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찌어다 여호화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찌어다 (잠언 3:6)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 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언 16:9)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동안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잠언 27:1)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잠언 20:24)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잠언 16:33)
가끔 제가 키우는 강아지와 등산을 할 때가 있습니다. 저처럼 행동이 굼트고 경직된 사람은 산비탈을 오르락내리락하다가 자칫잘못하다가 미끄러지기 십상입니다. 그러다 보니 등산만 같다오면 다치기도 하고 온 몸이 근육통으로 아프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희 강아지는 아무리 비탈진 곳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올라가고 또 내려옵니다. 동물들은 유연성이 탁월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잘 다치지도 않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마음에도 유연성이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고무처럼 유연하고 말랑말랑한 마음의 유연성이 있는 사람들은 환경이 변하고 상황이 달라져도 적절히 적응을 합니다. 고난과 시련이 와도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마음의 유연성이 없는 사람들은 달라진 환경, 고난이나 어려움에 적응하는 능력이 떨어집니다.
이 마음의 유연성을 심리학 용어로 회복탄력성이라 합니다. 고무공은 땅에 던져도 다시 튀어오르지만 플라스틱 그릇을 땅에 던지면 부셔저버리지 다시 튀어오르지 않습니다. 이처럼 어떤 고난과 어려움에도 다시 원래의 모습을 찾아가는 능력을 회복탄력성이라 합니다. 마음이 여유롭고 유연성이 높은 사람들이 회복탄력성이 높습니다.
마음의 유연성이 떨어지는 사람들은 오히려 완벽주의성향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모든 상황을 자신이 계획하고 통제되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한마디로 변화나 도전을 싫어하며 예측이 벗어난 상황을 힘들어 하고 당황해 합니다. 모든 것을 자신이 원하는 쪽으로 해야만 마음이 편안합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게 인간관계는 더 어렵기만 합니다. 타인은 자신이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이죠. 이들은 겉으로 보기엔 뭐든지 철두철미하고 완벽을 추구하는 멋있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실상은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의 인생이 아무리 조심을 하고 예방을 해도 절대로 내 뜻대로만 되지 않습니다. 코로나처럼 아무리 노력해도 막을 수 없는 일들은 어디서나 일어납니다. 그 일로 인해 많은 크고 작은 다른 변수들이 생깁니다. 지금의 현시대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전쟁과 기근과 자연재해는 어디서나 발생합니다. 그로 인해 실직이 된 사람들도 많았고,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가족들도 있습니다. 그로 인한 변화를 어떻게 적응하느냐가 관건입니다. 이때 유연성이 없는 사람들은 고난, 변화, 사건 사고에 그냥 무너지기 쉽습니다.
이 유연성을 키우기 가장 좋은 곳이 작은 실패이고 고난이고 변화입니다. 어려움을 통해서 하나님을 찾고 나의 생각과 시야를 넓히면서 사람을 성숙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고난이나 실패등은 자기가 믿고 의지하던 나의 가치관과 우상들이 깨어지는 경험을 함과 동시에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발버둥치게합니다. 어려움을 겪는 동안 인내심, 참을성, 포용력, 겸손함등을 배울수 밖에 없습니다. 그로 인해 당연히 하나님을 더 찾을 수 밖에 없고 더 의지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고난과 불행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과 내가 모르던 세상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게 내 생각의 틀을 부숴버리면 세상이 달리 보일 때가 많습니다. 이렇게 내가 놓지 못했던 나의 굳어진 습관과 생각들이 깨어지고 주님의 생각과 주님의 말씀이 들릴 때 우리는 순종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유연성입니다.
이 유연한 마음을 가지기 위해서 생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첫 번째, 인생에서 나쁜 일은 늘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이는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잘 믿고 믿음이 좋은 성도라 해도 아무리 선하게 착하게 살았다 해도 피할 수 없습니다. 그건 하나님이 불의하신 분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를 단련시키고 연단하기 위함이실 때도 있고, 때로는 우리를 죄악에서 돌이키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불행과 아픔없이 성장하고 성숙해 지지 않습니다. 인생이 고행이라는 것을 인정하면 오히려 고난과 어려움을 버틸 유연성이 생깁니다.
두 번째, 모든 것은 변하고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전도서의 말씀처럼 인생의 모든 것이 헛된 것이고 모든 것은 변합니다. 날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고 울 때가 있으면 웃을 때가 있고 찾을 때가 있으면 잃을 때가 있다고 했습니다. 인생이 늘 이렇게 변화무쌍하기에 고난 가운데서도 절망하지 않을 수 있고 성공 가운데에서도 겸손할 수 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 모든 것은 달라집니다. 변하지 않을 것 같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영원한 고통과 절망도 없고 영원한 성공이나 영예도 없습니다. 그러니 내게 주어진 지금의 현실을 감사하게 지내는 것으로 충분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인생의 주인공은 내가 아닙니다.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모든 것을 혼자 책임지고 해결하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조연일 뿐입니다. 나는 주님이 허락하신 역할에만 충실하면 됩니다. 우리의 자녀, 배우자, 친구 또한 각자 감독되신 하나님의 부르심대로 살아갈 것 입니다. 그러니 모든 것을 다 책임지거나 혹은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내가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고 계획을 하더라도 그 걸음을 옮기실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주어진 인생가운데 한걸음 한걸음 최선을 다하는 것은 무척 중요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나의 최선과 노력과 상관없이 인생이 흘러갈 수 있는 여지는 남겨놓아야 합니다. 내 삶에 하나님의 간섭하심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길이 꽃길이든 가시밭길이든 주님과 함께하기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 유연한 마음이 우리 인생길을 한결 편하게 해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