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어른이 되는 기준점은 스스로 얼마나 독립적인가 하는 것이다. 아무리 부모 자식 사이나 형제지간이라고 해도 각 사람은 다른 인격체이다. 그 다른 인격체가 건강하게 살기 위해선 각자의 영역을 존중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문화에선 사랑이란 이름으로 얽히고설켜있는 관계가 너무 많다. 그 안에서 서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며 고통받는 관계들을 많이 보았다. 그래서 진정한 독립이 되기 위해서 때론 물리적으로도 거리가 필요하고 심리적으로도 거리가 필요하다. 더 나아가 경제적으로도 자립이 되어야 진정한 독립이다.
돈이 생명줄인 아버지에게 미국 유학은 큰 부담이셨다. 그러나 미술공부를 시켜주지 않은 것으로 당신과 영 사이가 멀어진 딸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한 것인지, 아니면 대학원만 졸업하고 교수가 되어 돌아오겠다던 나의 말에 투자가치가 있다고 믿으셨는진 모르겠지만 나는 운 좋게 부모님을 설득해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그리고 미국에 도착해서 알았다. 나의 영어실력으론 당장 특수대학원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읽고 쓰는 것은 어찌어찌해본다고 해도 원래부터 내성적이고 낯가림이 심한 내가 한국말도 아닌 영어로 수업을 듣고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나중에 미국에서 상담 대학원을 다닐 때 나는 사회성 불안( social anxiety) 카테고리에 속할 정도로 나는 사람들에게 낯가림이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 내가 수업 자체가 토론과 발표가 많은 미국 수업은 나에게 고통 그 자체였다.
그러나 나는 미국에 살고 싶었다. 한 2년만 유학만 하고 돌아가기로 온 땅이지만 도착하고 몇 주 만에 확신이 왔다. 나는 여기서 살아야겠다고.. 남들은 신경 쓰지 않고 유행이 없는 다들 자유분방한 옷차림과 헤어스타일과 나이가 많든 적든 서로 평등하게 대화하며 존중하는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한국에선 찾아보기 힘든 장애인들,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캠퍼스에서 공부를 배우고 그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는 교수님들과 학생들의 모습에도 충격을 받았다.
그때 당시 고작 만 23살 밖에 되지 않았지만, 나는 늘 늦었다고 생각하며 나 자신을 닦달하며 살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 모두 나를 가능성이 넘치는 젊은이로 바라봐 주었다. "아. 여기는 다른 사람들의 비교나 삶의 속도는 중요하지 않구나. 그냥 자신이 살고 싶은데로 사는 나라이구나. 그럼 나는 이런 나라에서 살아야겠다"며. 그래서 나의 목표는 유학이 아닌 정착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새로운 나라에 정착할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았다. 바로 결혼.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정말 무모하고도 위험한 선택이었다. 아무 연고도 없는 미국에서 그 당시 미국에서 사귄 남자 친구와 결혼을 결정했다. 미국에 온 지 일 년 반 만에.. 대학원 공부가 내 영어 실력으로 2-3년 안에 끝나지 않을 것 같았고 더 길어지면 정말 부모님에게 큰 짐덩이가 될 것 만 같았다. 2년 이상의 유학비를 부모님께 의지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의 남은 생은 비교나 경쟁이 적은 미국에서 주도적으로 살아가고 싶었다. 그래서 내 인생 가장 이기적인 선택을 했다. 나는 미국에서 살겠노라고.
미국에서 남은 생을 살기고 선택한 것은 부모님께도 오빠에게도 정말 이기적인 선택이었다. 아버지의 투자금을 돌려주지 못한 먹튀이기도 했지만, 부부 사이가 좋지 않은 부모님을 나 몰라라 하는 것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불행한 결혼생활의 유일한 기쁨이 오빠와 나와 함께 밥 먹으며 수다 떠는 것이었던 어머니에게도 큰 배신이기도 했다. 그리고 앞으로 부모님에게 일어날 모든 일을 오빠에게 떠넘기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 나는 나만 생각했다. 내 행복만 생각했다. 그렇게 미국에 정착했다.
나는 늘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고 싶었다. 나의 존재는 엄마의 불행한 결혼생활의 족쇄인 것 같았고 아빠에겐 돈 먹는 하마 (?) 정도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남편과의 결혼은 나에게 부모로부터 완벽한 독립을 선사해 주었다. 물리적으로 마음대로 갈 수 없는 먼 거리는 정서적 거리도 허락해 주었다. 경제적으로도 부모님께 의지하지 않았다. 물론 남편과 나는 그 당시 정말 별 볼 일 없는 빈털터리 청년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결혼 이후 부모님으로부터 정서적으로 경제적으로 완벽히 독립적인 삶을 살고자 했다.
독립을 한 후에도 한동안 "저렇게 해서 언제 자리 잡을까? 언제 안정이 될까?" 싶은 부모님의 염려와 불안의 눈빛은 한동안 오래갔다. 그리고 부모를 버리고 간 불효녀 같은 느낌을 받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의 "짐덩이"가 되지 않은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리고 결혼 몇 년 뒤 어머니는 친정에 애를 봐달라, 반찬을 해달라, 돈을 빌려달라 요구하지 않는 나를 오히려 너무 고마워했다. 어머니는 그 당시 홀가분하게 당신의 소원이였던 공부를 다시 하며 살고 있었지만, 주변의 어머니 또래 친구들은 또 다시 자식에게 매여 손주육아며 자식 살림을 거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독립을 하고 있었다.
독립은 용기가 필요하다. 때로는 이기적이다 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고 꼭 그렇게 까지 해야 하냐?라는 핀잔을 들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제대로 된 독립을 경험해 봐야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 수 있다.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보지 못한 사람은 건강한 자존감도 삶에 대한 분별력도 키우기가 힘들다. 자신이 스스로 선택하고 노력해서 성취한 것이 후에 진짜 능력이 되고 진짜 자존감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건강한 독립이 된 사람만이 타인과 건강한 연결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독립은 늘 책임감이 따른다. 독립으로 인한 자유를 책임지지 않는 사람은 이기적이고 방탕할 수밖에 없다. 성인이 된 후로 내가 선택한 모든 일에 책임을 지는 연습을 했다. 미국에 오고 나서 배우자를 선택하고 다시 진로를 선택하는 모든 것에 부모님의 동의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언제나 내 선택이 옳았음을 삶으로 증명해 갔다. 그렇게 먼지 같이 존재감이 없던 나의 자존감을 스스로 만들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