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랬듯이
캠핑카로 여행을 가기로 결정한 후부터 하루하루는 선택의 연속이었다. 무엇을 캠핑카에 옮길지 무엇을 버릴지 그리고 언제 떠날지 어디로 갈지, 하물며 캠핑장에서 며칠을 묵을지 점심은 도시락을 가지고 갈 것인지 외식을 할 것인지 모든 것은 선택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고민이 많은 것은 우리 여행지의 루트를 짜는 것이다. 야심 차게 미국여행을 2년을 계획했지만 사실 미국을 2년 안에 다 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캘리포니아에 20년을 넘게 살아도 캘리포니아에서 아는 도시보다 모르는 도시가 훨씬 더 많다. 각 주가 기본적으로 한국보다 몇 배씩은 크다. 그런 주가 51개가 있다. 한 주를 한 달을 있는다고 다 알 수 있을까? 한 달씩만 구경한다고 해도 51개월 즉 4년은 족히 넘게 걸리는 대장정이다. 그러니 모든 주를 다 가보려는 것은 욕심이었다.
한 가지를 선택한다는 것은 나머지 것들은 포기하거나 뒤로 미루는 것이었다.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었다. 손해를 보는 것을 무척 싫어하는 남편은 여행경로를 짜는 것이 쉽지 않았다. 손해를 최소화하고 이익을 최대로 하려다 보니 늘 선택이 어려웠다. 거기다 그는 다른 할 일이 너무 많아서 가만히 앉아 지도를 들여다보기 힘들었다. 그렇게 주저주저하다 늘 마지막에 급하게 결정하곤 했다. 결국 선택과 포기가 빠른 내가 경로를 짜기로 했다. 대신 남편이 불평불만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걸고.
캠핑카 여행경로는 생각보다 고려해야 할 것이 무척 많았다. 일단 날씨가 가장 중요하다. 미국은 주마다 날씨가 천차만별이다. 나는 혹한의 겨울이 없고 폭우나 태풍이 잘 없는 따뜻한 캘리포니아에서 살았다. 하지만 어떤 주는 겨울에 극심한 한파가 몰아치기도 하고 또 어떤 곳은 여름에 폭풍과 허리케인이 오기도 한다. 캠핑카를 끌고 다녀야 하기에 비가 너무 많이 오는 우기나 날씨가 너무 추운 혹한기는 피해야 했다.
두 번째는 비용이다. 둘 다 백수인 상태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보니 최대한 비용을 아껴야 한다. 여행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thousand trails이라는 캠핑카 전용 파크 멤버십을 구입했다. 4년을 계약하면 한달에 300불 정도만 지불하면 예약이 가능한 캠핑사이트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때문에 될 수 있으면 thousand trails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 비용절감에 유리했다. 우리처럼 캠핑카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웬만하면 미리미리 예약을 하는 것이 좋았다. 좋은 캠핑장이나 유명한 관광지 근처 예약 잡기는 하늘의 별따기였기 때문이다.
캠핑장 주변에 가볼 만한 관광지나 랜드마크도 중요하다. 내가 가고 싶은 곳, 아이들과 남편이 좋아할 만한 곳이 있는지도 살펴야 했다. 네 명의 취향과 관심사를 다 고려하는 것은 쉽지 않았기에 미국 관광청 웹사이트와 여행블로거의 사이트를 열어놓고 열심히 살펴야 했다. 마지막으로 큰 트레일러를 달고 하루에 5시간 이상 운전은 무리였다. 거기다 해가 지기 전에 캠핑장에 도착해야 하기에 이동거리가 너무 길지 않도록 조절하는 것도 내 몫이었다. 대부분의 캠핑장들이 주로 외지나 시골에 있기에 어두워지고 나서는 운전은 가급적 피해야했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하여 행선지를 선택하고 얼마나 지낼지를 선택하는 것은 생각보다 오랜 고민과 공부가 필요했다. 어떤 날은 마치 대학원 논문을 쓸 때 자료를 찾듯이 몇시간씩 컴퓨터에 미국지도, 캠핑장 웹사이트, 구글맵, 미국 관광지 홈페이지를 펴 놓고 여기 왔다 저기 왔다 비교를 하며 다음 여행지를 선택했다. 이럴려고 그렇게 진득히 앉아서 공부하는 습관이 들였나 싶기도 했다. 여행의 시작과 목적은 남편의 꿈을 이루어주기 위한 것이었지만 정작 여행지는 내가 결정하고 주도하는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다행히 남편은 어디로 가는 것보다는 그냥 여행자체를 하고 싶었던 사람이기에 장소는 크게 중요치 않았다.
열심히 여행의 루트를 짜고 캠핑장을 예약하는 나를 보며 ‘네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할 줄 몰랐어. “라고 남편이 말했다. 과거 지난 모든 여행의 계획은 늘 남편이 주도했고 나는 말없이 따라가는 편이었다. 그런 내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에 남편은 적잖이 놀랐다. 나는 “ 어쨌든 내가 가기로 선택한 여행이고 함께 책임을 져야 하니까. 객관적으로 이런 일은 당신보다 내가 훨씬 잘하잖아. 나는 내가 잘하는 거 하고 당신은 당신 잘하는 거 하는 거지.‘
우리의 여행은 일 년에 한 번 며칠 일상을 벗어나 여행을 즐기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여행이 아니었다. 우리는 익숙했던 삶을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삶을 방식을 택하는 것이었다. 여행길이 우리의 일상이 되어야 하고 삶이 되어야 했다. 이런 큰 변화엔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참여자의 협동과 협조가 필요하다는 것을 여행을 하면서 깨달았다. 협조의 시작은 각자 잘하는 것을 하는 것이었다. 남편과 나의 다름이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과거엔 나와 너무 다른 성향과 생각을 가진 그가 이해가 되지 않아 불편하기만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나와 달라서 이상하고 불편한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르기에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대신해 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가 너무 다르기 때문에 잘살고 있는 거였다.
나의 안정적인 성향은 여행동안 하루의 루틴을 정하고 음식을 만들고 다음 캠핑장의 장소를 정하고 예약하는 일에 적합했다. 불안정하고 예측이 힘든 여행가운데에서도 나름의 안정과 루틴을 지켰다. 남편에겐 하기 어려운 일들에 해당하지만 즉흥적이고 임기응변에 능한 남편은 캠핑카가 문제가 생길 때 즉각 즉각 해결하고 놀러 갈 때 필요한 물건들을 챙기고 아이들과 신나게 놀아주는 일을 했다. 내가 잘하지 못하는 일을 하고 있다. 부딪힐 것 같은 우리의 반대의 성향은 오히려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 돌아가고 있다. 전혀 다른 성격과 성향이 오히려 이 여행을 완성 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남편! 네바다로 갈 거야? 애리조나로 갈 거야? 그건 알려줘야 다음 예약을 잡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