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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 고생, 누가 시켜서 하나

내가 좋아서 하지

by 원정미

캠핑카에서 살기 시작하면 처음에 가장 달라진 점은 바로 샤워였다. 예전엔 집에서 아무 데나 내가 하고 싶을 때 들어가서 할 수 있었다면 캠핑카를 타고 다니면서는 주로 공용 샤워장을 이용했다. 지금은 캠핑카 안에 있는 샤워실을 이용하지만 처음엔 지냈던 캠핑장에선 물이 차면 오수통을 가져다 비워야 하는 곳에 지내는 바람에 샤워는 자제했다. 공용 샤워장을 이용하다 보니 옛날 어릴 적 들고 다니던 목욕탕 같은 바구니를 하나 장만했다. 바구니 안에 필요한 샴푸와 린스, 비누등을 넣어서 가지고 다녔다.


나는 위생에 대한 기준이 그다지 까다롭지 않기에 타인과 함께 쓰는 공용샤워장을 쓰는 것이 그리 불편하진 않다. 그런 면에서 여행에 잘 맞는 성향이기도 한 것 같다. 마치 어린 시절 공중목욕탕을 이용하던 느낌이다. 다만 샤워를 깨끗이 하고 슬리퍼를 신고 다시 캠핑카로 돌아가는 흙길을 걷다 보면 흙먼지가 다시 슬리퍼 안으로 들어올 때가 많

았다. 그럴 때 "아이~ 발을 다시 닦아야겠네." 하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돈이 없거나 집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공용샤워장과 화장실을 이용해야 하는 형편이라면 어떨까? 아마도 그런 상황이면 자신만의 공간에서 혼자 쓰는 샤워실을 갖는 게 꿈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내가 공용샤워장과 화장실을 쓴다고 내 처지가 서글프거나 불쌍하지 않다. 내가 이렇게 살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즉 고생을 하기로 작정을 했으니까

공용 샤워장. 이 정도면 무척 깨끗한 편

.이렇듯 사람에겐 개인의 주도성이 무척 중요하다. 내가 원해서 각오를 하고 하는 고생은 덜 힘들다. 어느 정도 예상을 했고 자신이 스스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억지로 끌려다니는 인생은 아무리 좋은 걸 해도 즐겁지 않을 수 있다. 정작 자신이 원하던 게 아닐 수 있고 자신의 예상과는 전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나중엔 그렇게 나를 끌고 간 사람을 원망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같은 상황에서 누군가는 감사하고 기뻐하는 삶을 살고 누군가는 불평하고 힘들어하는 것이다.


인생은 절대로 우리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게 대버려두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하기 싫은 상황, 원치 않는 일, 피하고 싶은 상황을 만나게 된다. 미성숙한 부모일 때도 있고, 가정의 어려운 경제력일 수도 있고 원치 않은 직업일 수도 있다. 심지어 내가 선택한 배우자, 혹은 내가 낳은 자녀도 내가 원하는 모습이 되지 않을 때가 훨씬 더 많다. 그럴 때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니 원망하고 불평한다면 인생의 대부분을 그런 감정으로 채우고 살아야 한다. 그런 게 바로 불행이 아닐까 싶다.


인생의 주도성을 회복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내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내가 바꿀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명확히 알아야 한다. 바꿀 수 없는 것은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바꿀 수 있는 것에서 자신의 주도성을 발휘해야 한다. 그것이 삶의 주도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여행을 하기로 결정을 했다고 해서 갑자기 내가 에너지 넘치는 외향형으로 바뀌고 모험적이 되진 않는다. 또한 이 여행을 내가 원하는 대로만 끌고 갈 수도 없다. 나는 캠핑카를 끌고 갈 능력도 그 외 모든 것을 다 감당할 능력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감당하고 책임질 수 없는 것까지 내 맘대로 하려는 것은 오만이고 욕심일 뿐이다. 따라서 개인이 책임지고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은 생각보다 매우 적다.


여행을 가기로 결정한 후에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했다. 캠핑카 관련문제 그리고 재정적인 문제등은 남편의 소관이었다. 나는 옆에서 도와줄 뿐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수 없다. 그리고 어디에서 무엇을 할지 결정하는 것은 가족 모두의 의견을 반영해야 했다. 나 혼자 하는 여행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여행은 애초부터 불가능하지만 어느 정도 모두의 성향은 고려해서 결정해야 한다. 여행을 가기로 한 이상 실상은 내가 누리던 것을 많이 포기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모든 것을 희생하고 양보하는 여행만 된다면 나를 죽이는 여행이 될 것이다. 이런 전적인 희생은 절대로 건강한 관계를 만들지 못하고 좋은 결과를 낼 수 없다. 때문에 나는 이 여행을 통해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나를 위해서 가족들을 위해서 맛있는 요리를 할 수 있고, 책도 읽고 글도 쓸 수 있다. 나중에 좋은 추억으로 남을 영상과 사진도 열심히 만들고 있다. 여행이 좀 적응이 된다면 그림도 그릴 생각이다. 분명히 이 안에서도 내가 할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작은 기쁨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잘 찾아내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의 주도성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삶은 궁극적으로 내가 선택한 것들도 이루어진다. 그러니 두 눈을 크게 뜨고 나에게 좋은 선택을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어쩔 수 없었던 것들 중에도 분명 내가 선택한 것들이 있다. 그 작은 선택들이 누군가에게 이끌려, 눈치가 보여, 할 수없이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해서 선택한 것들로 채울 수 있다면 힘든 인생가운데 그나마 작은 빛을 많이 모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 작은 빛들이 가끔은 내 인생을 반짝반짝 빛나게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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