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오늘 점심은 뭐 먹어?
나의 책 '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던 거야'에 감정의 기본값이 중요하다는 말을 썼다. 아무리 좋은 일이 생겨도 아무리 힘든 일이 생겨도 대부분의 사람 든 원래대로 살아가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좋은 일이 생겨도 우울했던 사람은 다시 우울해지고 대체적으로 긍정적이고 즐거운 마음을 가진 사람은 힘든 일이 있어도 또 그대로 돌아간다. 때문에 인생은 절대로 한번의 이벤트나 해외여행으로 달라지지 않는다. 대신 평소의 개인의 감정상태를 관리하고 긍정적으로 바꾸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된다. 이런 이유로 돈과 시간이 지나치게 많이 들지 않는 자신만의 소확행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중에 가장 쉽고 확실한 방법이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게 아닐까 싶다. 밥은 적어도 하루에 한번은 먹어야하니 적어도 하루에 한번은 행복해 질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좋아하는 음식을 즐기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밥을 먹으며 대화하고 웃을 수 있다면 그것이 우울증약보다 훨씬 효과적이라고까지 말하고 싶다. 그만큼 먹는 것과 먹을 것을 나누어 먹을 수 있는 관계는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었다.
결혼하기전엔 밥의 힘을 그리 알지 못했다. 어린 시절의 식사시간은 (다행히 어머니의 음식 솜씨는 무척 뛰어났다.) 엄숙하고 무거웠다. 어른이 식사하기 전에 숟가락을 들지 못했고 어른이 숟가락을 놓기 전에는 밥상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당연히 반찬투정도 안되고 밥을 입에 넣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대화를 한 적은 없었다. 식사시간은 정말 살기 위해 밥만 먹는 시간이었다.
남편과 결혼을 하고 밥의 힘을 알았다. 티셔츠 20불은 너무 비싸다고 호들갑을 떠는 남편은 200불짜리 맛있는 저녁식사는 아까워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신혼 초부터 쭉 남편은 그날 저녁만 맛있어도 웬만한 짜증과 화가 풀어지는 희한한 존재였다. 그 말은 배가 고프면 쉽게 짜증을 내고 화가 나는 존재이기도 했다. 거기다 자신이 무슨 미식가인 양 '여기엔 00을 넣었네, 이건 더 익혀야 맛있는데, 이건 식감이 별로네'하며 밥상에서 실랄한 평가질을 하기도 한다. 반대로 어느 날 자신에 입맛에 딱 맞는 반찬이라도 있으면 식사시간 내내 ' 와.. 이건 진짜 너무 맛있다. 이렇게 팔아도 되겠다. 이런 건 이 동네에 팔지도 않아. 자기야 우리 이렇게 해서 장사할까?" 하며 칭찬이 일색이었다.
그때 나는 알았다. "아~ 이 남자는 밥만 잘해줘도 괜찮겠구나.' 싶었다. 관심 있고 좋아하는 주제외에는 거의 모든 것을 귀찮아하는 나였지만, 만 25살의 나는 이 결혼생활의 승부수는 밥에 있다는 걸 알았다. 그 이후로 열심히 부엌에서 삶고 끓이고 튀기고 볶으며 20년 넘게 살았다. 그 세월에 힘입어 다른 건 몰라도 남편 입맛은 딱 맞출 수 있는 요리를 만들어 낼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다행히 음식 솜씨 좋은 친정엄마를 보고 자랐고 요리라는 장르도 머릿속으로 상상하고 손으로 만드는 "예술"의 영역에 속하기에 내 적성과 잘 맞았던 것 같다.
아이들을 낳고 대학원 다니고 직장에 다녀도 가족들 밥은 항상 챙겼다. 주중이 너무 바쁘면 주말에라도 특식을 만들어 함께 먹었다. 그렇게 우리는 맛있는 것을 해 먹기 위해 함께 장을 보고 함께 재료를 다듬고 함께 음식을 나눠먹으며 살았다. 남편과 나 사이에서 줄줄이 태어난 딸 둘과 아들도 그 식탁에서 아빠 엄마를 보며 자랐다. 자연스럽게 먹는 걸 좋아하고 즐기는 아이들로 자랐다. 매일 식탁에 모여서 음식으로 대화를 하고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나누는 것이 우리 식탁의 루틴이었다.
그러다 보니 음식으로 인한 추억도 너무나 많다. 콩나물 볶음과 계란찜을 만들면 큰 딸이 생각나고 김치찌개와 어묵국만 보면 아들이 생각난다. 카레와 꽃게 된장국은 막내딸의 최애메뉴이다. 미국에 살아도 한식을 주로 먹고 자란 아이들은 한국에 있는 아이들보다 훨씬더 한국적인 음식을 좋아하는 아이들로 자랐다. 여행을 하다가 호텔묵으면 호텔에서 주는 어메리칸식 조식은 거들떠도 보지 않는 아이들로 컸다. 그렇게 우린 음식으로 서로를 알아가고 추억을 만들었다. 그것이 우리 집의 가장 강력한 행복의 기본값이었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면서 알았다.
요리는 가족들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무기가 되었다. 그날 저녁 반찬으로 나의 사랑을 확인했다. 그러다 보니 남편이 화가나도 아이들이 토라져도 자신들이 좋아하는 음식앞에서 스르륵 마음을 열었다. (때문에 우리집에서 밥을 먹지 않는 것은 정말 상태가 심각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음식으로 가족들에게 사랑을 마구마구 표현했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반찬을 보고 행복해하는 남편과 아이들을 보고 나 또한 뿌듯하고 행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우리 가족의 행복도엔 집밥이 크게 자리 잡고 있다.
평범했던 우리 가정은 여행을 다니면서 지치고 힘들 때가 많았다. 캠핑카가 아무리 커도 집보다는 협소하고 좁다. 아무리 우리가 쓰던 물건들로 캠핑카를 채워 넣어도 예전에 살던 집과는 전혀 다른 낯설고 불편한 공간이다. 따로 각각 방이 있었던 아들과 딸은 좁은 캠핑카방을 나눠 써야 했기에 자주 투닥거렸다. 거기다 길을 잃거나 잔고장 나는 등 예상치 못한 난관을 만날 때도 있었다. 평범했던 일상을 벗어남으로 인해 생긴 변화는 좋은 것도 있었지만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이 훨씬 많았다. 마치 원래 있던 궤도에서 이탈하며 추락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다투고 힘든 일이 있어도 뜨끈한 된장국에 밥 말아먹으면 그곳이 집이었다. 아무리 낯선 동네 협소한 캠핑카 안에 있어도 내가 만든 집밥으로 순식간에 그곳은 따뜻한 집이 되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긴장감을 풀고 편안해졌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스테이크는 캠핑장 숯불에서 기가 막히게 익었다. 삼겹살과 김치면 그 어떤 가족불화도 한방에 날려버릴 수 있었다. 그렇게 밥 먹으며 다시 웃고 내일의 여정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자칫 잘못하면 너무 심각하거나 너무 스트레스받을 수 있을 법한 우리의 감정선은 늘 밥으로 인해 기본값으로 돌아왔다. 늘 적당히 유치하고 적당히 유머러스한 정도로.
모든 아이들이 가고 싶어 하는 유니버설 스튜디오나 디즈니랜드를 가고 등산객들의 로망인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가도 늘 마지막엔 "그래서, 오늘 저녁은 뭐 먹어?"라는 아이들이 질문이 맥이 빠질 때도 있다. "너희들은 기승전 그냥 밥이냐!"라고 타박을 줄 때도 있지만 어쩌면 한 끼 식사로 충분히 하루를 행복해하고 감사하는 사람으로 클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으로 나는 나를 위로한다. 그렇게 작은 것에 행복할 수 있는 기본값을 가진 우리기에 앞으로 닥칠 어려움도 잘 극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 나는 어차피 밥 해 먹으려고 작정하고 이 캠핑카 여행을 시작한 거니까, 내가 만든 집밥으로 인해 우리 가정의 행복의 기본값을 지킬 수 있다면 얼마든지 해야지."라고 말이다.
https://youtube.com/shorts/dfd1wfXDJWM?si=uDHHU2QRjpbJhzW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