 되었다. 늘 뭐든 혼자서 아등바등하며 살던 나에게 남편과 아이들은 최고의 안전지대가 돼주었다. 늘 그렇게 뿌리 없는 나무 처럼 방황하던 내 마음이 남편을 중심으로 뿌리를 내렸다. 그렇게 나는 사랑받는 아이로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