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이 년 전 코로나로 인해 가족 모두 집콕을 하던 시절, 남편은 나에게 책을 쓰라고 강요했다. 집도 팔고 사업도 때려치우고 아이들과 함께 자꾸만 세계여행을 가자던 충동적인 남편을 달래느라 제안한 나의 협상안, 미주 캠핑카 여행을 덥석 잡은 남편은 ( 순도 100% 집순이에 안전지향적인 내가 미국 캠핑카 여행도 어디냐며 감지덕지했다고 한다.) 그 후부터 책을 쓰라며 나를 들들 볶았다. 내가 책을 쓰면 책도 팔면서 미국 전역을 돌면서 한인들을 대상으로 부모교육 강연을 하면 좋겠다는 말도 안 되는 열변을 토해냈다.
별로 유명하지도 않고 특별하지도 않은 내가 쓴 책을 어느 출판사가 만들어주며 누가 사주겠느냐고 나는 손사래를 쳤다. 그러자 남편은 그런 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글이나 쓰라며 나를 다그쳤고, 나는 책은 둘째치고 내 생각이나 정리해보자며 시작한 것이 블로그였다.그리고운명적(?)으로브런치에서 브런치 북을 만든 것이 한 출판사 팀장님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브런치 북의 내용이 뼈대가 되긴 했지만 70% 정도는 다시 만들어 넣어야 했다. 그렇게 일은 점점 커졌다.
엄마가 되고 상담가가 되어보니 건강하고 좋은 육아의 첫 번째는 마음이 건강하고 성숙한 성인이 되는 것이 먼저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숙한 어른은 절대로 돈이 많거나 성공하거나 똑똑한 어른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어린 시절의 차별과 정서적 결핍으로 마음이 건강하고 성숙한 성인이 되지 못했고 그것이 육아와 부부관계 그리고 주변의 인간관계까지 치명적인 영향을 주고 있었음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런 마음의 상처는 양육자의 심각한 신체적 학대나 폭력이 아니라도 정서적 결핍과 언어폭력 등으로도 생길 수 있는 것이었다. ( 나는 이 책을 통해 정서적 학대의 심각성을 꼭 말하고 싶었다.) 이 책은 나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내 모습과 가족의 문제들을 심리상담가의 시선으로 분석하고 우리 가족 안의 대물림의 문제를 찾아내어, 그것을 내가 어떻게 회복하고 치유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유아기부터의 인간 발달과정이나 심리에 대한 전문적인 내용도 있지만 그것을 설명하고 반영하는 스토리는 나의 지극히 자전적인 이야기라 아픈 과거를 다시 회상하고 들쑤시는 것은 절대로 즐거운 과정이 아니었다. 책을 쓰면서 다시 슬프고 서러운 마음을 다독여야 했다. 하지만여전히 상처받고 상처 주는 꼬일 대로 꼬여버린 가족관계 때문에 고통받거나, 여전히 부모의 통제와 억압에 어쩌지 못하는 성인자녀들과 부모의 상처와 대물림으로 결혼이 두렵거나 육아와 부부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나의 부끄러움은 감수할만하지 않을까 싶다.
사실 나는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남편의 계시(?)가 현실화된 것도 신기하고 내가 책을 쓴 것도 믿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나의 이야기가 곧 세상에 나온다는 것도 아직까지 꿈만 같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잡히지도 않던 남편의 말이 씨가 되어 정말 씨앗을 틔우고 자라나려는 모습이 그저 신기하기만 할 뿐이다.인생은 정말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 씨앗의 시작은 내가 남편의 말을 흘려버리지 않고 뭔가라도 시작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마치 나비효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