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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정미 Jul 18. 2024

실리콘 밸리에서 살아가는 법

엔지니어가 아니지만

나는 실리콘 밸리에서 20년 넘게 살고 있다. 내가 원해서 이곳으로 이민 온 것은 아니다. 처음 유학을 올 때 부모님께서 외삼촌이 있는 곳이 아니면 아예 허락을 해 주지 않으셨다. 그렇게 정하다 보니 이곳으로 유학을 오게 되었고 나는 이곳에서 남편을 만나 정착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세월이 가면 갈수록 우리 동네는 세계적으로 핫해졌다. 그만큼 세계 유명 대학을 나온 엔지니어들과 기술자들이 모이는 곳이다. 그분들의 높은 연봉 덕분에 집값도 물가도 천정부지로  솟았다. 그래서 엔지니어나 IT 쪽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곳의 집값과 생활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많이 떠나기도 했다.

 

거짓말 좀 보태서  하버드, 스탠퍼드, 버클리, 예일대, 카이스트, 서울대 등의 명문대 나온 사람들은 지나가다 스치기만 해도 만난다. 아마 대학을 나오지 않은 사람을 찾는 게 더 어려울지 모른다. 이런 이유로 엔지니어가 아닌 직업을 가진 청년들은 4년제 대학을 졸업해도 방하나 딸린 아파트하나도 구해서 살기가 어렵다. 기본 생활비가 적어도 4000-5000불 (450만 원에서 550만 원)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미국에서 흔치 않은 대학졸업 후 부모에게 얹혀사는 캥거루 족들이 나오기도 한다.


우리 동네만 해도 한집 걸러  한집에 테슬라가 보인다.  딸과 아들 친구들 부모들 대부분 엔지니어들이 많다. 종종 '00 아빠는 구글 다닌데 000 엄마는 애플 다닌데' 이런 말은 흔하고 흔한 소리이다. 내가 만나는 내담자의 부모 직업란에도 꼭 한쪽은 엔지니어 이거나 아니면 둘 다 엔지니어인 경우가 많다. 그 이야기인즉슨 의료보험도 빵빵하고 집안에 여유가 있다는 말이다.  당연히 아이들에게 여러 가지 지원도 많이 해준다. 운동이며 악기는 기본으로 가르치고 여름 캠프며 겨울 캠프도 보내고 일 년에 한두 번 해외여행을 가는 집이 수두룩하다. 이렇게 누가 봐도 스펙이 좋고 잘 나가는 사람들이 넘치다 보니 정말 정신을 바짝 차라지 않으면 비교로 인한 열등감, 실망감, 자괴감등을 느끼기 너무 쉬운 곳이기도 하다.


이런 곳에서 엔지니어가 아닌 남편과 나는 살고 있다. 남편도 나도 성실하게 돈을 벌고 명품하나 사지 않는  검소한 나와 남편의 소비패턴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 사는 것은 늘 빠듯하다. 잘 나가는 엔지니어 연봉에 반에 반도 못밑 치는 수준이니 어쩌면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나도 아이들이 배우고 싶어 하는 거 다 가르쳐주고 싶고 일 년에 한두 번 해외여행도 가고 싶지만 그럴 시간적 여유도 형편도 어렵다. 비교하고 싶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비교가 되는 게 인간의 마음인지라 속상할 때도 있다.  이곳을 떠난 지인들이 다들 빨리 그곳을 떠나라며 유혹하기도 한다. 지금의 월급이면 다른 곳에서 훨씬 편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나도 안다. 하지만 그런 마음으론 비교로 인한 속상함은 달래 지지 않는다.


아무리 남편과 내가 노력해도 우리가 버는 돈은 한계가 있다. 내가 엄청 유명한 사람이 되어서 강의를 하러 하니거나 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지 않는 이상 부자가 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따라서 돈이나 명성으로 이 동네 사람들을 이겨보려고 하는 건 어리석은 선택이다. 대신 나는 다른 방법을 선택했다. 나는 나답게 살기로 말이다.


나는 테슬라가 아니어도 운전하는데 아무 상관없고, 명품백, 명품옷 하나 없어도 내가 원하는 대로 스타일링하며 입는다. 해외여행은 사실 그렇게 가고 싶지도 않다. 원래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다.  아이들 과외는 더 시켜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지금도 충분히 만족한다. 각자 원하는 것 하나씩 정도는 하고 있다.  남들보다 비교해서 나의 마음을 지킬 수 있는 건  열심히 노력해서 남들처럼 사는 게 아니다. ' 그게 정말 내가 원하고 필요한 것인가?'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에 있다고 믿는다. 그래야 타인과의 비교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어차피 그들과 나는 원하는 것과 바라는 것이 애초에 다르고 우린 다른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내가 정말 원하는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더 열심히 모으고 있는 중이다. 아이들과 가족들이 행복해하는 집밥과 음식에 대한 추억과 이야기, 밥 먹으면서 나누는 실없는 농담과 잡담, 아이들의 웃음소리, 주고받기보다는 놓치는 게 훨씬 많은 배드민턴 그래서 배꼽을 잡고 웃는 우리,  가족들과 재미있게 놀았던 기억, 남편의 따뜻한 품과 손길, 남편과 함께 나눈 의미 있었던 대화, 장난과 웃음, 재미있는 책과 글쓰기 그리고 나를 위한 혼자만의 시간등이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이고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니까. 이것이 내가 웃으며 이 실리콘 밸리에서 살아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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