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이를 심심하게 만들어라!

창의적이고 주도적인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by 원정미

'엄마 심심해'

'아빠 놀아줘'

'나 심심해서 전화기 볼래'


아이들이 말문이 터지고 곧 대화다운 대화가 시작되면 자주 듣는 말이 '심심하다. 놀아달라.‘이다. 그 말을 들으면 착한 부모들은 아이들을 절대로 심심하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만 1-3살 정도는 물론 많은 시간 함께 놀아주어야 할 때이다.) 때문에 해야 할 일도 많고 바쁜 부모들은 할 수 없이 TV를 틀어주거나 스마트 폰을 쥐어주기도 하고 간식으로 아이들을 달래기도 한다. 심심한 아이들은 부모를 귀찮게 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이가 만 5-6세가 넘어갔는데도 이렇게 무한정으로 부모가 아이들에게 즐거움과 재미를 제공해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 이유는 첫 번째로 아이들의 인내심이 자라지 못한다. 인간의 성장에 있어서 인내심이 무척 중요하다. 인내심이야 말로 지겨운 것, 하기 싫은 것, 심심함을 견디는 힘에서 시작된다. 인내심이 발달하지 못하면 무엇인가 힘든 일을 참는 것도 꾸준히 지속하는 것이 힘들어진다. 금방 포기하고 금방 싫증을 낸다.


인간이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즐겁고 재미있는 일보다 하기 싫은 일을 견디고 힘든 일을 버텨야 할 때가 훨씬 더 많다. 어려운 문제를 만날 때뿐만 아니라 배운다는 것 자체가 힘들지 않으면 성장하지 못한다. 따라서 학업이든, 운동이든 예체능이든 심지어 인간관계에서 조차 지겹고 힘든 시간이 있다. 인내심이 있어야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성취를 이룰 수 있고 이렇게 크고 작은 분야에서 성취감을 자주 경험한 아이들이 자존감이 높을 수밖에 없다. 즉 인내심이야 말로 자존감을 이루는데 원재료에 가깝다. 따라서 즉각적인 만족과 재미로 아이를 항상 즐겁게만 해주는 부모는 궁극적으로 아이의 자존감 발달에 좋은 영향을 줄 수가 없다.


두 번째 타인으로 부터만 행복감을 느낀다면 불평과 불만이 많은 아이로 자랄 수 있다. 아이가 심심할 때마다 엄마 아빠가 아이를 즐겁게 해 주고 재미있게 해 주면, 그렇지 않을 때 부모를 원망하기 십상이다. 아이는 누군가 항상 자신을 재미있고 행복하게 해 주어야 한다고 믿게 되는 것이다. 착하고 순한 부모사이에서 지나치게 폭력적이거나 이기적인 문제행동을 보이는 아이들 중 이런 케이스가 종종 있다. 부모는 아이를 사랑하고 행복하게 해 주고픈 좋은 마음이었지만, 오히려 오만하고 이기적인 아이로 키워버리게 된 것이다.


이런 아이들은 집에서 문제뿐만 아니라 학교에 들어가서 공동체 생활을 할 때 어려움이 생긴다. 학교나 학원같은 공동체에선 그 누구도 자신의 비위를 맞춰주지 않는다. 더 나아가 자신이 힘들거나 우울하고 슬플 때 그런 감정을 잘 다스리지 못하고 늘 남 탓을 하고 원망하게 된다. 항상 아이를 즐겁고 행복하게 해주어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자. 마음이 건강한 아이는 타인에게 자신의 행복을 의지하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다스릴 줄 아는 아이이다.


세 번째 지겨움과 심심함은 아이들이 자신을 탐구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아이가 만 5-6세가 넘어가기 시작하면서 자아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 시기부터 나는 누군인지 스스로 탐색해 보는 시간을 가지게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이 책을 좋아하는지, 운동을 좋아하는지, 그림을 좋아하는지, 노래를 좋아하는지, 모험을 좋아하는지 스스로 찾을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다. 아이들은 원래 놀이에 적합하게 태어났고 스스로를 발현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하지만 스마트 폰이나 TV처럼 즉각적이고 자극적인 재미에 노출이 되어 스스로 노는 법을 잊어버린 게 된다. 자신을 탐색하기 위해선 다양한 시도도 해보고 실패와 성공도 해보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 과정이 늘 항상 즐겁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스스로 노는 법, 스스로 몰입하는 법을 아는 아이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고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갈 수 있다. 이런 자기 이해는 궁극적으로 개인의 정신건강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스스로 자신이 물고기 인지, 고양이 인지, 원숭이 인지를 알아야 그에 맞는 환경과 길을 찾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에 대한 이해가 높을수록 자신에게 맞는 진로나 직업 그리고 나에게 맞는 배우자, 친구를 선택할 확률이 높다. 결국 자신의 선택에 따라 인생의 질이 달라지기에 자신에 대한 이해가 높은 사람이 더 만족스러운 삶을 살 확률이 높은 것이다.


따라서 아이들이 지겨울 때 아무것도 할 것이 없을 때 무엇을 하면서 자신을 즐겁게 하는지가 정말 중요하다. 이것을 위해서 어릴 때 아이들에게 여러 가지 활동과 놀이들을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아이에게 다양한 활동( 운동, 댄스, 수영, 노래, 그림, 레고, 책, 보드게임, 만들기, 쿠킹, 동물원 등등)을 해보면서 그 가운데서 자신이 좋아하는 활동을 찾아가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신이 좋아하는 걸 꾸준히 하다 보면 실력도 늘기에 거기에서 성취감을 느끼게 된다.


이런 이유로 나는 아이와 늘 언제나 함께 놀아 주지 않았다. 아이들이 심심해하고 지겨워할 때 오히려 그 시간을 자기 탐색의 기회로 주었다. 물론 함께 놀아 주지 않는다고 입이 튀어나올 때도 있지만 '너를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걸 한번 찾아봐. 혼자 노는 법도 알아야 해.'라고 말했다. 처음엔 그냥 소파에 널브러져 있거나 아예 낮잠을 자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 자 아이들마다 각자 다 다른 것을 선택했다. 결국을 스스로 생각하고 주도해서 무언가를 했다. 딸은 그림을 그리거나 쿠킹을 하는 등 만들기를 했고 아들은 레고를 가지고 놀거나 운동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을 스스로 채워 갔다. 이것이 궁극적으론 창의성과 주도적 사고의 기초가 되기도 한다.


그런 아이들의 놀이 선택을 오래도록 관찰하다 보면 아이들 성향이나 장점도 자연스레 드러난다. 어떤 아이들은 자유시간에 책을 읽고 어떤 아이들은 음악을 듣거나 악기를 연습하기도 하고 어떤 아이들은 그림을 그리거나 밖에서 자전거를 타거나 농구를 하기도 한다. 이런 반복적이고 일관된 선택이 아이들의 기질이고 성향이다. 이런 부분을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아이의 재능이 되는 것이다.


스마트 폰도 없고 장난감도 지금처럼 다양하지 않고 낮에는 TV도 나오지 않던 1980년대에 자란 세대들에겐 자유시간이 넘쳤다. 많은 아이들이 동네 골목에서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나오는 온갖 종류의 게임을 하고 놀기도 했고 그마저도 하지 못하는 날엔 집에서 알아서 놀았다. 그 당시엔 장난감이나 보드게임도 흔치 않았고 부모님들을 늘 바쁘기만 했다.


우리 집도 부모님께서 우리와 함께 놀아주셨던 기억은 거의 없다. 오빠와 나는 알아서 놀았다. 오빠는 책을 쌓아놓고 읽고 비디오 방에서 닥치는 대로 영화 빌려다 보는 게 전부였고 나는 그림 그리고 오리고 붙이고 그걸로 동네 아이들과 그걸로 인형놀이 하는 것이 주였다. 부모님은 그 시간에 공부는 안 하고 쓸데없는 짓한다고 혼나기도 했지만 사실 그것이 우리의 재능이고 성향이었다.


결국 오빠는 지금 시나리오작가 겸 동화작가가 되었고 나는 미술을 전공해서 미술치료사에 작가가 되었으니 말이다. 공부 빼고는 아무것도 재능이라 인정받기 못했던 시절이라, 부모님에게 혼나지 않으려고 숨어가며 몰래몰래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이 우리의 재능이었고 장점이었는데 그것을 보지 못한 점이 무척 아쉽다. 부모님께서 그것을 인정해 주고 격려해 주셨다면 '나는 000 걸 잘하는 아이야'라는 자신감과 긍정적인 자아상이 생기지 않았을까 싶다.


자녀들을 하루 종일 방치하고 관심을 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면, 부모가 아이들을 심심하게 만드는 것에 너무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심심하고 지겨움을 견디는 과정은 살면서 중요한 사회화의 과정이고 궁극적으로는 자존감 높고 사회성이 좋은 아이로 자란다. 더 나아가 스스로 자신을 즐겁게 하고 몰입하게 할 수 있는 활동을 아는 아이는 자신을 잘 이해하고 창의적인 아이가 된다. 이런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어른이 되는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추억은 힘이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