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추억으로 저장된다
주말에 2시간 반을 달려 새크라멘토에 사시는 형님네로 갔다. 집을 팔기로 하고 필요한 짐은 RV로 옮기고 쓸데없는 물건은 버리고 여행 후에도 필요한 물건은 장기 렌탈을 해 주는 창고에 보관하기로 했다. 창고는 만약을 대비해 남편 누님집 근처로 결정했고 주말에 짐을 싸들고 새크라멘토로 향했다. 짐을 옮기는 이유도 있었지만 새크라멘토 근처에 남편의 친구들도 살고 있다. 거의 30여 년 전 함께 교회를 다녔던 청년부 친구들이다. 우리의 긴 여행을 앞두고 겸사겸사 뭉치기로 한 것이다.
20대 초중반에 만났던 청년들은 세월이 흘러 이제 초중고, 심지어 대학생 부모가 되었다. 모두들 염색을 해야 좀 젊어 보인다며 흰머리를 걱정하는 40대 후반에서 50대 중반을 달려가는 진짜 중늙은이가 된 것이다. 30여 년 전 날렵했던 청년들은 모두 후덕한 중년이 되었다: 서로의 뱃살을 찔러가며 ‘살 좀 빼라’’너나 빼라 ‘ 며 타박을 주고 서로 오십견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간증(?)을 하며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이렇게 함께 모이면 어김없이 서로의 흑역사 혹은 잊지 못할 명장면들이 다시 등장한다.
‘너 그때 나 아니었으면 지금 천국에 가있어’
‘형이 내 튜브 가지고 도망가는 바람에 나도 죽을 뻔했잖아 ‘
‘잠수하러 간 사람이 절벽을 타고 올라가는 거야~‘
‘그때 먹었던 미역라면이 진짜 맛있었어’
그렇게 함께 공유하고 있는 기억을 파헤치며 다시 배꼽을 잡고 웃는다. (주로 남편의 흑역사 혹은 죽다 살아난 이야기가 메인이긴 했다.) 만날 때마다 똑같은 레퍼토리인데 매번 다시 그때로 돌아간 것 같이 흥분되고 즐거운 것이 추억의 힘이다. 이렇게 웃으며 누군가와 함께 나눌 수 있는 추억이 많은 사람이 행복할 수밖에 없다. 행복했던 기억, 즐거웠던 기억, 사랑받은 기억으로 사람은 힘든 시간을 이겨내고 회복한다. 때문에 기억과 추억은 힘이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힘이 세다.
잊고 싶지만 잘 잊히지 않는 것 또한 기억 때문이다. 기억하고 싶은 과거는 추억이 되지만 잊고 싶지만 잊히지 않는 기억을 우린 트라우마라고 한다. 트라우마와 같은 기억은 단순히 시각적으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그날의 냄새, 소리, 분위기, 촉각등 모든 감각으로 각인되기에 때로는 몸이 먼저 반응하기도 한다.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이유도 없이 불안하고 불편해지고 초초해지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사람은 자신의 트라우마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특정 장소, 사람, 환경 등을 피하게 된다. 반대로 좋았던 기억 때문에 다시 그곳을 찾아가기도 하고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것이다. 즉 기억은 인간의 감정과 행동을 결정하고 선택하는데 큰 영향을 준다.
마음의 회복이나 관계의 회복을 위해 중요한 것은 간직하고픈 소중한 기억을 되도록 많이 모으는 것이다. 그런 기억이 우리를 다시 미소 짓게 만들고 다시 살아갈 힘과 미래에 희망과 소망을 준다. 더 나아가 잊고 싶은 트라우마도 좋은 기억 행복했던 기억으로 다시 대체될 때 회복되기 시작한다.
가까운 관계에서도 이런 추억이 너무 적어서 서로가 서먹해지는 경우가 많다. 공유한 기억이 별로 없어서 서로 미워하고 싸우진 않아도 친밀하다 느끼지 못한다. 사랑하지만 바쁘다는 이유로 혹은 관심사가 너무 달라서 추억을 만들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서로 간에 대화거리나 공통관심사가 너무 없게 되고 함께 있으면 어색해 진다. 관계를 만들어 갈때 가장 중요한 것이 서로를 알아가는 것인데 시간을 함께 보내지 않고 서로를 알아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사랑하는 자녀, 배우자, 부모, 친구를 위해서 함께 추억할만한 행복한 기억을 많이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을 위해서 일부러 우린 시간을 내어야 하고 관심을 보여야 한다. 이 모든 것이 바쁜 사회에서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원래 어렵고 힘든 것이 진짜 사랑이다. 시간을 들이고 관심을 보여야 하는 책임 있는 행동이 진짜 사랑인 것이다. 때문에 사랑한다는 입발린 소리는 아무 능력이 없다.
좋은 기억과 추억을 만들기 위해 해외여행을 가거나 값비싼 물건을 사고 고급 레스토랑에 가서 고급요리를 먹어야 할 필요는 없다. 무엇을 하던 함께 웃고, 울고, 함께 실수하고 그 실수를 덮어주고 때로는 함께 응원하던 모든 순간들이 시간이 지나면 추억이 된다. 이런 실체도 없는 추억이 사랑하는 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이 되기도 하고 넘어진 우리를 일으키는 힘이 될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