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은 아직 어려서 잘 몰라요."
"애들이 아무말도 안하는데요뭐."
요즘 부부갈등을 주제로 한 방송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이혼직전의 부부들을 관찰하고 그들에게 다양한 상담과 치료를 통해 회복시키고자 하는 방송들이다. 그리고 갈등이 극에 달한 부부들은 자녀들이 있던 없던 개의치 않고 싸운다. 심지어 제대로 말도 하지 못하고 걷지도 못하는 유아가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격렬하게 싸운다. 아직은 아이가 어려서 괜찮을 것이라 믿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부모들의 큰 착각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생존에 특화되어 있다. 따라서 생존을 위협하는 자극은 기억에 오래 각인시킨다. 그래야 다음에 비슷한 상황에서 나를 보호하고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시끄럽거나 냉랭하고 무섭고 불안정한 가정환경은 아이 생존본능을 극대화 시킬 수 밖에 없다. 자주 노출 되면 될 수록 아이들은 부모의 작은 표정변화, 말투, 집안 분위기에 예민한 아이로 자라게 된다. 아이라서 잘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아이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이 기억되고 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가족이지만 타인입니다'에서 나의 회복과 치유과정을 이야기 하기 위해 내 안에 오래도록 저장되어 있던 상처받았던 어린시절을 끄집어 내야만 했다. 대부분 나의 기억에 무척 생생히 남이 있는 것들이었고 그 책을 읽은 아버지는 충격을 받으셨다. 내가 그런것까지 기억하고 있으리라 생각지 못하신 것이다. 자신이 무심코 하던 행동들과 언어, 그때 집안의 분위기까지 생생히 묘사되어 있는 책에, 자신이 숨기고 싶었던 치부가 딸로 인해 세상에 까발려지게 되신 것으로 인해 무척 당황해 하시고 부끄러워 하셨다.
아이는 대부분 알고 있다. 부모가 아무리 숨기고 싶더라고 엄마아빠가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 엄마가 공부잘하는 형만 좋아하는 차별의식, 아빠는 우리랑 노는 것보다 돈이나 친구를 더 좋아하는 것, 부모가 되는 것보다 세상에서 성공하고 커리어를 쌓고 싶어하는 것등등, 부모가 숨기고 싶었던 속내를 아이들 대부분은 알게된다. 왜냐하면 소통과 관계맺음은 단순히 언어로만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라 눈빛으로, 행동으로 태도로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어려서 아이들이 모를 것이라고 스스로 속이지 말자. 아이가 어리니까 그냥 모르고 넘어갔으면 하는 부모들의 바람일 뿐이다. 말을 못하기 때문에 어리기 때문에 그 때의 분위기와 감정은 아이의 머리에 마음에 차곡차곡 쌓인다. 부정하고 회피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다음부터 조심하겠다는 다짐하고 다음엔 조심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훨씬 더 어른스러운 부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