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나쁜 게 아닙니다

by 원정미






웃을 때에도 마음에 슬픔이 있고 즐거움의 끝에도 근심이 있느니라 (잠언 14:13)


몇 년 전 ‘인사이드 아웃’이란 애니메이션이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어른들도 영화를 보고 울었다는 후기가 많았습니다. 영화의 스토리나 캐릭터들도 생동감 있고 재미있었지만, 영화에서 사람들이 감동받은 것은 내가 드러내지 못했던 나의 속 깊은 감정상태를 감정캐릭터가 잘 설명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누구에게도 말 못 하고 드러내지 못했던 나의 감정들이 나쁜 것이 아니라 각자의 역할이 있었고, 내 삶에서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준 것만으로도 그 영화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사람을 동물과 달리 이성적인 존재라고 믿지만 사람은 감정 없이는 설명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개인이 느끼는 감정의 정도와 강도가 다르기 때문에 남과는 다른 각자 특별하고 고유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나와 너를 구분 짓는 가장 큰 요소가 감정입니다. 저는 안전한 것을 선호하지만 누군가는 도전을 좋아합니다. 누군가는 소설을 좋아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다큐멘터리를 좋아합니다. 이렇게 각자의 감정이 다르기에 취향과 성격도 다른 것입니다. 이런 자신의 감정을 자신의 감정을 부정하고 억압한다면 마음은 병들 수밖에 없습니다.


개인내면의 평안과 관계의 평안을 위해서는 자신의 감정을 잘 읽어주고 잘 조절하는 능력을 가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정신질환의 가장 큰 문제가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억압, 부정, 회피하려 하기 때문에 대부분 일어납니다. 그것이 확대되어 주변의 인간관계까지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서로 간의 불통과 소통의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로 인해 스트레스가 개인의 마음에 더 큰 부담과 짐을 지우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마음의 평안은 어쩌면 자신과의 소통의 질에 달려있습니다. 그리고 소통의 능력은 공감과 감정조절 능력에 있습니다. 따라서 건강하고 평안한 마음을 유지하고 타인과 건강한 소통을 위해선 감정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감정엔 옳고 그름이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 문화엔 감정에 옳고 그름이 있는 것처럼 배웠습니다. “ 그런 생각하면 못써, 어디서 성질이야? 뭘 잘했다고 울어?” 라며 상대의 감정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이 당연시되었습니다.


감정은 내가 처한 상황과 생각에 따른 인간의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모르는 사람이 나를 공격해 올 때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런 두려움이 없다면 사람은 안전하게 살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이가 떠나가면 슬픈 것도 당연한 것입니다. 예측하지 못한 일이 발생하면 당황스럽고 불안합니다. 이렇게 각자가 처한 상황에서 느껴지는 감정자체엔 잘잘못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자연스러운 감정이 지속적으로 부정당하면 존재적 거부처럼 느껴집니다. “아.. 화를 내는 것은 나쁜 아이구나. 이런 일 가지고도 힘들어하는 나는 나약하고 형편없는 사람이구나. 나는 부모님을 기쁘게 하지 못하는 부족한 아이구나”라는 등등의 존재적 거부를 느끼고 나아가 자신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생겨버립니다. 이것이 쌓이면 마음에 병이 됩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솔직하지 못할 때가 많고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몰라 당황할 때가 많습니다. 특별히 화나고 슬프고 실망하는 등등의 무거운 감정은 부정적이고 나쁜 것으로 치부합니다. 믿는 성도들 가운데에서도 기뻐하고 감사해야 한다는 성경에 말씀 때문에 자신에 솔직하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무겁고 불편한 감정을 억압하거나 무시하려고 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오해입니다.


성경에도 보면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다윗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법궤가 들어올 때 옷이 벗겨지는 것도 모르고 하나님께 기쁨을 표현했습니다. 다윗이 쓴 시편도 보면 그가 원수를 향한 억울한 마음을 하나님께 구구절절 표현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위대한 것은 그런 감정이나 생각 때문에 행동으로 상대를 공격한 적은 없습니다. 늘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맡겼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위대한 점이라 생각합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을 읽어주고 건강하게 표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심리치료의 첫 번째 순서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가장 안전하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기도는 주님께 나의 소원을 요청하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나의 속마음을 가장 안전하게 표현할 수 있는 곳입니다. 다윗처럼 하나님께 나의 솔직한 감정을 온전히 토로할 수 있다면 이미 심리치료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까지 체면을 차리고 위신을 세우려고 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속 깊은 속내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어쩌면 자신의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혹은 습관적으로 감정과 생각을 참고 억누르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자기 내면의 감정과 생각을 알지 못하면 변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어쩌면 우리 안의 진정한 내적 치유가 일어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말하지 않아도 이미 주님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의 깊은 곳을 알고 계시지만 스스로 인지하고 입으로 인정할 때 치유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울고 싶으면 울고 떼쓰고 싶으면 떼를 써도 됩니다. 주님은 절대로 내 마음을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이야 말로 우리에게 가장 안전한 도피처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나의 입으로 나의 내밀한 죄성, 아픔, 열등감, 억울함 등을 토로하고 인정하기 시작할 때 자유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회복의 시작입니다. 더 나아가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나 공동체에 털어놓거나 일기를 쓰는 방법 등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나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고 받아들여진다고 느껴지는 것이 마음을 나누는 것이고, 진정한 소통의 시작입니다. 이렇게 누군가와 소통이 된다고 느껴질 때, 사람은 안정감을 느끼고 평안하다 느낍니다. 그때 우리의 어그러진 자아가 회복되고 하나님을 닮을 사람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감정은 옳고 그른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부정적인 감정이라도 감정을 무조건 부정하거나 억압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나의 감정이 타인을 괴롭히거나 상처 주는 모습이 되지 않도록 배려하는 태도와 행동을 배워야 합니다. 이렇게 내가 나의 감정에 대해 능숙해진다면 타인과의 관계도 자연스럽게 쉬워집니다. 이것이 관계회복의 첫걸음입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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