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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된다고? 오케이 다음!

카스테라라도 먹어야지

by 원정미


여행을 시작하기 전엔 캠핑카에 문제가 생길까 운전 중 사고가 날까 남편과 아이들과 24시간 함께 있으면서 자주 싸우진 않을까 그런 걱정만 했다. 이런 걱정이 현실이 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여행을 하면서 자주 만나는 문제는 생각보다 안 되는 것이 너무 많았다. 예측하지 못했던 상황이 자주 발생했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니 우리의 여행은 여행사에서 주체하는 깃발꽃아 가는 단체 관광이 아니었다. 가는 곳, 자는 곳, 먹는 곳 전부 우리가 알아서 해야 했다. 전문 가이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남편도 나도 주도면밀하게 언제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 꼼꼼히 확인하는 사람들도 아니었다. 그냥 큰 그림만 그리고 거기 가서 대충 결정하는 즉흥형 스타일이다. 그러다 보니 초반의 여행은 주로 십 년 전 이십 년 전에 가본 곳 혹은 그 근처로 가게 되기가 십상이었다.(후반으로 갈수록 처음 가는 곳이라 좀더 많은 공부와 준비를 하긴했다.) 그때 좋은 기억이 있었던 곳으로 이번에 둘째와 막내가 함께 가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전날 저녁이나 아침에 급하게 결정하고 떠나는 P형 (즉흥형)의 여행은 난관에 부딪히기 일쑤였다. 게다가 우리가 기억하는 데이터가 오래되고 업데이트가 전혀 되지 않았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십여 년 전에 가본 Pismo beach는 더욱더 유명해져서 주차를 할 공간이 전혀 없었다. 차로 꽉 찬 도로가 안 그래도 큰 트럭이 움직이는 것조차 위험천만했다. 처음엔 '아이 뭐야~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못 가보네.'라며 실망했다. 특별히 아이들이 가고 싶어 하는 곳에 못 가게 되면 불평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런 일들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떤 곳은 임시휴업을 하기도 하고 공사를 하기도 했고 한창 잘 나가던 쇼핑몰은 십여 년 전의 명성을 잃고 죽어 있는 경우도 있었다. 여행시작 2달만에 미정부 셧다운으로 모든 국립공원은 휴무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번번이 실망만 하고 돌아 나와야 했다. 여행을 하기로 한 삶인데 정작 가고자 한 곳은 가지 못하는 웃픈 상황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남편과 나의 장점은 이런 상황에 굴하지 않고 다른 대안을 찾아보는 편이다. 원래 가려고 했던 곳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걸 알면 나는 옆에서 그 근처에 갈 만한 곳을 또 바로 찾았다. 급하게 인터넷을 뒤지고 나서 " 여기에 큰 놀이터가 있데, 아니면 여기 조금만 더 가면 다른 해변가도 있나 봐. 아니면 한 30분만 더 가면 등대가 있데."이렇게 의견을 주고 대충 아이들과 합의가 되면 핸들을 돌렸다. 물론 처음에 아이들은 이런 상황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특별히 막내는 가는 내내 혹은 가서도 놀지도 않고 뚱하게 있곤 했다.


그럴 때면 나는 늘 "카스테라라도 먹어야지."라곤 말하고 했다. 진짜 카스테라 빵을 먹는 것이 아니라 비유를 그렇게 한 것이다. 이 카스테라 이야기는 사실 개그맨 신동엽씨에게서 온 것이다. 신동엽 씨가 어릴 때 다른 친구들은 유치원에 가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는데 가정형편이 되지 않아서 유치원을 가지 못했다고 한다. 자신도 유치원에 보내달라고 조르자 어머니는 아들에게 "동엽아! 카스테라 사줄까?" 하셨다. 그때 한 달의 한번 아버지 월급날에만 사주시던 귀한 카스테라를 사준다는 말에 그는 그 어린 나이에 깨달았다고 했다. 카스테라라도 먹어야 한다는 것을. 유치원에 가지 못한다고 울고불고해 봐야 카스테라도 못 얻어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은 카스테라를 먹었다고 했다.


어린 나이에 엄청난 것을 깨달은 것이다. 거절이나 거부, 실패 같은 일은 실망감과 좌절감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이 불편한 감정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삶의 질을 결정한다. 우린 때론 내가 가지지 못한 것, 잃어버린 것, 성취하지 못한 것에 너무 실망하고 있느라 정작 가지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할 때가 많다. 내가 1순위로 바란 것은 아니어도 우리에겐 여전히 2순위, 3순위가 있다는 것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카스테라처럼 말이다.


Pismo Beach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아름다운 바다가 눈앞에 펼쳐지는 공원에서 나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BigSur에서 유명 해변가는 가지 못했지만, 우리도 몰랐던 아름다운 장소, Calla Lily Valley를 발견하기도 했다. 여행을 하면서 느낀 건 항상 계획한 대로 예측한 대로 인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알려주었다. 그러면 다른 차선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배우는 과정이었다. 그것을 빨리 깨닫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이 진리를 배우는 게 해주는 것이 여행이 아닐까 싶었다.


캠핑카에서 보낸 지 3주쯤 지나고 원래 샌디에고(San Diego)에 있는 시월드(Sea World)를 가기로 한 아침, 냉장고가 고장 나 버렸다. 냉동고에 들어 있던 음식들은 다 녹아있었고 냉장은 이미 차가운 기운을 잃어버렸다. 부랴부랴 남편과 나는 아침에 냉장고를 비우고 남편은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 고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엄마아빠의 분주한 모습에 아이들도 오늘 시월드를 못 갈 수도 있다는 것을 직감한 듯싶었다. 나는 실망한 아이들을 또 어떻게 달래나 속으로 걱정하던 찰나 막내딸이 " 오빠! 우리 시월드 못 갈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럼 우리 오늘 여기서 뭐 할래? 수영할까? 아님 포케볼치러갈래?"라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막내딸은 벌써 카스테라라도 찾아 먹어야 한다는 것을 배운 것이다. 아마도 이 여행의 끝엔 우리 가족 모두는 작은 카스테라에도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것이 이 여행의 가장 큰 수확이 될 듯했다.


https://youtube.com/shorts/NrgdymPfLyk?si=2yEC9STZ70t-t5y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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