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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t therapist Jul 16. 2024

살구쨈을 만들다.

내가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의 주택은 대부분은 앞마당과 뒷마당이 있다. 그리고 대부분 마당엔 여러 가지 나무를 심어 놓는다. 이십여 년 전 이 집으로 이사를 왔을 때에도 우리 집 뒷마당엔 감나무와 대추나무와 여러 가지 이름 모를 꽃나무들이 있었다. 그리고  시부모님과 함께 사는 7여 년 동안 우리 집 마당은 거의 온갖 과일나무로 채워지게 되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꽃나무들 보다 뭐라도 열리고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선호하시는 시아버님의 성향 때문이다. 교회 분들에게 하나둘 얹어 다가 키우신 모종들이 하나둘씩 늘어나서 우리 집엔 없는 것 빼곤 다 있는 과수원 수준이다.  감나무, 대추나무, 포도나무, 사과나무, 살구나무, 석류나무, 자두나무, 용과나무, 금귤나무, 비파나무, 복숭아나무, 레몬나무, 체리나무등등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우리 집 마당이 한 백 평쯤 되는 것 같지만 사실 대부분의 나무는  사람키 정도밖에 되지 않고 한그루나 두 그루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과일나무가 많아서 비싼 과일을 공짜고 먹을 수 있지 않아서 좋겠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농사에 지식이 있으신 분이 키우시는 게 아니라서 제대로 상품 가치가 있는 과일을 생산하는 나무는 거의 없다. 그냥 집에서 키운 것이기에 맛만 보는 정도이다. 그 해 껍질이 너무 질기거나 과일이 너무 맛이 없으면 그냥 썩어버리기 일쑤였다. 특별히 살구가 우리 집에선 천덕꾸러기였다. 매년 열리는 살구는 과육도 푸석하고 썩 달지도 않고 시기만 해서 나도 그렇고 아이들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래서 늘 땅에 버려지거나 새들의 간식 정도일 뿐이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살구가 열리고 남편이 살구를 한 바구니 따왔다. 나는 그걸 보고 분명 저렇게 있다 썩어서 버려지겠구나 싶었다.  그러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온 세계가 글로벌 워밍을 넘어서 글로벌 버닝사태를 겪고 있는 요즘 언젠가 이런 살구도 못 먹을 날이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 한국은 사과 하나가 만오천 원 할 만큼 금사과가 되어 버려 집에서 사과를 매일 먹을 수 있는 사람은 부자라는 뉴스도 본 적이 있다. 이미 바다의 온도가 높아져서 이제 한국바다에서는 잡히지 않는 해산물도 많아졌다고 했다. 이런 현상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극심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후위기에 대한 해결점을 찾지 못한다면 어쩌면 결과는 뻔한 것이다. 열대화, 가뭄, 홍수 등으로 곡식들이 제대로 자라지 못할 것이고 식량난이 생길 것이고 그로 인해 국가 간의 분쟁이나 다툼도 극심해질 것이다.


그리곤 갑자기 나는 그런 상상을 했다. 30-40년 후  세월이 지나 할머니가 되어 하얀 침대에 누워 정부에서 주는 가공식품만 먹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그 할머니는 지금의 나를 회상하며 '그때 우리 집엔 과일이 참 많았었는데. 그때가 참 좋았는데. 왜  그땐 다 먹지도 않고 버렸을까? 그때 그 싱싱한 과일 한입베어 먹어봤으면 참 좋겠다.'라는 후회를 할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르고 지나면 이 시어 빠진 살구도 귀해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냥 내 버려두지 말고 어떻게든 먹어야 겠다는 맘이 들었다. 그래서 쨈을 만들기로 했다. 이왕 먹을 거면 좀 더 건강하게. 유기농 설탕과 꿀을 적절히 배합해서  살구와 함께 넣고 냄비에 오래 끓였다. 살구가 완전히 솎아 졸아들 때까지 젓고 또 저었다. 생각보다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설탕과 꿀의 조합 덕분에 적당히 달달하고 새콤한 수제 살구쨈이 되었다.


 지금의 심각한 기후변화도 어쩌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잃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나만 있어도 되는 물건도 여러 개 가지고 싶고, 아직 기능을 하고 있지만 더 세련되고 예쁜 디자인을 위해 버리고, 나에겐 꼭 필요 없어는 물건도 유행을 한다면 꼭 가져야 할 것 같은 인간의 욕심이 이렇게 지구를 망가뜨리고 있는 것이니까. 정말 내가 필요한 게 무엇인지 그리고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걸 오래오래 소중히 간직하는 마음이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 우리 집 작은 과수원에서 무엇이 열리든, 그게 비록 작고 보잘것없고 맛이 없어도 그것만으로도 이미 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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