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로봇 엄마였다.

와일드 로봇을 보고

by 원정미

며칠 전 넷플릭스에 올라온 와일드 로봇이란 애니메이션을 막내와 함께 시청을 했다. 서로 다른 생명체가 우여곡절 끝에 가족처럼 서로를 지켜주는 것이 이야기의 축이였지만 영화는 다른 부분에서 내게 깊은 여운을 남겼다.


무인도 외딴섬에 불시착한 로봇, 로즈는 누군가를 도와주는 것으로 프로그램되어 있다. 하지만 주변에는 소통이 되지 않는 야생동물들 뿐이다. 그들은 로즈의 도움 없이도 야생에서 각자 알아서 잘 살아가고 있다. 오히려 로즈의 존재가 그들의 생태계에 혼란을 줄 뿐이다. 그러다 우연한 사고로 새집을 덮치게 되고 그곳에서 홀로 생존한 새끼새, 브라이트빌을 만나게 된다.


로즈는 프로그램되어 있는 데로 자신의 모든 데이터를 동원하여 브라이트빌이 생존하고 수영하고 날게 하는 법을 가르치고자 한다. 그것이 자신의 임무라 여기고 최선을 다해 가르친다. 때로 로즈가 가진 데이터는 브라이트빌에게 항상 좋은 것이 아닐 때도 있었고 잘못된 방법이기도 했다. 때문에 브라이트빌은 다른 새들과는 다르게 수영을 하고 다르게 나는 법을 배운다. 아마 어미새에게 배웠다면 오히려 훨씬 더 쉬웠을지 모른다. 하지만 로즈는 최선을 다해 브라이트빌이 무리에 합류에서 날아가는 것을 돕는다.


그런 로즈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첫 아이를 키울 때 어쩔 주 몰라하던 나의 모습이 기억났다. '아동학과를 나왔으니 아이는 잘 키울 수 있을 거야'라는 자만심이 깨지는 데는 채 이년도 걸리지 않았다. 먹이고 재우고 입히는 건 어찌어찌했는데 아이가 성장하면서 아이에게 칭찬하는 법, 때리지 않고 훈육하는 법, 협박하고 화내지 않고 대화하는 법, 서로의 갈등을 해결하고 화해하는 법, 서로의 마음을 표현하는 법 등 모든 것들을 몰랐다. 먹이고 입히는 것보다 이런 것들이 훨씬 더 어렵고 힘들었다. 머릿속의 이론이 실천이 되기까지는 무수한 시행착오와 실패가 따랐다.


나는 배워보지도 알지도 못하는 것을 가르쳐 준다는 것은 생각보다 막막하고 힘들었다. 주변에는 본받고 싶거나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정말 로즈처럼 붙들고 매달린 것이 책이고 유튜브 강의였다. 그것이 유일한 데이터였다. 가끔은 로즈처럼 분별력 없이 책에 나온 데로 따라 하다가 아이의 기질이나 발달단계를 고려하지 못해서 오히려 역효과가 된 것도 있었다. 아이에게 도움이 된다고 따라한 것이 후에는 아무 효과가 없는 것도 있었다. 세상에 나온 정보나 데이터가 우리 아이에게 모두 좋은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시간이 한참 지난 뒤 알았다.


어미새가 아닌 로즈에게 생존하는 법, 소통하는 법, 수영하는 법을 배운 브라이트빌은 로즈를 닮아갔다. 로즈처럼 딱딱하게 말했고 로즈처럼 걷고 반응했다. 브라이트빌이 로즈의 행동과 말투를 따라 하는 것처럼 아이들도 나의 행동과 말투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신기하면서 두려웠다. 궁극적으로 아이들은 말로 크는 것이 아니라 모방하며 큰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 궁극적으로 육아는 내가 변해야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양육은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렇게 살아내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와 화해하고, 나를 먼저 사랑하고, 내가 다정하고 긍정적인 언어를 쓰고 내가 먼저 감정조절을 해야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시간 동안 나도 아이도 로즈와 브라이트빌처럼 무수한 시행착오와 실패를 경험했다. 그 시행착오와 실패는 고통스러웠고 때로는 절망적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서 아이도 나도 성장했고 성숙해졌다.


이 영화는 마치 나에게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과 더 나아가 '너도 수고했어'라는 메시지를 주었다. 나같이 상처 많고 결핍이 많은 엄마보다 밝고 사랑이 많은 엄마에게 태어났더라면 우리 아이들 더 행복하고 더 잘 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의 짐이 항상 있었다. 아이들보다 내 상처와 결핍에 함몰되어 있던 적도 있었고 마음이 아닌 머리로 하는 어색한 칭찬과 애정표현도 많았다. 나에게 없는 것을 주기 위해 억지로 배우고 익혀야 했다. 완벽하지 않았지만 포기하지도 않았다. 그런 나를 다독여주는 듯했다.


로즈도 브라이트빌에게 완벽한 엄마는 될 수 없었다. 하지만 브라이트빌의 생존, 성장 그리고 독립을 위해 데이터를 모으고 방법을 익히고 수백 번 가르쳐주는 그것만으로도 로즈는 최고의 엄마였다. 아이들은 완벽한 엄마가 아니라 옆에서 부족하지만 나의 성장을 지켜보며 나를 끝까지 지켜주는 엄마를 사랑하게 되어 있다. 그랬기에 서로가 완벽하지 않아도 서로에게 너무나 소중한 존재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완벽한 부모, 완벽한 훈육과 교육이 훌륭한 아이를 만들어 낼 것이라는 신화에 갇혀있는 사회이다. 하지만 실상은 아이는 함께 시간을 보내고 함께 성장하고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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