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감정은 모두 다릅니다

by 원정미


웃을 때에도 마음에 슬픔이 있고 즐거움의 끝에도 근심이 있느니라 (잠언 14:13)


여행을 떠나기 전엔 남편과 매일 저녁마다 동네 산책을 나갔었습니다. 익숙한 동네이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산책을 하다가 이웃의 큰 개가 마당에 나와 갑자기 짖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저는 강도를 만난 것처럼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하지만 남편은 ‘왜 이렇게 놀라?’ 하며 평온하게 가던 길을 갑니다. 똑같은 상황을 겪어도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은 다릅니다.


사람의 기질과 성격에 따라 누군가에겐 별일이 아닌 것도 다른 이에게 큰 두려움이나 걱정이 될 수 있습니다. 내 기준에서의 '사소하고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이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나와 다른 이를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핵심입니다. 내가 중요하게 느끼는 것이 상대에겐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고 반대로 나에겐 별일 아닌 일이 상대방에겐 큰일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차이만 알아도 우리의 인간관계는 꼬이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생일이나 기념일을 일 년의 한번뿐인 소중한 날이라 느끼지만 누군가에겐 내년에 다시 돌아올 또 다른 날 중에 하루일 뿐입니다. 부모가 보기에 하찮아 보이는 아이들의 인형이 아이에겐 유일한 친구이자 장난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나에게 중요한 가치가 다른 사람에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만 알아도 관계는 훨씬 더 유연해집니다. 이것이 공감이고 배려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서로가 공감하고 배려할 수 있다면 관계는 좋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감정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감정은 시간이 흐르면서 늘 변합니다. 잠언에 나온 말처럼 기쁨 끝에 슬픔과 우울이 있을 수 있고 슬픔 가운데 감사를 느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하루에도 열두 번도 더 변하고 변덕스러운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항상 행복한 사람도 없고 항상 우울한 사람도 없고 항상 화난 사람도 없습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나의 마음을 인정하고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평안을 찾습니다. 나아가 누군가의 변덕스러운 마음도 인정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우울과 불안이 만연한 사회라서 오히려 과도하게 행복과 즐거움을 지나치게 쫓는 현상도 나타납니다. 마치 불안과 우울은 죄를 짓는 것 같아서 억지로 감사해야 하고 기뻐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행복과 기쁨만 느끼려고 하는 사람은 오히려 건강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걸 원하셨다면 인간에게 고난과 시련을 허락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인간은 모든 희로애락을 적절히 느끼고 때로는 무겁고 힘든 감정도 감당하고 조절하며 사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것이 성장과 성숙으로 가는 길이입니다.


세상에 나쁜 감정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느끼도록 허락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감정을 느끼는 것은 스스로를 보호하는 길이기도 하고, 서로를 돕고사는 사회를 만드는 방법이 되기도 합니다. 스스로가 느끼는 감정이나 타인이 표현하는 감정을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나의 감정을 판단받고 정죄받는다고 느끼면, 사람은 마음을 나누기 힘듭니다. 마음을 나누지 못하는 관계는 소통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무례한 태도, 언행과 나쁜 행동은 있습니다. 이것은 죄입니다. 때문에 내가 느끼는 감정과 상관없이 내 입술의 말과 행위를 조절할 수 있고 책임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나의 영혼과 타인의 영혼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지키는 길입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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