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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완전 새로운 세상이구나

나만 또라이는 아니라는 안도감

by 원정미

캠핑카여행을 가기로 하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샌프란시스코 근교 캠핑카 전용 캠핑장을 찾았다. 처음 캠핑카를 달고 떠나는 길은 설렘 살짝에 온통 두려움뿐이었다. 모든 것을 처음 해보는 초짜 캠퍼인데 너무 큰 캠핑카를 끌고 지인까지 대동했다. 지인에게 좋은 경험을 만들어 준다는 명분이었지만 실상은 혹시 가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급하게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만큼 첫 여행은 불안 불안했다.


그렇게 찾아간 캠핑장을 다니면서 놀란 게 있다. 동네에선 우리처럼 큰 캠핑카, fifthwheel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었는데 거기 도착하니 우리보다 훨씬 더 큰 캠핑카들이 즐비해 있었다. 거기다 그전엔 여행을 다녀도 전혀 눈에 보이지 않던 캠핑카 전용캠핑장이 구석구석에 정말 많았다. 이런 곳에 이렇게 큰 RV 파크가 있다고? 거기다 가는 곳곳마다 캠핑장이 캠핑카로 가득했다. 미국 전체 인구의 9%가 여기에 다 있었구나 싶었다.


RV전용 캠핑장은 머릿속으로 상상하던 것과 실제는 많이 달랐다. 일단 캠핑장에 따라 수준차이가 많이 났다. 어떤 곳은 정말 문이 곧 부서질 것 같은 공용화장실이 전부인 곳도 있지만, 어떤 곳은 수영장, 샤워실, 레크리에이션 센터, 세탁실, 어린이 놀이터 등등 웬만한 리조트 못지않은 부대시절을 갖춘 곳들도 있었다. 이런 좋은 캠핑장은 웬만한 좋은 아파트 단지만큼 편안하게 지낼 수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놀랐던 것은 대부분의 캠핑장이 무척 조용했다. 여행을 꺼려했던 이유 중 하나는 나는 사람이 많고 시끄러운 곳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에겐 너무 많은 자극이 한꺼번에 들어오고 그 자극을 처리하느라 혼자서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한다. 그런 곳에선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기가 빨린다. 머릿속에서 상상한 캠핑장은 오랜만에 가족들과 친구들끼리 놀러 온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시끄러운 음악을 틀어놓거나 음주가무를 하며 노는 곳이었다. 물론 캠핑장에 따라 살짝 낮에는 시끄러운 곳도 있었지만 대부분 해가 넘어가면 여기에 사람이 살고 있을까 싶을 만큼 조용하고 고요했다.


캠핑카를 타고 가족, 친구들과 함께 잠시 휴가를 즐기러 놀러 나온 사람들이 주류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달랐다. 오히려 캠핑카 전용 파크는 주말에 친구나 가족들과 오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은퇴를 하고 아예 RV에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RV에서 생활하면서 가까운 곳으로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에겐 캠핑카가 집이었고 거주지였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루틴에 따라 일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미국은 자유로운 나라이지만 그 자유는 언제나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조건에서의 자유이다. 때문에 타인에게 민폐가 될 만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나 또한 캠핑장을 다니면서 눈살을 찌푸릴만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나 그룹을 아직 만난 적이 없다..


캠핑카 여행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재미있었던 것 중 하나는 캠핑장안을 걸어 다니면 다른 캠핑카를 구경하는 것이었다. 딱 혼자만 잘 수 있을 것 같은 소형 캠핑카부터 대형 관광버스보다 더 커 보이는 버스에 소형차까지 끌고 다니는 사람들까지 너무나 다양한 디자인과 모양이 있었다. 거기다 캠핑카뒤에 오토바이, 자전거, 카약 등등 온갖 아웃도어 스포츠 장비를 달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을 보며 남편은 "와 진짜 제대로 노는 사람들이구나! “라고 부러워하기도 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며칠 혹은 몇 주만 있는 캠핑장안에서도 마치 집 앞의 앞마당을 만들듯이 자신의 사이트를 예쁜 화분, 장신구와 전구 등으로 꾸며놓은 곳도 있었다. 캠핑카 앞에 형형색의 더럽혀진 장난감과 공이 굴러다니면 "저 집엔 어린애가 있나 봐. 어린아이 데리고 RV생활을 하다니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저녁을 먹고 남편과 아이들과 산책을 하면서 한 집 한 집 구경하는 것이 쏠쏠한 재미가 있었다. 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혹은 어떤 사연으로 이렇게 캠핑장에서 살기로 마음을 먹었을까? 이런 생활에 만족하고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다. 나중에 여행이 좀 익숙해지고 사람들에게 다가가 먼저 말을 걸 수 있는 용기가 생기면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들과 함께 1-2년 정도 온전히 여행만 하기로 결심을 하고부터 나는 더 이상 평범한 생활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주류에서 벗어난 느낌이었다. 그 느낌은 남들과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을 선택했다는 것에 대한 용기와 흥분도 있었지만, 이젠 집도 절도 없이 떠도는 생활이 과연 맞는 것일까? 하는 불안감도 있었다. 아마 보통의 삶 혹은 평균적인 삶을 벗어나는 선택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 아닐까 싶다.


이제는 다른 사람과 비교할 것도 없이 주도적으로 사는 삶는 것이 좋기도 했지만 실상은 함께 가는 무리도 없고 동반자도 없는 외로운 도전이기도 했다. RV라이프를 살기로 선택하면서 모든 것은 혼자만의 싸움이었다. 주변에 나처럼 사는 사람은 없으니까 물어볼 사람도 없는 맨땅에 혼자 서 있는 느낌이었다. 혼자 책을 보고 유튜브를 보면서 알아서 찾아야 했다. 캠핑카는 어떤 것을 사야 하는지, 아이들 공부를 어떻게 시켜야 하고 어디서부터 여행을 시작해야 하는지 모든 것이 나의 몫이었다. 비교할 것 없이 오롯이 내 손이 맡겨진 것이 편하기도 하지만 불안하고 무섭기도 했다. '잘못 선택한 것이면 어떡하지? 애들이 계속 적응을 못하면 어쩌지? 너무 무모한 짓을 시작했나?'이런 걱정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캠프사이트를 여러 군데 다니면 다닐수록 우리만 별난 사람은 아니라는 안도감이 생겼다. 딱 보기에도 우리보다 훨씬 더 특이하고 특별해 보이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나만 몰랐지 나처럼 자기만의 삶을 선택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이미 있었던 것이다. 마치 그들이 나에게 ' 인생에 정답이라는 것은 없어. 이 삶도 딱히 나쁘지 않아. 한번 도전해 봐' 말하는 것 같았다.


새로운 도전이나 목표 앞에 우리가 늘 주저하는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도전이나 모험을 잘 선택하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안정과 안전을 추구한다. 때문에 편안하고 안정된 삶을 벗어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 있는 선택의 이면엔 나만 별난 선택을 한 것 같고 나만 무모한 짓을 한 것처럼 느껴진다. 혼자 막막한 사막에 서있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생각보다 세상엔 별나고 특이한 사람들이 많다. 우리가 보지 못해서일 뿐이었다.


나 또한 캠핑장에서 그들의 존재만으로 그들과 함께 캠핑장을 함께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왠지 큰 위로가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하는 '평범과 노멀'이라는 안전지대를 벗어난 이들이었다. 자신만의 길로 자신의 색깔대로 살고 있는 선배(?)들의 모습이 나에게도 큰 용기가 되었다. 나도 어쩌면 이 여행이 미래의 새로운 도전이나 모험 앞에 주저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용기가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니 그런 용기를 주고 싶다. '혼자 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아니야 그러니 쫄지마.'라고


https://youtu.be/QFlWND3NR3s?si=1RMUiFs0wbXk4d9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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