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반 아이들과 자주 시비가 붙고 화를 주체하지 못하는 1학년의 학생의 선생님이 상담 신청을 했다. 부모 중 어머니는 이미 상담에 동의했으나 아버지가 동의하지 않는다며 아버지를 설득해 줄 것을 교장과 선생님이 나에게 부탁했다. 왜냐하면 담임 선생님이 어머니와 면담 후 아동학대의 의심점을 발견하고 아동학대로 아버지를 신고했고 아버지는 거기에 대한 불만이 가득했다. 자신은 아무 문제없는데 왜 아동학대 신고 나며. 더 나아가 아들의 문제행동을 선생님 그리고 학교 탓으로 돌기도 했다.
나는 학생의 문제행동에 대해서만 중점을 두겠다고 했다. 사실 학교 상담사는 가족치료는 하지 않는다. 학생들이 가정에서 학대받고 있지 않는지 정황에 따라 신고만 할 뿐이니까. 다만 아들이 학교에서 감정조절과 사회성이 부족하니 그 부분만 중점을 두겠다면 상담 동의를 받아내었다. 그리고 그 아들, M과의 첫 수업이 시작되었다.
M은 처음엔 상담을 완강히 부인하다 선생님의 설득으로 어쩔 수 없이 나를 따라왔다. 그리곤 책상에 앉자마자 두 다리를 책상 위로 올리고 팔은 거만하게 팔베개를 하며
" You can't change me. I'm not going to do anything (너는 나를 바꿀 수 없어. 나는 아무것도 안 할 거야)"라고 하는 것이었다.
고작 초등학교 1학년의 이런 태도에 살짝 당황했다. 대부분 아이들은 학교에서 어른과의 1:1 상담에 보통 기가 죽는 편이기 때문이다.
나는 강적이 나타난 것을 직감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 Ok. You don't have to do anything. But this is my place. That means this table is mine so get off your foot from my table. ( 알았어, 아무것도 할 필요 없어, 하지만 여기는 내 공간이야. 그 말은 여기 있는 테이블은 내 거야. 그러니 당장 그 발 내려)"라고 말했다.
그러자 M은 당황하며 " Really? is this your place? this stuffs are all yours? ( 정말? 여기가 네 공간이야? 이건 전부 네 물건이냐?" 그렇게 물어봤다.
나는 당당하게 " Of course! All these things are mine so you can't play with them without my permission ( 당연하지 여기 있는 거 전부다 내 것이야. 그래서 너는 나의 허락 없이는 가지고 놀 수 없어)
그렇게 내가 단호하게 말하자 M은 다리를 내리고 고분해 졌다. 왜냐하면 내 사무실엔 장난감, 게임, 미술재료등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M은 그 모든 것들을 자신 마음데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에 살짝 당황한듯 했다. 아마도 살면서 이런 제재나 제한을 많이 받아본적이 없는 듯 했다.
M은 가정에서 한마디로 왕이었다. 아시아에서 이민 온 아버지는 어릴때 부터 똑똑한 아들인 M을 무척 좋아했고 아들이 숙제만 마치면 하고 싶은데로 내버려 두었다. 어떤 날은 하루종일 게임만 하도록 두기도 했다. 누나를 괴롭혀도 남들에게 무례하게 행동해도 별 말을 하지 않았다. 마치 아버지는 공부 잘하는 내 아들이 무슨 문제냐는 식이였다. 그리고 아버지는 딸보다 아들인 M을 심하게 편애했다.
자녀에게 사랑을 충분히 주는 것이 좋은 양육이라는 말이 유명해지면서 무조건적인 허용과 용납을 하는 부모들이 많아졌다. 그리고 자신이 어린 시절 받지 못한 사랑을 아이에게 보상하려듯이 퍼주는 사랑이 요즘은 흔하다. 그러나 무조건적 허용과 경계 없는 훈육은 아동학대만큼 사실 아이들의 발달에 좋지 않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자녀는 부모님 하고만 살아갈 존재가 아니다. 앞으로 학교에서 직장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야 하는 법을 반드시 배워야 한다. M은 아버지에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들일 수는 있지만 타인들에겐 손가락질을 받을 수 있는 아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아버지만 몰랐다. 아이는 자라나면서 반드시 사회인으로서 배워야 할 덕목이 있다. 우리 자녀는 성장하면서 국영수만 잘해서는 안된다.
아이들은 타인에 대한 공감, 이해, 배려 그리고 규칙을 지키는 준법정신을 배워야 한다. 공부 못하는 아이들이 성공을 못할 수도 있다. (나는 꼭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 그러나 똑똑하지만 이렇게 사회성이 떨어지고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은 주변인들을 괴롭히는 사람이 되고, 심하게는 범죄자가 될 확률이 높다. 그렇게 된다면 공부만 강요하는 한국사회의 미래가 위험해질 수밖에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더 심하게는 똑똑한 범법자들을 만드는 것과 같은 말이기도 하다.
M의 엄마는 아빠와 사이가 너무 좋지 않아 각방을 쓴 지 오래되었다고 했다. 엄마는 남편 때문에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했고 딸 또한 심각한 불안장애를 겪고 있다고 했다. 자신이 아이들을 돌보고 싶지만 재택근무를 하던 남편과는 한 공간에 있고 싶지 않아 하루종일 일을 한다고 했다. 그렇게 빨리 모아 이혼을 하고 싶다고. 지금은 남편의 수입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빨리 벌어 독립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엄마는 M이 점점 아빠를 닮아간다며 걱정이었다. 감정적이고 독선적이며 폭력적이라고..
M은 교실에서나 쉬는 시간에 또래와 상급생들과 마찰이 심했고 때문에 하루 이틀 학교에서 정학을 당할 때도 있었다. 때문에 규칙적으로 만날 수는 없었지만 가끔 만나서 놀이치료나 미술치료를 하면 M에게 화가 많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아빠도 화가 많은 것이 닮았다고 까지 했다.
M을 보면서 그의 아버지와 똑 닮은 것이 보였다. 말하는 태도 말투 사람을 대하는 방식 그 모든 것이 너무 똑같아서 소름 돋을 때가 많았다. 그것이 유전적으로 닮은 것이는 환경의 영향으로 배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아이들은 어른의 스승이 되는 것이다. 내가 몰랐던 내 눈빛, 말투, 태도를 아이를 통해서 깨닫게 된다. 그리고그것이 나쁜 것이라면 아이를 위해서 스스로 바꾸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 부모라면 아이는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닮게 되어있다.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안타깝게도 나는 M을 오래 보지 못했다. 상담을 시작한다고 한 두 달 만에 아이가 금방 좋아지지 않는다. 내가 보는 시간은 일주일에 30분 정도 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 양육자였던 부모의 행동을 닮은 M의 행동 같은 경우는, 부모가 달라지지 않는 한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상담을 시작하고도 M의 문제 행동은 줄어들지 않았다. 때문에 학교에서 자주 M은 처벌을 받았다. 휴식시간에 놀이터를 사용하지 못한다던지 짧은 정학을 받기도 했다. 때문에 아버지도 학교와 나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상담을 보냈는데 왜 달라지지 않느냐며. 그리고 상담 중단을 요청했다.
M 같은 아이들을 만나면 사실 불쾌해진다. 무례하고 건방지고 안하무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의 아버지를 보고 과연 그것이 고작 8살짜리 아이의 잘못일까?라는 생각을 한다. 왜냐하면 그 안에는 무력하게 자신의 아버지의 모습을 닮아간 연약한 어린아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엄마와 아빠가 사이가 좋지 않는 그 가정이 아이에게 정말 안전한 공간일지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불안정한 상황이 계속된다면 M의 행동은 점점 나빠질 것이 너무 확실했기 때문이다.
예전엔 콩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을 참 싫어했다. 그럼 나는 고작 엄마 아빠 정도밖에 못 사는 건가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들을 만나면서 그 말은 아이들에겐 진리 하는 것을 참 많이 느꼈다. 불안한 아이에겐 불안한 부모가 있었고 화난 아이에겐 화난 부모가 있었다. 감사를 가르친 아이는 감사가 나오고, 배려를 배운 아이는 배려가 보였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물론 아이가 성장을 하고 사춘기가 지나 부모보다 더 넓은 세상을 만나면 아이들은 또 달라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부모가 어릴 때 무엇을 심었는지 반드시 열매를 보게 되는 날이 있다. 부모가 무엇을 심고 있는지 깨닫는 것이 어쩌면 자녀진짜 교육의 시작이기도 하다.
나는 가끔 M을 생각할 때마다 아직 그 학교를 다니고 있을지 궁금해 진다. 보통 그렇게 말썽을 피우면 학교에서 전학을 가기 쉽기 때문이다. 다른건 몰라도 이번 코로나로 그 가정이 이 시기를 잘 넘겼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이렇게 사이가 좋지 않는 경우 24시간 함께 생활하는 것 자체가 모든 사람들에게 고통이기 때문이다. 다른 그 무엇보다 그 집의 딸과 M이 지금 안전하고 평안하길 바래본다.