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되다.
그리고 내 안의 내면아이를 만나다.
육아가 힘들고 부부관계가 힘든 것은 내면은 자라지 못한 두 성인이 만나 가정을 꾸리기 때문이다. 나이가 먹고 신체가 성장하는 성인이 된다고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이를 키우면서 뼈저리게 느꼈다. 나는 어른인 척, 성숙한 척, 옳은 척 흉내 내는 어린아이였음을 아이를 키우면서 깨달았다. 진짜 어른은 욕심을 부리지도 않고, 성급하지도 않으며, 기다려줄 주도 알고, 너그러우며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안달복달하지 않는다는 것을..
진짜 행복한 아이로 키울꺼야!
첫애를 임신하고 비장한 각오로 엄마 되기를 준비했다. 얼마 전 본 오은영 박사님의 강의에서 부모가 되는 것을 너무 비장하게 하지 말라고 한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렇게 비장하게 하면 부모님 노릇이 너무 힘들다고. 비장한 육아는 어쩌면 부모의 욕심과 통제로 점철된 육아이다. 19년 전의 나는 너무 비장했다.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사랑과 축복을 아이에게 쏟아주리라 . 최고로 사랑받고 행복한 완벽한 아이로 키우겠다고.. 그래서 임신을 알고부터 육아서적을 읽으며 나름의 준비를 했다. 그리고 나름 아동학과 전공자라는 내 학위가 나를 우쭐하게도 했다.
사실 첫아이를 낳고 두 돌까지는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되어 가는 것 같았다. 아이는 순하고 밝은 기운의 아이라 모든 사람들에게 이쁨을 받았다. 그리고 그 모든것이 모두 내 비장함과 노력의 결과인 듯 기쁘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가 자신의 자아가 생기고 소위 말하는 미운 일곱살 (만 4-5살)이 되자 이유 없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딸아이는 그 당시 그 또래가 하는 만큼 장난치고, 말썽을 부리고, 말대꾸를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아이였다. 그러나 나는 그 모습을 용납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도 모르게 내 속에 내면화되어 있던 부모님의 모습들이 불쑥불쑥 올라왔다.
함께 웃어주고 놀아주는 시간보다 벌세우며 윽박지르는 시간들이 많아졌고 그렇게 혼내고 난 후 잠든 아이를 보며 또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반복되는 생활 가운데 스스로에게 "왜?"라는 질문을 수없이 던졌다. 뭐가 그렇게 화가 나고 짜증이 나며 미운지.. 그리곤 나는 깨달았다. 나는 딸아이에게 질투를 하고 화를 내고 있었다. 내가 그 나이에 받지 못한 모든 사랑과 관심을 독차지한 딸이 얄미웠고, 남편과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인내와 사랑의 양육환경을 제공함에도 내가 원하는 " 완벽한 딸"이 되지 못하는 것이 화가 났다. 그렇게 내 안에 자라지 못한 어린아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마디로 내 안에 있는 그 아이는 내 딸을 품어줄 여유도 사랑도 없는 빈 캉통 같은 존재였다.
부모처럼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지만 나는 칭찬에 인색했고 무심할 때도 있었다. 내가 그렇게 싫어하는 부모님의 말투로 이야기하고 그 눈빛으로 아이를 쳐다보고 그렇게 내가 부모님께 받은 인풋(Input) 이 자연스럽게 아이에게 아웃풋( Output)되는 것을 알고 절망했다. 아무리 육아 책을 읽어도 이럴 때 내가 어떻게 나의 마음을 돌보고 아이를 키워야 하는지 알려주는 곳은 없었다. 당연한 것이었다. 사랑은 가진 자만 줄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란 것을 그때 뼈저리게 느꼈다. 받아본적이 없는 그 사랑을 그 능력이 없는 나는 어떻게 아이를 키워야 하냐며 하나님께 매번 울부짖었다.
수유를 하기 위해 2시간마다 일어나는 것보다, 아이를 안고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는 것보다, 밤새 우는 아이를 안고 함께 밤을 새웠던 그런 날들보다,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마다 한대 후려지고 싶은 내 손을 내리는 게 더 힘들었다. 아이들에게 뭔가를 가르칠때 마다 " 너 바보야! 이것도 못해"라는 말들이 목구멍까지 차오르고, 얼굴을 붉히며 이를 악물고 참는 것이 더 고통스러웠다. 나는 한 번도 받아본적 없는 아이들의 쓸데없이 재잘거림이나 짜증을 인내로 끝까지 들어주는 것이 너무나 괴로웠다. 나와 기질이 다른 아이는 달라서 당황스러웠고, 날 닮은 아이는 나의 단점까지 보여 답답하고 한심했다. 정말 하나도 내 맘같이 되지 않았다.
때때로 내 상태와 기분에 따라 내가 하고 싶은데로 쏟아낸 적도 있고 그럴 때면 아이를 붙잡고 눈물로 사과한 적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누군가 아동학대의 대물림은 5중 추돌사고가 난 교통사고와 같다는 말을 했다.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모를 사고의 시작으로 뒤에서 갑자기 밀어붙인 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앞의 차를 들이박는 교통사고 같다고.. 정말 그랬다. 나는 정말 아이들을 들이받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내 안에 잠자고 있던 분노와 부모님의 모습들이 불같이 튀어나와 아이들을 들이받고 싶어 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때마다 나는 죽을힘을 다해 핸들을 틀거나 브레이크를 밟아야 했다. 최대한의 충격만이라도 줄이려고...
뼈를 깍는 노력을 해야합니다.
금쪽같은 내 새끼라는 방송에서 무섭고, 애정 없고 냉랭한 부모님들에게 오은영 박사님은 하나같이 물어본다. 어머님/아버님의 부모님은 어떤 분이셨나고.. 그러면 대부분 다들 자신들도 그 당시 무섭고 엄하고 애정 없는 부모님의 양육태도 때문에 괴로웠다는 고백을 한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배운 것 같다며.. 그때 오박사 님이 말씀하셨다. " 자신도 사랑받지 못한 아이였음을 인정하시되 뼈는 깎는 노력으로 대물림을 막아야 한다고.." 정말 그랬다. 뼈를 깍는 노력.. 한마디로 육아는 나의 본성을 거스리는 행위였다. 배우지 못한 것은 억지로라도 해야 했고 나에게 너무 당연했던 행동들은 죽을 힘을 다해 참아야 했다.
누군가에겐 너무나 쉬운 행동들이 나에겐 날마다 몸부림치는 고통과 노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때로는 그냥 나도 부모님처럼 남들처럼 배운 데로 본 대로 쏟아내고 싶었던 적이 너무 많았다. 그러나 그때마다 나처럼 그렇게 우리 아이들을 세상에 홀로 떠있는 섬처럼 만들고 싶지 않았다. 절대로 나와 같은 깊은 절망이나 불안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아이들을 위해 나는 나의 내면 아이를 키워야 했고 성장시켜야 했다.
" 영유아기 때 우리는 주로 사랑을 받는 데 관심을 쏟는다. 사랑을 받지 못하면 아이는 죽어버리기 때문이다. 진정한 성장은 언제나 사랑을 얻고자 하는 결핍 상태에서 자신과 타인에게 사랑을 줄 수 있는 상태로 옮겨가는 것이다. 이러한 성장은 고통과 수치심으로 도망치지 않고 과거에 경험한 상실, 트라우마, 학대가 낳은 슬픔을 성공적으로 치유할 때만 가능하다."- 내 안의 내면아이책 중에서
나는 성장하고 진짜 어른이 되기 위해서 내면의 아이와 친해져야 했다. 불쑥 불쑥 올라오는 화안에 "진짜 감정"을 읽어야 했다. 그 감정을 다시 마주하는 것이 아프고 괴롭지만 읽어야 했고 감정을 인정하고 흘려보내야 했다. 때로는 울어야 했고 때로는 따지듯이 화를 내며 하나님께 토로하기도 했다. 그때 흘렀던 눈물을 모으면 아마 큰 항아리를 채우고도 남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날마다 그 아이를 대면하며서 나는 내 속의 아이를 키워갔다. 그러자 늘 별일 아닌 일에 불쑥불쑥 올라오던 분노와 억울함들이 많이 가라앉았고 그렇게 내면의 아이와 함께 성장하면서 확실히 너그러워지고 기다려 줄 수 있는 엄마가 되었다. 그렇게 내 안의 아이와 함께 성장했을 때 나는 평안해지고 행복해 졌다. 그리고 내가 행복해 지자 아이들도 행복해 졌다. 그렇게 나는 아이를 키우며 진짜 어른이 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