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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정미 Apr 07. 2022

미술이 치유가 되는 순간

프리다 칼로, ‘부상당한 사슴’ 1946년.

멕시코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 화가이다, 프리다 칼로. 미술학적으로는 그녀의 페미니스트적인 활동과 상징성이 그녀의 그림을 유명하게 만들었다. 그녀의 그림엔 많은 상징과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많은 그녀의 그림은 괴기스럽고 고통스럽다. 왜냐하면 그녀의 삶이 그랬기 때문에.


18살에 당한 전차 사고 때문에 온몸이 부서지는 고통을 겪었고, 평생 사랑한 단 한 사람 남편, 디에고(그도 화가였다.)는 수많은 불륜으로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아이를 너무 낳고 싶어 했지만 후에 자궁까지 드러내는 수술을 하면서 그녀는 절망한다. 마치 삶이란 작정하고 그녀에서 고난을 선사하는 듯 하다. 그런 신체적, 심리적 고통을 고스란히 그녀의 그림에 담겨 있다. 


사실 그녀가 몇 년 동안 전차 사고로 침대 신세를 지고 있을 때, 그림이 그녀에게 큰 위안을 주었다. 아래 그림에서 보이듯이 그녀가 사고로 인한 고통이 얼마나 심했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는 알 수 있다. 이런 종류의 초상화가 많이 있다. "나는 아픈 것이 아니라 부서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한 살아있음이 행복하다"라고 말한 그녀의 말처럼 그림 그리는 행위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녀의 삶에 존재의 의미를 부여함으로 그녀는 살아났을 수도 있다.  


위에 부상당한 사슴도 자신은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사슴으로 표현하고 저 여러 개의 화살은 남편 디에고가 저지른 불륜으로 자신이 얼마나 아픈지 표현하는 그림이다. 수백 마디 말보다, 그가 재미로 저지르는 불륜이 그녀를 얼마나 아프게 하는지 이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한 것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그림으로 위안을 받는다. 나도 저런 심정이었다. 나도 저만큼 아팠다고. 


그러나 나는 이런 그림을 우리 집에 걸어놓고 싶지는 않다. 보기만 해도 너무 슬프고 아프기 때문에..

하지만 미술 치료사로서 이 그림들은  정말 파워풀하고 의미 있다. 말로 이루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것들을 이미지로 색깔로 고스란히 담아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 미술치료는 완성된 결과물에 중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음으로 느끼는 해방감에 훨씬 의미를 많이 둔다. 그래서 치료로써의 미술은 어쩌면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것이다. 다른 이의 견해나 평가 따위는 필요없는 감정 표현의 도구인 것이다. 

The Broken Column, 1944 by Frida Kahlo

비슷한 맥락의 그림이 아래의 위안부 할머니의 그림이다. 사실 나는 이 그림을 보고 속으로 환호했다. "이거다! 이게 미술치료의 힘이다. " 위안부로 끌려간 자신의 삶, 한과 고통을 도저히 말로는 표현할 방법이 없더란다. 그래서 누군가가 그림을 그려보라고 했고 이 그림을 완성하셨다. 이  그림을 우연히 본 영화감독이 위안부의 이야기를 담은 " 귀향"이라는 작품을 구상하게 되었단다.  이 그림이 너무 파워풀해서 머리에서 잊히지가 않았다고. 칼보다 세 치 혀가 무섭다고 하지만, 말 만큼이나 힘이 있는 게 이미지이다. 트라우마가 힘든 이유도 내 머리에 박혀버린 이미지, 냄새, 색깔, 분위기가 잘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끌려감 (고 김순덕 할머니의 그림)


위 그림만 봐도 그때 당시 얼마나 무섭고 얼마나 공포스러웠을지 느껴진다. 이분은 미술을 배운 적도 없지만 자신의 심경을 색깔과 인물의 표정, 구도로 너무나도 강렬하게 담아내시고, 그림들은 그분들의 마음을 한 번에 전달할 수 있는 수단, 진정한 언어가 되어주었다. 


미술은 아름다워야 하고,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자. 치유가 되는 미술은 어떤 면에서 나와의 대화이고 다른 사람과의 소통이다. 말할 수 없는 나의 심정을 표현하는 것, 그림으로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치유는 시작된다. 그런 그림의 힘을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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