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7: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성경에서 말하는 좁은 문은 여러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겠지만, 인간의 본성을 이겨야 하는 문이란 생각을 합니다. 좁은 문은 인간의 본성과 욕구 대로 사는 것을 거부하는 삶입니다. 그래서 힘든 길입니다. 인간의 욕구와 본성에 따라 사는 삶이 넓은 문이고 편한 길이지요.
인간의 본성, 죄성은 편안한 것을 원하고 쉬운 방법을 원합니다. 열심히 땀흘리고 운동해서 살을 빼는 것보다 다이어트약 한알로 해결하고 싶고, 매일매일 고생하며 출근하는 삶보다는 로또나 주식이 대박이 터졌으면 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엔 우리를 더 빨리 더 쉽게 더 자유롭게 해준다는 물건과 유혹들이 넘쳐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단 물질 세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인간관계에서도 사람들은 쉬운 방법을 좋아합니다. 사람들은 일상에서 부딪히는 인간관계에서 어떤 위험과 불편을 감지하면 본능적으로 두가지 중 한가지 방법을 택합니다. “ 싸우던지 아니면 도망가기!” 우리의 뇌가 즉각적으로 이렇게 반응합니다.
대놓고 죽기살기로 상대와 싸우던지 아니면 회피하고 모른척하는 방법으로 사람들이 많은 문제에서 그냥 도망치고 싶어합니다. 왜냐하면 대부분 인간관계의 해결은 나의 인내와 헌신, 자기포기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자녀를 기다려주고 인내하며 꾸준히 훈육하기보다는 소리지르며 윽박지르는 것이 쉽습니다. 맘에 들지 않는 배우자의 행동을 이해하고 조율하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비난하고 판단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편하지요.
그러나 이런 관계의 불편함은 스트레스를 만들고, 이 스트레스를 또 다른 곳으로 도망가서 해소하려고 합니다. 이것도 쉬운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많이 도망치는 곳이 술, 담배, 게임, 미디어, SNS, 쇼핑,폭식,클럽, 마약 등등으로 숨습니다. 그러나 이 곳에선 아무런 해결도 답도 없습니다. 이런곳으로 숨으면 숨을수록 사실 우리의 영혼은 더 사망에 가까워 지는 것입니다. 그로인해 얼마나 많은 관계가 깨어지고 가정과 사회문제가 심각해 지는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냥 이런 방법을 선호하지요. 왜냐하면 우리의 본성과 죄성은 여전히 빠르고 쉬운 방법을 택하라고 외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이같이 쉬운 길을 가라는 구절은 없습니다. 다만 예수님께서 좁은길을 함께 하신다는 약속만 있습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도대체 이것이 인간 사이에서 가능할까 하는 것을 요구 하십니다. 오리를 가자하면 십리를 가고, 겉옷을 달라하면 속옷도 주고 오른뺨을 치면 왼뺨도 돌려대고 원수를 위하여 기도하고 사랑하라는 등 우리의 본능과 본성을 거스르는 행동을 행하기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것이 가능한 방법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훈련이나 명상 혹은 도를 닦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저절로 되는 단 한가지 방법, 상대를 사랑하면 됩니다. 상대를 진정 사랑하게되면 우리는 본성을 이길수 있습니다. 아무리 아침잠이 많던 사람도 사랑하는 이를 위해 새벽잠을 떨치며 일어날수 있고, 사랑하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자존심을 굽힐수 있으며, 사랑하는 배우자를 위해 먼저 미안하다 손내밀수 있습니다. 이것이 본성을 이기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러나 이 위대한 사랑의 비밀은, 스스로 사랑받는다고 느끼지 못한다면 절대로 줄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안에 넘쳐나는 사랑으로 주는것이 아닌 사랑은 사랑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그건 준 사람의 기억에 다 저장되어 있기 때문에 후에 어떤식으로라도 보상을 기대합니다. 그리고 그 보상이 이루어 지지 않으면 “ 니가 어떻게 나한테 이래..내가 어떻게 해줬는데...” 라는 말이 남게 되는것입니다. 보상이나 인정을 바라는 사랑은 사실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사랑없이 한 모든 행위는 울리는 꽹과리와 같다고 하셨지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진정한 사랑은 사랑하는 것 자체가 기쁨이고 즐거움이기에 댓가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사랑은 나의 유익이 아닌 상대의 유익을 먼저 구하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죄 많은 인간관계에선 어쩌면 불가능한게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당연히 내 좁은 소견과 이기심으로는 사실 그 어느 누구도 받아들이고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그들이 내 자녀 내 부모 내 배우자라 할지라도 내 힘으로 예수님이 원하시는 사랑을 할수 없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이 사랑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인정하는 것이 사랑의 시작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랑의 시작이신 주님께 붙잡혀야 할수 있습니다.
다른이에게 줄수 있는 진정한 사랑은 내안에 흘러넘치는 사랑으로만 가능합니다. 그 사랑은 누구에게로 얼마나 흘러갔는지 도무지 알지 못하는 사랑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단 한번도 순종이라고는 할줄 모르는 인간을 끊임없이 한결같이 사랑하신 사랑입니다. 따라서 사실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으로 넘쳐나지 않고서는 진정한 사랑을 받을수도 줄수도 없는것이 됩니다. 심지어 내 자식을 사랑하는 일도 나의 배우자를 사랑하는 일도 그 사랑으로만 가능합니다.
넓은 문은 편한 길입니다. 인간의 본능과 본성에 충실한 문입니다. 넓은 문은 언젠가 나와 우리 가족관계를 무너뜨려 사망에 이르게 하는 길입니다. 그러나 좁은 문은 나의 본능과 욕구를 뛰어넘는 길입니다. 그래서 좁고 협착하며 힘든 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사랑을 배우는 길이고 예수님과 동행하며 걷는 길입니다. 그래서 나와 우리 가족을 살리는 생명의 길입니다. 세상이 편한 길과 넓은 문으로로 우리를 유혹할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길, 좁은 문을 선택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