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원정미 Oct 19. 2022

몸은 기억한다

며칠전 갑자기 몰려오는 우울과 불안에 이유없는 눈물이 흘렀다. 그냥 막 서럽고 눈물이 났다. 그리곤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갑작기 왜이러지?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는 이유가  알고 싶어 내 마음을 들여다 보았다.  그렇게 서럽고 슬플 일은 없었다. 쓰던 원고가 마무리 되어 곧 출판이 될 것이라는 출판사 팀장의  말에 스트레스를 받기는 했어도 눈물이 날 만큼 힘들진 않았다. 직장도 아이들도 남편도 달라진 것 없었다. 내 일상의 변화는 거의 없었다. 단 하나만 빼고, 날씨.

화창한 캘리포니아의 날씨가 가을로 넘어가고 있다. 가끔은 구름에 가려 하루종일 흐린 날도 있고 아침 저녁으로 콧잔등이 시려운 가을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생각이 났다. 아.. 작년 이때쯤 언니가 떠났구나 ...

딱 이렇게 아침 저녁으로 선선해지고 구름이 낀 아침에 나는 전화를 받았다. 며칠전 까지 웃으며 인사했던 사랑하던 동네 언니가 죽었다고. 그것도 자살로..그때의 충격과 슬픔이 아직 내 몸에 남아있었던 것이다.

사실 그래서 사랑하는 배우자나 자녀 가족을 떠나 보낸 사람들이 기일이 가까워 오면 갑자기 우울해 지거나 몸이 아프기도 한다. 몸이 기억하기 때문이다.

너무나 큰 충격과 트라우마는 기억에만 남는게 아니다. 몸에 각인이 된다. 그 당시 냄새, 색깔, 소리, 분위기. 온도... 그리고  어느 것 하나라도 그때의 기억을 상기시키는 트리거가 되면 다시 그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어쩌면 똑같은 경험을 하고 싶지 않은 인간이 살아남기위한 생존방법이다. 그게 트라우마의 무서운 점이다. 트라우마는  잊고 싶다고 잊혀지는게 아닌 것이다.

언니의 죽음이 나에게 공포스러울 정도의 트라우마가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을을 너무 좋아하고 그래서 매년 가을을 가장 기다리던  나에게 한동안 가을은 슬픔의 계절이 될 것만 같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 또한 언젠가는 지나가리라 믿고 견디는 수 밖에는...


매거진의 이전글 모든 행동엔 다 이유가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