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쩜 달라도 이렇게 다르니
저녁 캠핑장에서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하다 보면 보라색, 주황색 때로는 분홍색 하늘을 만난다. "와 자기야 저기 하늘 색깔 봐, 너무 예쁘지?"라며 나는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길 위에서의 삶이 나에게 쉽지는 않았지만 가는 곳에 따라 달라지는 아름다운 저녁노을이나 풍경은 나의 눈을 너무 즐겁게 했다. 내가 발견한 나만의 작은 소확행이다. 하지만 남편은 "와~ 여기 길이 너무 좋은데, 여기서 자전거 타면 너무 재미있겠다."라며 딴소리를 한다.
한 공간에 있어도 누군가는 하늘 색깔에 감탄하며 그림그릴 생각만 하고, 누군가는 놀 생각만 했다. 우리의 여행은 매 순간 이렇게 동상이몽이었다. 남편과 나, 둘만의 동상이몽이면 둘이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합의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에겐 2명의 복병이 더 있었다.
개인적으로 여행을 하면서 나의 작은 소망은 미국에 있는 유명한 미술관을 아이들과 함께 가는 것이었다. 아주 어릴 때 미술관을 데리고 가봐야 시끄럽게 떠들고 분잡스럽게만 하는 걸 첫째를 통해 경험하고 나서 둘째와 셋째를 미술관에 데리고 간 적이 없다. 아이들도 이제 어느 정도 컸으니 이젠 거기 가서 아이들에게 유명한 그림을 보여주면서 아이들이 몰랐던 지식을 뽐내보고 싶었다. 아이들이 나를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볼 때 "엄마 미대 나온 여자야~"라고 말하는 상상을 하곤 했다. 그런 부푼 마음을 앉고 갔던 미술관, Getty Museum에서 나의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엄마 그림이 너무 무서워~ 빨리 나가자. “
“ 아~왜 사람들이 다 벗고 있는 거야. 불편하게.”
아들과 딸은 풍경화 몇 점을 빼고는 보는 것마다 불평이었다. 조용히 그림을 감상하지도 못했고 더더욱 관심 없는 아이들의 관심을 끌만한 말재주도 나에겐 없었다. 할 수 없이 아이들은 미술관 야외카페에 스마트폰 하나씩 줘어 주고 남편과 둘이서 나머지 관람을 했다. 다행히 여긴 입장료를 내지 않아 괜찮았지만 입장료를 까지 내고 들어왔다면 복장이 터질 일이다. 이런 좋은 기회를 알지도 못하는 철없는 아이라 인정을 해야 하는지 아니면 살살 꼬드겨서라도 같이 보는 게 맞는 건지 아동심리치료사이지만 답을 찾지 못했다. 다만 내가 원한 미술관 기행은 혼자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다.
이렇듯 우리 식구는 각각 기질도 관심사도 다르다. 나는 미술관에서 그림전시 관람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고 디즈니랜드에서도 가만히 앉아서 보는 쇼 같은 정적인 활동을 좋아한다. 하지만 막내딸을 가만히 앉아서 보는 것보다 수영, Rock climing, 자동차 레이스, 장애물 놀이 같이 직접 만지고 타고 움직이는 동적인 활동을 좋아한다. 호기심이 많아 여기저기 가보고 싶고 알고 싶어 하는 남편과 달리 친구들과 게임하고 축구경기 보는 것 말고는 모든 것이 시큰둥한 아들이었다. 이런 우리가 함께 여행을 다니니 갈 때마다 불협화음이 생겼다. 이 조율을 하는 것이 여행에서 가장 감정적으로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럴 수밖에 없다. 아무리 부부이고 자식이라도 나와는 전혀 다른 존재이다. 다만 집에서 살 땐 각자의 공간도 있고 각자 하는 일이 있었다. 생각보다 넷이 함께 있는 시간이 적었다. 덕분에 합의하고 조율할 일이 적을 뿐이다. 남편은 직장에서 아이들은 학교에서 본인들이 해야 하는 일을 하고 대부분 오후나 저녁이 돼서야 만난다. 집에 와서도 함께 저녁을 먹고 잠시 같이 있을 때 빼고는 각자 자신의 공간에서 지낸다. 이런 물리적 거리가 심리적 갈등을 줄여주는 큰 역할을 한다. 때문에 너무 갈등이 많은 관계인 경우 이런 물리적 거리를 강력히 추천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린 좁은 캠핑카 안에서 살고 24시간 거의 함께 있으며 여행을 가기로 결정했다. 함께 오래 붙어있다 보니 장점보다는 단점이 훨씬 더 많이 보였다. 그러니 부딪히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평생을 이렇게 살아야 한다면 시작도 못했을 것이다. 그냥 우리는 1-2년만 이렇게 살아보기로 한 것이다. 모두에게 엄청난 도전이고 과제가 된 것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나 다른 취향과 성향을 가진 우리의 여행은 내가 바라고 상상한 여행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좋아하는 걸 아이들은 좋아하지 않고, 아이들이 하고 싶은 건 내가 별로였다. 그러다 보니 우린 늘 조율하고 합의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누군가를 위해 양보하고 기다려야 하는 순간이 많았고 그런 갈등과 힘듦을 스스로 다스려야 하는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수용하며 이해하는 순간이 오고 그런 과정이 반복되었다. 그 과정이 즐겁지는 않지만 우리 넷은 분명 전보다는 훨씬 포용력이 넓어진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되어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 성장을 이 여행의 끝에 기대해 본다.
https://youtube.com/shorts/9oYLQwohzQM?s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