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결혼을 만드신 이유

우리를 회복케 하심입니다.

by 원정미

미국이나 한국이나 이혼율이 40%를 넘어갑니다. 특별히 요즘 같은 코로나 시기엔 법률사무소나 부부상담소에 이혼상담이 급격하게 늘고 있다고 합니다. 크리스천의 가정이라고 해서 사실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혼하지 않은 남은 부부들도 사실 다 행복하지는 않습니다. 이혼의 이유는 각각 개인적인 사정이겠지만, 보이는 이 수치야 말로 결혼이라는 것이 정말 쉽지 않은 인간관계의 형태라는 것입니다. 그럼 이렇게 힘든 관계를 왜 하나님께서 만드셨을까요? 누가 뭐라 해도 부부는 하나님께서 교회보다 부모 자식관계 보다 먼저 만드신 공동체인데 말이죠.


개인적으로 주변의 건강하고 행복한 부부관계를 보지 못하고 자라서, 어린 시절 결혼에 대해 무척 회의 적고 부정적이었습니다. 아마 지금의 청년들 중에도 이런 이유로 결혼을 주저하고, 차라리 비혼이 결정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결혼을 하고 안 하고는 전적으로 개인의 믿음과 가치관에 따른 결정이지만,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부부라는 공동체를 직접 만드셨고 복을 주셨습니다.


제가 결혼생활 19년째 하고 부부관계를 오래 공부하면서 깨달은 결론은, 부부라는 공동체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만든 제도셨습니다. 상처 많고 죄 많은 두 인간이 서로를 대면해서 받아들이고 다듬어지고 성화되어서 궁극적으론 예수님을 닮아가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많은 부부들은 배우자만 아니면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합니다.


이런 분들의 대부분은 자신의 꽤 괜찮은 사람이라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배우자가 나를 열 받게 하고 화나게 만든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죄인입니다. 그리고 죄인 밑에서 자란 우리도 죄인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각각 자신의 아픔과 상처, 열등감, 욕심과 교만에 사로잡힌 채 살아갑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실체를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믿지 못하면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듯 말입니다. 그래서 나의 고상하고 품위 있는 삶에 방해가 되는 배우자를 비난하거나 변했다며 원망합니다.


그러나 뜨거운 연애의 시간이 지나가면, 모든 부부는 각자 자신의 실체가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배우자가 변한 것이 아니라 그냥 자신의 원래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모든 죄인 된 인간의 실체는 이기적이고 추합니다. 많은 부부들이 싸움을 할 때 “ 네가 나를 이렇게 독하게 만들었다. 네가 나를 이런 놈으로 만들었다” 고 하지만, 사실 배우자가 만든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그전부터 그런 모습이 있었습니다. 다만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고 자신이 인정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그러니 결혼하기 전까진 자신이 나름 좋은 사람이라 착각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부라는 관계는 그 가면을 벗기게 하고 내 민낯을 드러내게 하는 관계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셨지요. 그래야 내 속 사람이 변하기 때문입니다.


처음엔 서로의 민낯에 놀라고 당혹스러울 수 있지만, 우리가 원래 그런 인간임을 받아들이는 순간 은혜가 찾아옵니다. 마치 내가 하나님 앞에 죄인 중에 괴수임을 깨달을 때 은혜를 받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다릅니다. 많은 부부들이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절대로 너한테 만큼을 질 수 없다고 하며 배우자와 자존심 싸움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끝까지 자기 포기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은혜의 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헤어지는 지거나 반복되는 갈등 가운데 있습니다.


부부라는 공동체를 만드신 이유는 내가 추악한 죄인임을 다신 한번 확인시켜주는 관계입니다. 내가 평생 사랑하겠노라고 약속한 배우자 조차 끝까지 품어주지 못하는 못난 인격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찾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때 우리는 배우자를 나보다 낫게 여기고 이런 보잘것없는 옆에 있어주는 배우자에게 감사하고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에도 나와있듯이 하나님께서 나를 돕는 베필로 배우자를 붙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사실 많은 부부가 성향과 취향이 완전히 다른 사람에게 끌리게 되고 결혼하게 됩니다. 연애시절엔 매력으로 보이던 반대 성향들이, 결혼을 하고 내 일상으로 파고들면 나를 “ 미치게” 만드는 것들이 됩니다. 내 틀에 끼워 맞춰지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의 배우자가 나의 빈틈과 허물을 채워준다고 생각하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제대로 깨달으면 내 안에 얼마나 많은 빈틈과 허물이 있는지 볼 수 있습니다. 그때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점을 가지고 있는 배우자가 진정 나를 “ 돕는 베필” 로 보입니다. 그러면 연애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우정과 사랑의 관계가 시작되고 하나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배우자와 이런 친밀한 관계를 맺는 순간, 우리의 상처가 회복되고 치유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런 부부관계 안에서 자연스럽게 각자의 영혼이 회복되고 성화됩니다. 이 회복과 성숙, 성화의 과정을 위해 하나님께서 부부라는 공동체를 만드셨다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사랑의 특징 중에 가장 큰 속성은 흘러넘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알면 알수록 커집니다. 그 사랑에 굴복하면 남을 포용하고 인내하고 받아들이는 사이즈가 커집니다. 그 사랑 앞에 가장 쉽게 굴복할 수 있는 관계가 부부가 아닐까 싶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우리의 힘으로는 이해되지 않던 배우자가 이해되고 포용이 되는 순간으로 이끌고 가십니다. 거기서 내 고집스러운 자아와 내 좁은 소견이 깨어지게 만듭니다. 그때 부부는 하나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 된 부부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평안한 관계가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삶에서 전적으로 나를 이해하고 사랑해주는 단 한 사람만 있어도 사람은 힘든 일을 견디고 이겨낼 수 있습니다. 부부야 말로 하나님께서 이 죄 많은 세상을 이겨나갈 수 있는 그 단 한 사람을 내게 붙여주신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부부라는 공동체 또한 전적으로 우리를 사랑하셔서 만드신 제도입니다.


행복한 부부생활이나 결혼생활이 인생의 마지막 종착역쯤으로 생각하고 우리 삶에서 우상으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서로 존경도 사랑도 없는 메마른 사막과 같은 부부관계 또한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이 가정의 머리 되셔서 그분께 배운 사랑을 먼저 실천하고 순종해야 하는 가장 첫 번째 공동체가 부부라 믿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순종할 때 주님이 약속하신 둘이 하나 되고 내게 없어서는 안 될 고마운 베필이 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나와 완전히 다른 배우자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그 과정에서 부부는 자연스럽게 예수님 닮아가는 인격으로 함께 자라나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부부를 만드셨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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