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왜 00만큼 못하니?
심리치료사로서 인간 내면의 회복과 치유의 방법을 알고 있는 만큼 누군가의 자존감과 내면을 가장 쉽게 짓밟을 수 있는 방법 또한 알고 있다. 그런 바로 하지 말아야 할 말과 행동을 하면 된다. 비교의 언어가 그렇다. "너는 왜 오빠보다 공부를 못해?" 언니는 키가 큰데 너는 안 그러네. 형 반만 닮아봐라. 너는 누구를 닮아 그 모양이니? 00이네 아들은 이번에 학교에서 상 받았다고 하더라. 너는 언제 그런 거 받아올래? 00은 공부도 잘하고 집에서 엄마한테도 엄청 살갑다더라."등등 비교의 언어를 남발하면 된다. 그러면 그 사람은 자신의 장점은 잊어버리고 단점만 바라보게 된다. 그렇게 자신의 단점만 쳐다보게 된다면 사람은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한국은 이런 비교가 너무 당연시되고 있는 나라 중 하나이다. 모든 것이 비교가 너무 쉬운 수치로 되어있다. 학교 등수, 대기업순위, 연봉, 아파트 평수, 더 나아 신랑감 신붓감도 등급으로 매길 수가 있다. 이렇게 비교가 너무 쉬운 나라이다. 이런 비교의 문화가 한국의 현재 정신건강과 높은 자살률과 깊은 관계가 있을 것이라 나는 확신한다.
비교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남들만큼 사는 것이 목표가 되기 십상이다. 남들이 하는 만큼 남들이 가지고 있으니 나도 해야만 할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뒤쳐지고 후진 인생을 사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아무리 죽을힘을 다해 노력해서 성취를 하고 재능을 키워도 나보다 잘 나가고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 그러니 마음에 열등감과 불안감이 떠나질 않는다. 비교의 가장 큰 문제는 늘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초점을 맞추게 한다. 그로 인해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을 보지 못하게한다. 그래서 위축되고 불안하고 우울해진다.
마음이 건강하고 스스로 주도적인 삶을 살기 위해선 타인이나 사회가 정한 목표가 아니라 스스로 원하는 것을 알고 그것을 성취하며 사는 삶이 되어야 한다. 각각의 개인은 너무나 특별하고 유일한 존재이다. 각자가 원하고 추구하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모두 다르다. 때문에 인생에서 '000만 가지면 모두가 행복할 수 있습니다'라는 정답은 없다. 하지만 비교의 말은 ' 너는 틀렸다. 너는 부족하다'는 메시지를 계속 전달한다. 때문에 사랑하는 이들에게 비교의 언어를 남발하면 그들을 우울과 불안의 급행열차로 밀어 넣는 것과 같다.
개인적으로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는 자녀를 향한 외모비교이다. '동생이 더 예쁘네' '형보다 키가 더 크네.' ' 동생은 날씬한데 언니는 아니네?"등등 아무 생각 없이 내뱉는 말들이 아이들에게 외모 콤플렉스를 키운다. 자의식이 발달하기 시작할 때 자신의 부족함으로 누군가에게 지적받기 시작하면 그 부분만 크게 확대되어 버리고 열등감이 되기 십상이다. 다른 곳이 아무리 예뻐도 늘 부족한 부분만 크게 확대되어 보인다.
때문에 자녀를 향한 외모비교는 최악의 행동이다. 아이들은 자신의 외모를 선택해서 태어나지 않았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전자가 발현되는 것뿐이다. 아이들이 선택할 수 있었다면 자신이 원하는 성별을 정하고 잘생기고 예쁜 외모를 분명히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선택권이 없었다. 그런 아이들을 향한 외모비교를 통하 비하나 놀림은 폭력적이다라고 까지 말하고 싶다. 아이들이 자신의 외모에 대한 불만이나 수치심을 어릴 때부터 느낀다면 자연스럽게 건강한 자아상이나 자존감이 생길 수 없다.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가 심해지면 섭식장애, 사회불안장애, 우울증으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외모뿐만 아니라 많은 부모들이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를 통해서 자녀에게 자극을 주고 동기부여를 하려고 한다. 하지만 실상은 자녀에게 수치심과 불안감만 안겨줄 뿐이다. 특별히 가정 안에서 형제들끼리 친구들끼리의 비교를 아이를 키운다면 아이들은 내면에 ' 부모에게 늘 부족한 아들/딸' '자랑스럽지 않은 아들/딸'이 되고 만다.
이런 언어는 아이들 내면에 결핍을 줄 뿐만 아니라 가족 안에서 갈등을 일으킨다. 부모들을 상담하다 보면 형제나 자매들끼리 지나치게 사이가 좋지 않은 경우가 있다. 많은 경우 부모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는 아이들을 비교하고 경쟁시키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다 보면 비교를 통해 열등하다고 느끼는 아이는 다른 형제를 미워하게 될 수밖에 없다. 부모의 사랑을 빼앗겼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형제자매사이가 유난히 나쁘다면 혹시 부모가 습관적으로 비교의 언어를 쓰고 있지 않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분명히 가르치고 훈육해야 할 부분이 있다. 공부 습관이든 청소습관, 식사습관이든 무엇을 가르치고 습관을 들이는 데는 반복적인 지시와 훈계가 필요하다. 그때 부모는 아이들에게 의식적으로라도 비교하지 않고 말해야 한다. 비교하지 않는 언어습관을 키울 때 두 가지를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첫 번째는 아이들이 어쩔 수 없이 타고난 외모나 기질은 비교하고 판단하지 않는다. 이런 유전적이거나 기질적인 것은 아무리 비교해도 잘 바뀌지 않는다. 오히려 지적받고 판단받게 된다면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 자아상과 수치심만 키울 뿐이다. 부모에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수용받지 못한 아이는 성인이 되어서 자신을 있는 그래도 수용하고 사랑하는데 애를 먹을 수도 있다. 이런 부정적 자아상은 궁극적으로 타인과 관계를 맺고 인간관계를 이어가는데도 걸림돌이 된다. 건강한 정신건강의 기본은 자신은 단점과 약점이 있지만 그래도 이정도면 썩 괜찮은 사람이라는 긍정적인 자아상이 바탕이된다 ( 건강한 자아상은 나는 최고야! 내가 제일 잘났어!와는 다른 것이다.)
'오빠는 안 그런데 너는 왜 그렇게 예민하니?"--> 00는 피부가 민감해서 이런 옷은 싫구나. 알았어. 다른 거 찾아보자'
'형은 아무거나 잘 먹어서 키가 크잖아. 너는 편식하면 형만큼 키 안 큰다. --> 골고루 먹어야 건강하게 자라지'
두 번째, 미성숙한 아이들을 가르치고 훈육할 때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지 않고 부모가 가르치고 싶은 말, 즉 전달하고자 하는 소원, 목표, 바라는 점만 전달한다. "00네 아들은 그렇게 엄마한테 자주 전화를 자주 하고 싹싹하데"라는 말은 "나도 우리 아들과 전화를 자주 하고 싶어"라는 말이다. "언니는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공부를 잘하는데 너는 왜 그러니?"라는 말은" 00가 스스로 주도적으로 공부습관을 가졌으면 좋겠어"라는 바람이다. 이렇게 부모의 바람과 소원을 직접적으로 아이에게 전달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아이들은 누군가와 비교되는 순간 '나는 00보다 부족한 사람' 혹은 '엄마 아빠는 나보다 형/누나/ 동생을 더 좋아하고 사랑하네'라고 오해하기 십상이다.
관계 안에서 이렇게 서로에 대한 오해가 쌓이면 당연히 갈등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미워하고 경쟁할 필요 없는 형제/자매까지 미워하게 되고 그렇게 차별하는 부모에 대한 원망이 쌓인다. 그리고 아이들도 부모를 향해 비교의 언어를 남발하게 된다. '00네 엄마는 00도 해주고 00도 사준데 잖아! 왜 엄마는 안 해줘~' 만약 가정 안에서 서로에게 이런 언어들만 주고받는다면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자녀와 훈육하고 대화할 때는 오로지 그 자녀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말해야 한다.
'누나는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치우는데 너는 언제 철들래?--> 00아! 밥 먹은 그릇을 치워야지'
'오빠는 이번에 또 일등 했어. 너는 언제 일등 하냐?--> 00가 열심히 하니까 저번보다 성적이 올랐어.'
'동생은 얌전하게 잘 앉아 있는데 너 왜 이렇게 난리야!"--> 00아 앉아. 공공장소에서 혼자 돌아다니면 안 돼'
세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비교하지 않고 말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나 또한 알고 있다. 세 아이의 외모나 기질, 장점과 단점이 너무나 눈에 잘 보였기 때문이다. 부모는 어쩔 수 없이 아이의 장점보다는 단점이 잘 보인다. 그러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비교의 말이 튀어나갈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어린 시절 내가 받았던 비교와 차별의 억울함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1970년대 여자로 태어난 것도 이 모양 이 꼴로 생긴 것도 성격도 내가 원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할머니와 부모의 비교와 차별의 언어에 억눌린 나는 스스로 바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나는 바보도 아니였고 나에게도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발견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들은 늘 내가 못하는 것이나 부족한 점을 지적했을 뿐이다. 그래야 더 나은 사람이 될 것이라 믿으셨다. 하지만 이런 비교와 차별로 내 마음에 남은 것은 열등감, 수치심, 분노뿐이었다. 마음껏 성장하고 꿈을 펼칠 20대를 깨어진 자아상과 마음의 구멍을 채우느라 오랜 시간을 방황했다. 나의 아이들에겐 그런 방황의 시간을 만들어 주고 싶지 않아 말을 하기 전 항상 머릿속으로 한 두 번씩 비교하거나 차별하는 언어를 쓰지 않는지 확인했다. 그렇게 내 입술로 나가는 말이 아이들의 마음에 비수가 되지 않도록 노력했다.
형제가 있든 없든 아이는 세상에 유일한 존재로 바라봐 주어야 한다. 아이들은 각자 전혀 다른 종자이고 씨앗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야 건강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비교는 아이들에게 아무런 동기부여나 자극이 되지 않는다. 아이들의 위하는 마음에서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한 말이라도 방법이 더 중요할 때도 있다. 관계에서의 진심은 언제나 적절한 모양과 태도를 갖추었을 때 효과가 있다. 그러니 부모라면 비교하지 않고 아이들과 대화하고 나의 진심을 전달하는 법을 반드시 배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