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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정미 May 12. 2022

하나님도 어쩌지 못하는 고부/장서 갈등?

우리나라 이혼사유에서  여전히 3-4위를 다투는 것이 시댁/친정 갈등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명절 증후군이니 명절이혼이니 하는 말들이 이제 낯설지 않은 시대입니다.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인 부모 자녀와 부부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이기 때문에 참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그래서 속된 말로 하나님도 해결 못해주는 것이 고부/장서 갈등이라고 까지 합니다. 다른 나라에서보다 유난히 우리나라에만 있는 이 갈등은 사실 뿌리가 엄청 깊습니다.


유교문화를 바탕으로 한 우리나라에선 효는 생명보다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남아선호이 강했던 과거 며느리는 한 인격체로서 대우를 받기 힘들었습니다. 남편의 아내 이전에 한집안의 며느리로서 감당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런 며느리들에게 자식만이 유일한 희망이고 위로였기 때문에 며느리들은 또 자녀 특히 아들에게 집착할 수밖에 없는 가족구조로 발전했습니다. 그래서 혹독한 시댁살이를 한 며느리가 다시 혹독한 시어머니가 되는  정서적 흙수저를 대물림했습니다.


요즘은 시대가 변해서 남아선호 사상의 분위기는 많이 없어졌지만, 여전히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집착하고 간섭하는 것은 변하지 않은 듯합니다. 지금은 고부갈등만큼 장서갈등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잘 나가는 딸을 둔 부모들이 결혼한 딸 집 근처에 살면서 아이도 키워주고 살림도 해주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사실 모양을 달라졌지만 고부갈등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갈등의 주된 원인은 한국문화에 남아있는 효와 결혼은 대한 잘못된 관념과 우선순위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경우 경제적 빈곤이나 건강상의 문제로 부모를 봉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어려운 지경이 많은 부모님들이 있었기 때문에 함께 살면서 부모들을 돌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고 그런 문제들이 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자녀들에게 과거와 같은 기준의 효를 요구하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21세기에 20세기적인 삶을 살라고 하느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결혼에 대한 잘못된 오해가 많았습니다. 특히 어른들 중에 결혼을 내 집에 며느리를 들이고 사위를 들인다는 표현을 합니다. 물론 자녀가 결혼을 하면 가족이 늘어나는 개념도 있지만, 사실 자녀의 결혼의 핵심을 이제 내 품을 떠나 독립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나의 아들과 딸이 나의 권위가 아래 있는 것이 아님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각자 독립된 가정으로 각각의 배우자를 우선순위에 두고 각자의 가정을 스스로 꾸려나갈 수 있도록 인정해 줘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어른들이 며느리와 사위를 여전히 나의 권위와 가족체계 안에 가두거나 나의 가족 문화를 전수하려고 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깁니다. 독립된 성인자녀의 가족 문화는 그들이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녀가 결혼을 하면 결혼한 자녀도 부모도 가족 체계에서 우선순위가 바뀜을 인정해야 합니다. 사실 이것만 잘 되어도 고부/장서갈등은 많이 줄일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사실  효자 효녀들이 결혼생활이 힘듭니다. 그들은 뭔지 모를 부모 대한 죄책감 내지는 미안함이 도를 지나쳐서 늘 자신의 원가족을 배우자보다 우선순위에 두기 때문에 부부관계에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가끔 연예인들이 TV에 나와서 이상형을 물어보면 자기 부모 혹은 엄마에게 잘하는 사람이 이상형이란 말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사실 저는 소름이 돋습니다. 그들은 대놓고 우리 부모의 말 잘 듣는 딸이나 아들이 되어달라는 말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 말은 나는 평생 너의 일 순위가 되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그들의 말은 마치 우리 부모에게만 잘하면 다른 건 네가 원하는 데로 다 해주겠다는 달콤한 유혹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결혼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힘든 관계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지날 때마다 번번이 나의 편이 아닌 자신의 부모나 가족의 편을 드는 배우자와 평생을 갈 수 있는 사람은 많이 없습니다.


결혼은 배우자를 끌고 우리 가족체계로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성경에도 분명히 "부모를 떠나 배우자와 하나되라"라고 나와있습니다. 따라서 결혼은 내가 부모의 울타리 벗어나 독립적인 가정을 이끌겠다는 선언입니다. 따라서 결혼한 사람에게 일 순위는 내가 선택한 배우자가 되어야지 나의 원가정이 되면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선 사실 결혼한 사람들이 각각 신체적, 경제적 정서적 독립이 건강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할 사람의 집안 배경이나 경제력을 보고 도움을 바라고 결혼을 한다면  절대로 건강한 왕래와 친목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건강한 독립은 각각 가정의 문화와  삶의 취향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딸이나 며느리 집에 가서 살림살이나 육아에 대해 잔소리하는 것도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부모가 손자 손녀를 돌보아 주는 것도 당연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각각의 가정을 마치 남의 가정처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족 간에 일어나는 문제는 서로 상의하고 조율해야 합니다.


이런 건강하고 독립적인 가정이 되기 위해서  필요조건은 우선 부모님들은 자녀에게 너무 올인하시면 안 됩니다. 많은 한국 부모 특히 어머니들은 자식을 위해 너무 헌신하고 희생합니다. 사실 자녀는 길어야 20-30 년이면 내 품을 떠납니다. 그때 자녀가 떠난 내 모습이 너무 외롭고 초라해서 결혼한 자녀들을 놓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자녀를 키우는 동안 자녀에게 쏟는 정성반의 반이라도  자신의 취미생활이나 배우자와의 관계에 쏟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어쩌면 나의 노후를 위한 가장 건강하고 확실한 투자입니다.


두 번째 자녀들은 결혼한 이후엔 배우자가 나의 일 순위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부모를 미워하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해서 결혼한 배우자는 내가 지켜줘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결혼초에 힘들어도 이 우선순위가 확실하게 정해지면 원가족들도 조금씩 적응해 갑니다. 그래서  어른들도 나의 독립된 가정의 삶의 패턴과 방식을 인정해 주는 순간이 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로 너무 잘 보이려고 애쓰지 않았으면 합니다. 결혼을 막 한 가정에서 보이는 현상이 며느리는 며느리데로 시어머니는 시어머니대로  좋은 며느리 , 시어머니가 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 과하게 잘해주고 애쓰다 서로 섭섭해지고 관계가 틀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처음에 잘 보이려고 한 행위나 배려가 상대 쪽에서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지치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최고의 덕목이라 여기는 기독교에서도 우리나라 고부/장서갈등은 하나님도 어쩌지 못한다는 농담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문제를 인식하고  개선하려고 노력하려고 한다면 충분히 발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신과 의사이신 문요한 님이  쓰신 관계를 읽는 시간이란 책에도 보면 관계를 분명히 달라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단, 첫 번째 자신에게 반복되는 문제를 자각하고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두 번째 의식적인 노력으로 새로운 사고와 행동을 반복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의지적 노력과 교육이 필요하겠지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간절하고 절박하게 변화를 바라고 크고 작은 시행착오를 이겨낼 힘을 키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서로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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