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까지 험난하기 있기 없기
첫 번째 2박 3일의 캠핑카 여행을 나름 안전하게 마친 우린 근교의 캠핑장을 2-3번 더 찾아갔다. 아직은 너무 초보이고 서툴러 우리가 바라던 완벽한 캠핑카 여행은 되지 못했지만 그럭저럭 안전하게 다녀올 수 있었다. 3번 정도의 경험이면 웬만한 곳은 괜찮으리라 자만했었다. 처음으로 근교를 벗어난 2-3시간 떨어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바로 Russian River(러시안 리버)! 캘리포니아에서 오래 살았지만 가본 적이 없었다. 아마 그전에 가본 적이 있어다면 절대로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굽이굽이 언덕이 많은 협곡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말이다. 무식해서 용감했다. 그냥 우리 동네에서 북쪽에서 흐르는 아주 긴 강이고 사람들이 그곳에서 래프팅만 많이 한다는 말만 들었다. 조용한 산속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강가에 발 담그고 여유 있게 책읽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출발까지는 모든 것이 좋았다. 4번째쯤 되니 모든 것이 손발이 척척 맞는 듯했다. 많은 사람들이 RV여행은 힘들다고 하더니 '우린 역시 달라.‘라는 마음이 들었다. 이번엔 아름다운 풍경을 비디오에 잘 담아야지 하면서 달리는 차 안에서 여유롭게 영상도 찍었다. 그렇게 2시간 반쯤을 달려 캠핑장에 가까우니 달리는 도로 주변엔 온통 산뿐이었다. 이런 산에 캠핑장이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캠핑장출구 표지판 나타났다. 남편은 ' 어! 여기네.. 어떡하지? 못 세우겠는데. 일단 그냥 가자." 차도 없는 한적한 도로에서 속력을 내고 달리던 캠핑카를 갑자기 급정거를 할 수 없었던 남편은 다음 Exit를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 다음 EXIT 까지는 8마일(거의 13킬로)을 가야 했다. 왔다가 다시 돌아와야하니 16마일이었다. 도착까지 30분을 더 달려야 했다. 아이들은 2시간 반이상 드라이브에 이미 짜증이 나 있었다. 사실 이 정도의 실수는 나중의 일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이었다.
8마일쯤 달려 보이는 EXIT는 우리 차가 올라갈 수 없을 것 같은 작은 산길이었다. 남편은 구글지도를 확인하고 유턴할 곳이 있다며 빠졌다. 하지만 그곳은 개인사유지로 들어가는 곳이었다. 길이 없었다. 산속에 집 몇 채가 보이고 끝이었다. 구글맵이 항상 정확하지 않다는 것을 이때 배웠다. 그 좁은 오르막길을 따라 올라가는 것도 불안했는데 막상 길이 막혀있어서 너무 당황했다. 다행히 주택지 앞에 넓은 잔디밭이 있어서 겨우겨우 거기서 유턴을 하고 길을 내려왔다. 여기까지도 내 심장은 진정이 되지 않았다.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면 안 된다고 남편에게 당부하며 길을 빠져나왔다. 그 뒤에 무슨 일이 생길 줄도 모르고.
8마일을 다시 되돌아 달려서 도착한 캠핑장은 꼬불꼬불 산길이었다. RV가 못 들어갈 만한 곳은 아니지만 초짜인 우리에겐 거의 면허시험이나 다름이 없었다. 사무실에서 체크인을 하고 40피트의 큰 캠핑카가 들어갈 수 있는지도 재차 물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사무실에 앉아서 일하는 직원은 실상 각각의 사이트가 어떤 상태인지 모른다. 그냥 자신들의 매뉴얼에 적힌 대로 답할 뿐이었다. 그녀의 무심한 대답이 후에 얼마나 큰 불상사를 만들었는지 모른다.
직원의 말에 안심하고 캠핑장 지도를 가지고 우리 사이트를 찾으러 갔다. 산속에 자리한 캠핑장은 그야말로 오르막과 내리막의 연속이었다. 둘 다 캠핑장 지도에 익숙하지 않아 내가 지도를 살피느라 정신이 없던 찰나, 정신을 차려보니 자갈이 펼쳐져있는 강가 쪽으로 우린 들어와 있었다. 길을 또 잘못 들어온 것이다. 30분 전의 악몽이 그새 반복된 것이다. 설상가상 여긴 유턴을 할만한 장소가 없었다. 완전 S자 길을 트럭과 합쳐 15미터가 넘는 차를 후진으로 올라가야 했다. 거기다 길 옆으론 물이 내려가는 고랑이 있어서 트레일러 바퀴가 빠지면 정말 그땐 답이 없었다.
나는 트럭에서 내려 남편의 후진을 도와줘야했다.
“자기야 오른쪽으로 틀어야 해. 조금 더. 어 그만그만.”
“ 다시 왼쪽으로. 그대로 직진.”
트럭과 트레일러가 따로 놀기 일쑤였고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를 반복하며 애를 먹고 있었다.
그때 강가로 산책을 갔다가 올라오던 청년과 어머니가 우리를 보더니 'Can I help you? 내가 좀 도와줄까'라고 말을 걸었다. 자신은 소방차운전이 전문인 소방관이라면서. 이런 우연이! Thank you God! 소리가 절로 나왔다. 참고로 미국의 소방차는 관광버스만큼 크다. 그는 조심스럽게 차를 후진해서 올려주고 유유히 사라졌다. 올라오고 보니 그 길로 들어가는 입구에 “ “NO RV’s”라고 대문짝만 하게 쓰여있었다. 남편은 그때 귀신이 쓰였는지 그걸 보고도 우리 캠핑카와 다른 종류의 RV라고 생각이 들었다 했다. 마치 일이 꼬이려고 작정한 날인듯싶었다.
그렇게 고군분투하는 동안 캠핑장에 있던 사람들의 관심을 한껏 받았다. 원래 타인의 관심이나 집중을 정말 싫어하는 나이지만 너무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면 부끄러움 따위는 사라지는 것 같다. 남의 이목이 어떻든 상관없이 차가 무사히 나온 것이 기쁘기만 했다. 그러고 나서 정신을 차리고 더 이상 주변인들의 이목을 끄는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했다.
한고비를 넘긴 우리는 사이트를 향했다. 그러나 우리가 지정받은 사이트는 우리가 생각한 것이라 너무 달랐다. 생각보다 사이트가 좁고 중간중간 나무도 있고 캠핑장이 평평한 평지가 아니어서 남편이 후진으로 차를 주차하기가 힘들었다. (캠핑카 사이트는 직진으로 주차할지 백업을 할지로 나뉘어 있다. 보통 우리처럼 큰 캠핑카는 직진주차를 선호하는데 뭘 잘 몰랐던 우린 그냥 백업사이트를 고른 것이다.) 남편은 30분 동안 흙둔턱을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했다. 그러는 동안 캠핑카와 트럭은 주변의 나뭇가지에 수도 없이 긇히고 있었다.
또 주변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도무지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미국할아버지가 와서 "오른쪽으로 핸들을 끝까지 돌려라. 다시 후진해라"등등 훈수를 두었지만 벌써 멘붕상태상태가 된 남편은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이대로는 안될 것 같아 나는 사무실로 다시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했고 직원은 직진으로 주차할 수 있는 다른 큰 사이트를 내어주었다. '이런 게 있으면서 우리에게 안 주다니. 처음부터 이곳으로 줬으면 이 고생을 안 했을 거 아니냐?'며 직원을 한참 씹었다.
평지로 내려온 캠핑카는 평온하고 안전하게 주차를 했다. 아이들과 남편과 나 안도하며 그 난리통에도 모두들 다치지 않고 잘 도착했다고 다독였다. 두시간 반이면 도착할 거리를 7시간이 지나서 자리를 잡았다. 아이들은 그 난리통에 캠핑이고 뭐고 그냥 집에 돌아가기를 바랬다. 아이들도 우리 부부도 점심도 못 먹고 너무 긴장하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기에 부랴부랴 저녁준비를 해야 했다. 이제 힘든 것도 다 끝났고 여기서 더 이상 일어날 나쁜 일은 없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런데 남편이 캠핑카를 정차하고 문을 여는 순간 " 자기야! 이게 뭐야~ 이거 다 깨져서 난리가 났어. 아이 참"이라고 소리를 질렀다. 부엌옆에 세워둔 양념통박스가 그 난리통에 흔들리면서 발사빅 식초병이 튀어나와서 깨진 것이다. 아마도 언덕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생긴 일 같았다. 마치 살인사건의 현장처럼 붉은빛 식초가 혈흔처럼 온 사방에 여기저기 퍼져있었다. “ 알았어. 내가 치울게. 당신은 당신 할 일해. “라고 말하고 깨진 유리병과 식초를 치우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하루 만에 마치 누군가 작적하고 골탕을 먹이려는 듯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 같았다. 거기다 앞으로의 여행이 계속 이모양이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도 생겼다. 솔직히 매일매일 이런다면 나는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날 처음으로 캠핑카 여행을 가기로 한 것이 너무 무모하고 섣부른 선택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불안이 높은 나는 이런 예측 불가능하고 위험한 상황을 잘 견디는 사람이 아니다. 남편의 꿈을 이루어 주겠다고 큰 소리를 첬지만 캠핑카 여행이 생각보다 훨씬 위험하고 힘들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들었다. 그렇다면 과연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싶었다. 깨진 그릇과 잔여물들을 치우고 가족들과 대충 후루룩 라면을 먹고 온 근육이 긴장하고 예민해진 몸을 쓰러지듯 침대에 뉘었다. ‘ 과연 이 여행이 가능할 것인가? 이 선택이 잘한 짓인가? “ 하는 질문이 내 머리를 가득 채웠다. 그때 머릿속에 ’ 적응장애’(adjustment disorder)라는 단어가 떠 올랐다.
정신과적 진단에 적응장애라는 것이 있다. 개인의 삶에 급격한 변화 즉 가족의 죽음, 이혼이나 결혼, 출산, 이민 등 같은 일이 생길 때 나타나는 정신적 어려움이다. 코로나가 시작하고 코로나로 인한 불안이나 우울증을 코로나 블루라고 부른 것과 비슷하다. 보통은 6개월 전후로 정상적인 삶을 되찾는 경우가 흔하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니까. 그때 마음속으로 ‘그래 나도 이 새로운 삶을 처음 경험해 보는 거니까. 아직 6개월도 되지 않았는데 뭐. 일단 6개월은 참아보자‘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다행히 그 후로 이 여행처럼 당혹스럽고 무섭고 살 떨리는 일들은 많이 일어나지 않았다. 러시안 리버 여행 덕분에 떠나기 전 지도도 훨씬 더 꼼꼼히 확인하고 웬만하면 깊은 산속에 있는 캠핑장은 피하기로 했다. 남편과 함께 운전하는 동안은 나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길을 살폈다. 물론 자질구래한 사건사고는 그 후에도 끊이지 않았지만 우린 늘 ‘러시안 리버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말할 수 있는 대담함이 생겼다. 마치 독한 예방 주사를 맞은 것처럼 첫 장기여행은 따끔하고 욱신거렸지만 우리 가족을 더 단단하고 용감하게 만들어준 것은 확실했다. 때문에 때론 고난과 고생은 그 당시엔 힘들고 괴롭지만, 그 시간을 잘 견디면 개인을 더 성장하고 성숙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