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나지만 않았어도...

부모의 이혼은 아이들에게 너무 아프다

by 원정미

상담대학원의 마지막 관문은 실습이었다. 나는 영어도 서툰 내가 어떻게 아이들과 상담을 할 수 있을까 너무 걱정했었다. 그러나 그것 또한 한걸음 한걸음 하다 보니 익숙해지지 시작했다. 실습을 했던 초등학교는 학교 자체 내에 상담시간이 있었고 아이들의 행동문제가 감정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상담을 제공했다.


그 당시 내가 담당했던 아이들은 일주일에 15명 정도였지만 아직도 가끔 생각하는 학생이 J이다. J는 5학년 학생이었고 3학년 때쯤 부모의 이혼으로 2년째 학교에서 상담을 하고 있었다. 부모가 서로 합의 이혼을 한 것이 아니라 가정폭력으로 신고되고 경찰이 개입되어서 재판까지 간 이혼이였다. 그리고 여전히 부모는 양육권 싸움을 하고 있었다.


가정폭력이라 함은 대게 아내가 남편을 상대로 신고하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이 사건을 아니었다. 사실 양쪽 부모의 주장이 너무 달라서 나도 진실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사건 당시 신고를 한 당사자는 아버지였다. 부부는 오랫동안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했다. 유럽에서 이민 온 부부는 남편은 실리콘밸리의 전형적인 엔지니어로 누구나 다 아는 유명회사를 다니고 있었고, 엄마는 원래 전문직을 가지고 있었지만 미국에서는 그냥 주부로 살았다고 했다.


남편은 아내가 살림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감정적이고 자신과 모든 것이 맞지 않았다고 나에게 말했다. 그리고 자신은 혼자 돈 벌고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며.. 그러나 아내는 남편은 강박증에 의처증까지 있어서 가족 모두를 숨 막히게 했다고 했다. 여러 번 이혼 위기가 있었지만 아내는 아이들을 위해서 참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 날 말다툼 끝에 둘 사이에 약간의 몸싸움이 있었고 남편이 그것을 빌미로 가정폭력으로 아내를 신고했다고 했다.


남편의 신고 때문에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경찰에 잡혀 가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준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했다. 그리고 하루동안 경찰소 유치장에서 보냈다고 했다. 아내의 말은 남편은 가정폭력으로 자신을 신고해서 양육권을 주고 싶지 않은 것이라 했다. 아내는 오랫동안 주부로 있었고 직업이 없었기 때문에 아이들의 양육권이 부모에게 반반으로 될 경우, 남편은 아내에게 양육비를 매달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이 양육비는 생각보다 크다. 그 돈이 아까워서 남편은 여전히 아내와 양육권 다툼을 하고 있었다. 이 양육권 다툼 때문에 J는 법정에서 증언까지 해야 했다.


이런 가정사를 가지고 있는 J를 만났다. J는 정말 잡지책에 나오는 유럽의 미소년처럼 잘생긴 학생이었다. 예의 바르고 공부도 곧잘 하는 학교에서는 사실 큰 문제는 없는 아이였다. 그러나 선생님과 학교에서 집안에 그렇게 심각한 분쟁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예방차원에서 상담을 제공했다.


J는 처음에 자신의 이야기를 잘하려고 하지 않았다. 사실 저학년의 학생들은 자신이 왜 상담실에 오는지 거의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상담 신청은 선생님과 부모가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저학년의 학생은 나를 미술 선생님 혹은 놀이 선생님이라 불렀다. 왜냐하면 대부분 함께 미술활동을 하거나 놀이를 했기 때문에.


그러나 J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왜 상담을 받는지.. 그리고 한동안은 이제 자신은 괜찮다며 일주일에 반은 엄마 집에 그리고 일주일에 나머지 반은 아빠 집에서 잘 지낸다고 했다. 다만 아빠는 돈을 잘벌어 여유가 있는데 엄마가 그렇지 못해 자신이 빨리 돈을 벌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


사실 나도 겉으로 보이게 너무나 모범생으로 보이는 그가 부모의 이혼을 잘 받아들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가끔 그와 함께 미술치료를 하면, 그의 그림에서 그가 현재 여전히 매우 스트레스받고 있음을 드러내는 징후들을 볼 수 있었다. 부모가 이혼을 해서 싸우지 않는 모습을 보는 것은 너무 좋지만 그래도 나는 엄마 아빠가 함께 살았으면 하는 복잡한 심경도 드러났다. 그러나 또 자신이 만 13세가 되면 엄마랑 살고 싶다고 자신의 의견을 말할 것이라고도 했다. (미국은 만 13세가 되면 부모를 선택할 수 있다.) 그 말은 지금 아버지와 함께 사는 것이 어떤 면에서 힘들다는 말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J는 여전히 부모의 이혼에 대해 양가감정으로 괴로운 것 같았다. 그래서 상담을 종료하지 않고 계속 만났다.


그러던 어느 날 함께 그가 상담시간에 하고 있었던 프로젝트를 하고 있던 중에"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라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무슨 말이냐고 물어보니 원래 엄마는 아빠랑 결혼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J가 임신이 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하고 미국으로 아빠를 따라 이민을 왔다고 했다. 그리고 결혼생활 내내 엄마는 불행했다고 말했다. 자신만 없었어도 엄마는 행복할 수 있었다며..


사실 그의 말에 나는 눈물이 뚝 하고 흘릴 뻔했다. 그 눈물을 참느라 무척 애를 먹었다. 나는 J를 통해서 나의 어린 시절을 보았다. 물론 우리 부모님은 헤어지진 않았지만 두 분 다 너무 불행했다. 그 불행의 족쇄가 나인 것 같아서 엄마에게 무척 미안했다. J도 그런 존재적 아픔이 있었던 것이다. 자신만 아녔어도 엄마 아빠는 이렇게 불행하게 얽히고설키지 않았어도 되니까.


자녀가 있다면 이혼은 사실 더 이상 부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녀에게 생각보다 큰 존재적 아픔을 남긴다. 나와 J처럼 부모의 불행의 족쇄로 자신을 인지 한다면 아이는 절대로 건강하게 자랄 수 없다. 자신이 사랑하는 두 부모가 이렇게 법적 공방을 하고 죽일 듯이 싸우는 걸 보는 아이의 마음이 절대로 평안할 수 없는 것이다. 이혼은 두 어른이 선택하는 결정이지만, 그 결정에 자신이 낳은 자녀에 대한 배려와 책임은 꼭 져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J의 경우는 극단적인 모습이었지만 많은 아이들이 부모의 이혼에 감정적 희생량이 된다.

이혼이 흔해진 사회에서 요즘은 별일 아닌 것으로 치부하지만, 사실 아이들에겐 전혀 그렇지 않다. 사랑하는 두 세상이 전쟁을 잃으키는 것은 어느 아이에게나 공포이다. 그리고 사랑했던 두 사람이 가차없이 서로를 버리는 것처럼 보이는 이 이혼은 아이들에게 부모가 언젠가 자신도 버릴수 있다는 두려움과 공포를 주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부부의 이혼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가장 두려운 사건이 되는 것이다.


마음 같아선 나는 J를 힘껏 안아주고 " 절대로 네 탓이 아니야. 네가 잘못한 건 없어. 너의 존재는 부모에게 축복이야"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미국은 상담 중 악수 외에 어떤 스킨십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그의 손을 꼭 잡고 말해 주었다. 물론 그가 나의 말의 뜻을 온전히 이해했는지 못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학교 상담사의 안타까운 점은 학교가 끝나면 더이상 학생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햐면 매년 학교가 다른 곳으로 배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나는 일 년 동안 그렇게 J를 만나고 더 이상 그를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가끔 그가 생각난다. 지금은 아마도 중학교 3년쯤이 되었을 것 같다. 아마 그가 역변하지 않고 잘 컸다면 여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멋있는 남학생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한다.


그러나 나는 그 무엇보다 그가 더 이상 자신의 존재를 비참하게 생각하지 않는 건강한 소년이 되길 바란다. 나아가 부모가 더 이상 아이들을 중간에 두고 다투지 않았으면 좋겠고 그 사이에서 J와 동생이 더 이상의 상처를 받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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